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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울산행복학교 교사
이연재 울산행복학교 교사

“머하노" 필자가 자주 듣는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상대방에게 “그냥"이라는 말을 날린 후 그 자리를 빛의 속도로 벗어난다. 벗어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와 자태이다. 
 
상대방으로부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라는 다음 질문을 받기 전에 피해야 하므로 빠르지만 경박스러워 보이지 않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매번 멍 때리고 있는 상태였기에 상대방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이 없이 넋을 빼놓고 있는 어리숙한 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나름의 출구전략이었다. 
 
참고로 필자는 산업화 시대에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즉, 산업화 시대 '멍 때리기'는 비생산적이고 나태한 행위였다. 어린 시절부터 금 같은 시간을 허공에 흩뿌린 죄책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인터넷 포탈에 실린 기사는 죄책감을 훌훌 털어버리는 계기가 됐다. 
 
기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멍 때리는 활동은 창의성을 높인다'라는 내용이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멍 때리기' 중간 또는 후에 찾아오는 엉뚱한 상상으로 친구가 엮었던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청소년기 왕성한 상상력으로 주인공 캐릭터가 빌런(악당)이 되는 참사가 벌어졌지만 이 때 '만약에'라는 가정을 통해 사고하고 결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기사를 통해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했던 활동(멍 때리기)이 미래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창의성을 기르는 자양분이 됐다는 생각에 상당히 기쁘고 뿌듯했다. 
 
현 교육계는 '미래형 창의융합 인재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현직에서 여러 방면으로 미래형 창의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처음 '미래형 창의융합 인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코받침(노즈패드)이 없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고글형태 안경에 반짝이는 은갈치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이 두 번째 손가락만 펼쳐서 허공을 향해 가리키는 장면이 떠올랐다. 
 
즉 '미래형 창의융합인재' 솔직히 나에게 상당히 생경하고 낯선 단어였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스멀스멀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미래형 창의융합 인재인가?' '그런 인재가 되는 길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안내하지?' 물론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보면 상당히 친절하고 상세하게 나와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교육부에서 제시한 방향을 정확하게 포착해 목적지(미래형 창의융합 인재)에 도착할 수 있을까? 자문한 물음에 자답을 하기 위해 더듬더듬 거리며 창의융합 인재였을 것 같은 인물들을 찾아봤다. 
 
어느 가을 저녁 한 청년이 사과나무 밑에서 달을 보면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떨어지는 사과를 맞았는지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낸 청년이 있었다. 바로 아이작 뉴턴이다. 다음으로 기원전 3세기, 왕으로부터 금관이 모두 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금과 은이 섞여 있는지 알아보라는 명을 받은 학자가 있었다. 아마 그는 마음 같아서는 금관을 뚝딱 쪼개서 왕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학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더 이상 답을 찾을 수 없어 쉬기 위해 목욕탕에 들어갔다. 쉼 중에 유레카를 외치며 부력의 원리를 알아낸 분이 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이다. 
 
언급한 두 명의 학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남자' '외국 사람' '유럽인' '돌아가신 분' 등의 답을 기대하신 분이 계신다면 심심찮은 위로를 드린다. 답은 '쉼'이다. '쉼'은 이들에게 번듯이는 아이디어를 투척해 향후 과학 발전에 일조하도록 도왔다. 21세기 교육에서 추구하는 미래형 창의융합 인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으며 이들은 참으로 순간순간 잘 쉬었다. 신조어로 풀어보자면 참으로 '멍 때리기'를 잘했다. 따라서 나는 미래형 창의융합 인재로 가는 첫걸음을 '멍 때리기'라고 감히 주장하며 학생들에게 '멍 때리기'를 허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부탁이자 권고 한 두가지 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수업 시간에는 자제해다오' '아…그리고 멍 때릴 땐 핸드폰은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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