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길 위에 있다
삶은 길 위에 있다
  • 정영숙
  • 2020.11.12 20:13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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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정영숙 수필가
실수와 욕심이 빚어낸 얼룩을
조금씩 지우면서 걷는 길,
그 고즈넉한 길에서
여유로운 시간과 만나기를

휴대전화 속 지도를 불러내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본다. 길은 평탄하기보다는 쉼 없는 굴곡으로 이어졌다. 이제 평지이겠거니 하면 오르막이 나타나고 다 올랐겠거니 하면 다시 내리막을 걸어야 했다. 무성한 숲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아 헤맬 때도 있었지만 길이 실금처럼 희미한 곳에서도 결국 방향을 찾아냈다. 무사하게 산행을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의 기운이 온몸에 퍼져 나른하다. 
 
오늘은 제법 긴 산길을 걸을 생각을 하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배내재에서 시작해 배내봉과 간월산, 신불산을 지나 신불재에 이르고 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랜만의 산행인 데다 거리도 만만하지 않아 힘들 것으로 생각했지만 역시 녹록하지 않았다. 해낼 수 있는 산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체력이 부치는 것을 보니 이순이 지난 나이에 욕심을 냈나 싶기도 했다. 신불재 데크에서 배낭을 풀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선들바람이 감미롭게 코끝을 스쳤다. 잠시 쉬고 나니 기운이 충전된 것 같았다.
 
다시 걷기 위해 배낭을 꾸리는데 노부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두 분의 티셔츠를 보니 할아버지 가슴에는 할머니 사진이, 할머니 가슴에는 할아버지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할머니와 다정하게 자세를 취하던 할아버지는 사진을 멋있게 찍어달라고 당부하셨다. 사진이 잘 나오면 그 사진을 티셔츠에 인쇄해서 다음에 산행할 때 입을 계획이라며 웃으셨다.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던 노부부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신불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함께 산길을 걸으며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의 금실이 좋은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단조 늪을 비켜 걷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걸어간 오르막을 되돌아보았다. 노부부는 보이지 않고 눈부신 억새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법을 익힌 까닭일까. 바람에 반짝이는 억새의 흔들림이 부드러워 보였다. 따지고 보면 억새가 지나온 시간 속에 어디 이 순한 가을바람만 있었겠는가. 한 여름날 땡볕을 오롯이 받으며 견디었고, 사나운 비바람에도 제 몸을 꺾이지 않고 버티었으니 비늘 같은 옷 벗어내는 일이 무어 그리 대단할까. 
 
잠시의 휴식으로 어깨에 멘 배낭이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영축산 정상을 넘어 함박재를 지나 시살등을 옆으로 빗겨 걷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경사에 무릎이 불편해 졌다. 거리를 정확하게 몰라서 걱정될 즈음 멀리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청수골 산장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시계는 오후 네 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다. 거의 아홉 시간을 걸어온 셈이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힘들게 오르막을 오를 때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다가 풍광 좋은 곳에 올라 멋진 경관을 바라볼 때면 힘들었던 시간은 까맣게 잊을 때가 많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할 때는 지쳐서 금세 주저앉고 싶기도 하지만 그 고비를 지나고 나면 가슴 벅차도록 황홀한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버겁게 무리해야 할 것 같은 길이 걷고 난 뒤 돌아보면 뿌듯함을 주기도 하고, 망설이다 용기 내어 출발한 게 잘한 일이다 싶어질 때도 있다. 
 
결혼하고 월세 3만 원짜리 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다달이 계를 부어 전셋집으로 이사했을 때는 꼬박꼬박 나가던 월세가 나가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나 18평 아파트를 샀다. 남편 혼자의 힘으로는 생활비와 이자를 부담하는 게 버거울 것 같아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곁을 떠나기 전 그림 같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복층으로 된 이층집을 짓고 우리 부부의 이름이 적힌 문패를 걸었다. 주방에서 창으로 날아오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정원이 잘 보이는 동남쪽에 주방을 만들었다. 하얀색 대문을 달고 담장에는 붉은 덩굴장미를 올렸다. 바쁜 직장생활 틈틈이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층 거실에서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세월은 굽이굽이 좋은 일, 나쁜 일을 싣고 무심히 흘렀다. 정년퇴직을 몇 년 남겨 두었을 때 노후 준비를 위해 예쁜 집을 허물고 유행처럼 번지던 원룸을 지었다. 30년이 훌쩍 넘도록 직장생활을 했지만, 아이들 키우고 집 장만하느라 퇴직금을 중도에 받아 써 버렸다. 연금만으로는 빠듯한 생활이 될 것 같은 불안함에 내린 결단이었다. 하지만 건물을 짓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울산 동구의 경기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젊은 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노년의 삶을 여유롭게 해 주리라 믿었던 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궁색하지 않은 노년을 위해 비싼 옷 한 벌 욕심 내지 않았고, 낭비하지 않으며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허세 부리지 않고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대가로는 눈앞의 현실이 야속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에 띄게 떨어지는 체력도, 여기저기 말썽을 부리는 건강도 노년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자꾸만 내리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기다리면 풀릴 것 같았던 경기는 언제 풀릴지 아직 미지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임대인들에게 유리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말이 임대인이지 퇴직 후의 생활에 보탬이 되기 위해 빚까지 내가면서 건물을 지은 처지에서 보면 암담하기까지 하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법안이 개정되거나 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지만 계획에서 어긋나고 있는 상황이 서글프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위로하면서 밀려오는 헛헛함을 슬며시 털어내 본다. 
 
산길에서 만났던 노부부의 평온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머지않아 다가올 노년을 그려본다. 남아 있는 삶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완벽한 무욕無欲은 아니더라도 눈부신 석양에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삶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 실수와 욕심이 빚어낸 얼룩들을 조금씩 지우면서 걷는 길, 그 고즈넉한 길에서 여유로운 시간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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