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천 줄기따라 새긴 인류문화 7000년의 기록
대곡천 줄기따라 새긴 인류문화 7000년의 기록
  • 강현주 기자
  • 2021.01.0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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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U+] U+플레이스-울산암각화박물관 천전리각석 발견 50주년 특별전
선사인들의 역사를 품고 있는 천전리각석(암각화)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우리 인류문화사의 결정적인 증거물로 손꼽힌다. 두 암각화는 1년 간격을 두고 1970년, 1971년에 각각 발견되면서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지난해 말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천전리각석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오는 4월말까지 열리는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에선 천전리각석이 위치한 지역 자연환경과 지역사, 선사시대 동물 문양과 기하 문양의 의미 등 천전리각석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편집자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 4월 말까지 문양 의미·지역사·자연환경 등 소개
천전리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에서 대곡천을 따라 상류로 약 2.4㎞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천전리 암각화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유적 앞을 흐르는 대곡천의 중상류 지역에 있다. 암각화는 능선 자락 아래에 병풍처럼 펼쳐진 장방형의 대형 암면과 북편으로 이어진 여러 개의 바위 가운데 4개의 암면에 새겨졌다. 암각화 바위 맞은편에 버티고 선 급경사의 높은 암벽 자락은 아래의 대곡리 반구대 암벽과 이어진다. 

이 높은 암벽 자락 앞으로는 넓고 편평한 반석이 대곡천까지 펼쳐져 있다. 넓은 반석 위에는 직경 30㎝ 이상인 백악기의 대형 및 중소형 공룡 발자국이 200여개 이상 남아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 암벽자락 타고 반구대 암각화까지 연결
암각화의 행정구역상의 위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07-8번지다. 

천전리는 두동면 8개 법정 동리 가운데 하나로, 원래는 경주군 외남면에 속했으며, 마을 앞에 구랑천이 흐르기 때문에 '내 앞' 또는 '내 전'이라고 했다. 두동면은 신라 사로육촌의 하나였던 돌산고허촌의 땅이었다고 전해지며, 신라 제3대 유리이사금 9년 봄에 6부의 이름을 고칠 때 고허부(高虛部)를 사량부(沙梁部)라 개칭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 청동기 취락·삼국시대 분묘유적 등 다수…백악기 공룡 흔적도
언양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차리들 평야지대와 얕은 구릉에는 청동기시대 취락유적과 삼국시대 분묘유적, 통일신라시대 절터 유적 등이 상당수 분포하고 있다. 

특히 3~6세기 유적이 발견된 삼정리 하삼정 고분군, 4~7세기 차리고분군 등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 태조23년에 사량부를 남산부(南山部)라 고쳐 구량벌과 마등오, 도북, 회덕 등의 남촌에 이에 속했다.

울주 천전리 유물산포지(천전리269-2 일대)가 천전리 암각화의 서쪽 일대에 위치하며, 긴 구릉으로 이뤄져 있다. 경질토기편과 기와편이 소량 수습됐다. 천전리 암각화가 있는 구릉의 능선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동 방향으로 발달한 능선의 동쪽 지점으로 산림과 밭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삼국시대 토기파편과 시대미상의 기와 파편이 채집됐다. 삼국시대 분묘와 주거지 등이 분포할 가능성이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 1970년 크리스마스이브 문명대교수팀이 발견
조선 초기 경주부의 남쪽지역을 남면(南面)이라 하다가 중기 이후에 남면이 내남면(內南面)과 외남면 (外南面)으로 나뉘었다. 

1895년(고종 32)행정구역 중 종래의 부(府)와 현(縣)을 폐하고 모두 군(郡)으로 통일할 때 경주부는 경주군, 언양현도 언양군이 됐다. 

고종 42년에 울산군에 이속돼 북두성처럼 고을의 북쪽에 위치한다해 면의 이름을 두북면이라고 고쳤다. 1906년 두동면에 편입되고 1914년 일제에 의해 언양군 중북면 반곡리 일부를 합해 천전리로 불렀다 전한다. 

