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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의 상징과도 같은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1994년까지 파업과 회사 시설물 점거 농성 등 강경 노동운동을 벌였다. 
 
특히 1990년 4월 25일에서 5월 10일까지 13일간 벌인 이른바 '골리앗 파업'은 전국적으로 현대중공업 노조의 이름을 알렸다. 골리앗 크레인은 조선소의 상징으로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 때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 중장비다. 
 
골리앗 파업은 전국총파업투쟁이라는 연대 투쟁으로 이어질 정도로 파급력이 컸고, 한국 노동 운동사에서 기업과 정부의 무노동 무임금 정책과 공권력 투입이라는 억압적인 탄압에 온몸으로 맞섰던 역사적 투쟁으로 평가된다.
 
당시 노조의 요구사항 중 '관리자들의 욕과 폭행을 막아달라' '머리를 기르게 해달라' 등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박한 요구사항이 있을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노조의 투쟁이 이뤄지다 보니 다수의 지지도 받을 수 있었다. 1983년부터 1999년까지 근무했던 필자가 기억하는 당시 사업장은 군대처럼 운영돼 근로자 모두 스포츠 머리였고, 잔업 등의 명령을 거부하면 심한 욕설과 불이익이 횡행하던 시대였다.  
 
노동운동의 상징 같았던 현대중공업 노사 관계는 1995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가 일어난다. 1995년 6월 16일 노조 설립 이후 처음 노사가 분규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 한 것이다. 일반 조합원들 사이에 무분규 타결을 위한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등 강경 투쟁에 대한 여론이 바뀌었고, 사측이 높은 임금 인상안을 제시한 것이 극적인 반전이 요인으로 분석된다. 
 
일부 어용노조라는 비판이 뒤따랐지만 현대중공업은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노사관계로 탈바꿈했다. 회사는 근로자들의 처우개선에 나서 업계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지를 보장했고, 근로자들은 회사 발전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 결과 2013년까지 19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IMF 등 위기 때는 노조가 완공 날짜를 지키겠다는 보장을 하고 수주에 성공하는 경우가 있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선업에 위기감이 고조되자 임금협상에서 노조는 사측에 임금 인상을 백지 위임하기도 했다.
 
현재 상황은 또 다시 180도 달라졌다. 지난 2014년 조선업 불황의 시작과 함께 무분규 타결이 무산된 이후 거의 매년 파업과 함께 해를 넘겨 임금 및 단체협상을 타결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도 지난해 5월 시작한 2019년 임금교섭이 1년 4개월이 넘도록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회사 법인분할 과정에서 노사가 충돌해 조합원 징계, 손해배상소송 문제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60차례가 넘는 본교섭 및 실무교섭을 벌였지만 진전이 없다.
 
이 같은 현대중공업의 상황을 지켜보는 울산 시민들은 걱정이 앞선다. 특히 1972년 현대중공업이 터를 잡은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해온 동구 주민들은 더더욱 그렇다. 단순히 노사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현대중공업이 동구 주민들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 동구로 이주해 젊음을 다 바친 아버지들의 삶이 녹아 있고, 작업복을 입은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했던 어머니들의 삶도 또렷하다. 아침마다 장관을 이루는 오토바이 부대의 엔진소리에 잠을 깨던 학생들도 어느새 청년이 됐다. 동구주민들이 현대중공업의 노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경제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고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현대중공업 노사도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의 임금교섭에 서로 에너지를 소비할 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크게 달라질 세계에 어떻게 대응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협력을 통해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경험도 있다. 협력적 노사관계가 기업의 안정적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이를 노사가 다시 한번 상기하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 조속히 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의 길로 들어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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