천전리 암각화는 1970년 12월 24일에 발견됐다.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조사단이 울산지역 불교유적 조사를 위해 반구대 일대에 있었던 반고사를 찾던 중에 동네주민들의 암벽에 그림이 있다는 말에 조사하게 됐다. 기하문 등을 발견 중에 랑(郞)글자를 확인하고 중요한 유적이라 직감했다. 

한국일보는 이 암각화의 발견 사실을 1971년 1월 1일자 1면으로 대서특필했다. 

이듬해인 1971년 초에 경북 고령군 개진면 양전동 '알터'에서 암각화가 발견되고 또 같은 해의 연말에 대곡리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천전리 암각화는 비로소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오는 4월말까지 특별전 '바위의 기억, 염원의 기록-천전리 암각화'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 780여개 인물·동물·기하문 등 새겨져
천전리각석 암각화의 주암면과 별면에는 모두 780여개의 인물, 동물, 기하문, 명문, 도구 및 기타, 미상에 속하는 것들이 물상, 혹은 명문으로 새겨졌다. 

780여개의 물상 및 명문 가운데 주암면에 새겨진 것이 700개 정도로 전체 물상 및 명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천전리각석의 주암면과 별면 물상 및 명문 가운데 가장 많이 새겨진 것은 명문으로 253개에 이르며 전체의 32%를 차지한다. 이외 동물상이 226개, 미상이 107개, 기하문이 93개, 인물상이 61개, 도구 및 기타에 속하는 것이 37개다.

천전리 암각화의 제작기법은 쪼기와 갈기, 긋기, 돌려파기 등으로 대곡리 암각화와 동일하지만 금속도구로 그어 새긴 가는 선각 그림이 있다. 

그림의 유형 분류에 있어서는 표현기법과 제작도구, 그림의 주제 등에서 명확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쪼기기법으로 새겨진 동물그림은 신석기시대, 깊게 갈아 생긴 추상적인 기하문양은 청동기시대, 금속으로 새긴 선각그림은 신라시대에 새겨진 것이다. 

천전리 암각화의 제작기법은 쪼기와 갈기, 긋기, 돌려파기 등으로 대곡리 암각화와 동일하지만 금속도구로 그어 새긴 가는 선각 그림이 있다. 사진은 돌연모로 쪼아 새긴 그림(왼쪽)과 금속도구로 그어 새긴 그림.
천전리 암각화의 제작기법은 쪼기와 갈기, 긋기, 돌려파기 등으로 대곡리 암각화와 동일하지만 금속도구로 그어 새긴 가는 선각 그림이 있다. 사진은 돌연모로 쪼아 새긴 그림(왼쪽)과 금속도구로 그어 새긴 그림.

# 청동기 쪼기기법 등 시대별 다양한 도구 활용
천전리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에서 신라시대까지 시대와 관념을 달리하는 여러 집단들이 새긴 암각화와 명문들로 구성돼 있다. 바위 좌측면에 표현된 고래와 상어, 물고기, 사슴, 호랑이 같은 동물상은 대곡리 암각화와 연속성을 가진 신석기시대 그림이다. 암면 중앙에 넓게 분포하는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둥근 무늬, 물결무늬, 지그재그 등의 기하문양들은 청동기 시대에 해당한다. 

암면 아랫부분에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새긴 기마행렬도와 돛을 단 번선, 용그림, 독특한 복장의 인물상 등의 선각그림들은 신라시대의 그림이다. 서책처럼 직사각형으로 구획하고 암면을 다듬어 새긴 명문은 명확한 연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을사년(서기525년)에 신라시대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 갈문왕 일행이 새긴 것과 기미년(서기539년)에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와 아들 심맥부지 일행이 남긴 것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신라시대 왕조과 승려, 화랑, 고관들의 이름이나 소망을 담은 글귀 등 많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선대의 암각화를 훼손하지 않고 여백을 찾아 새긴 명문과 선각그림은 바위와 공간의 신성함이 역사시대까지 온전하게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강현주기자 usk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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