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게
끙게
  • 이상수
  • 2021.02.0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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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이상수 수필가
이상수 수필가
이상수 수필가

흙썰매를 탄다. 끙게를 매단 소가 느릿느릿 움직인다. 울퉁불퉁한 이랑이 앞장서고 매끈한 밭이 뒷걸음친다. 소가 속력을 내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줄잡은 손에  힘을 준다. 끙게가 지나가면 고운 흙이 솜이불처럼 보리씨를 덮어준다. 

끙게는 씨를 뿌리고 나서 그 위에 흙을 덮는데 쓰는 도구이다. 방망이 굵기의 나무를 발처럼 엮어 사람이나 소가 끈다. 

보리씨를 덮고 땅을 다지는 끙게는 농기구일 뿐만 아니라 좋은 놀잇감이기도 했다. 이랴! 이랴! 아버지는 소를 끌며 보리를 갈고 어린 우리는 끙게 위에 앉아 호시를 탄다. 웃음소리가 흙먼지처럼 날아오른다.   

가을 추수가 끝난 논엔 보리를 심었다. 곡식을 더 얻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들을 비워두면 온갖 생명체가 떠나버려 흙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보리가 심어진 밭은 뿌리에 미생물이 함께 살면서 봄까지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월동작물인 가을보리는 골을 타고 줄뿌림도 하지만 먼저 땅을 갈고 난 후 보리씨를 뿌리고 얇게 흙으로 덮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뿌리가 들뜨거나 얼어서 죽지 않을뿐더러 수분 증발을 막아 보리가 잘 자라게 도와주기도 한다.

이모는 네 형제 중 큰 딸이었다. 막내인 엄마와는 열다섯 살 차이가 나기도 했지만 나이가 주는 성숙함과 함께 은은한 기품이 있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키가 늘쑥했고 손끝이 야물었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질러진 살림과 집안을 말끔히 정돈했다. 철없는 동생들을 보살피며 거두는 것도 이모 몫이었다.  

열아홉에 바닷가 마을로 시집 가 딸 하나를 낳았지만 이모부는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홀로 딸을 금지옥엽 길렀지만 저세상에 보내고 말았다. 가난한 집 맏이로 자란 습성이 몸에 배여서일까. 짧고 허망한 것이 삶이라는 것을 너무나 일찍 알게 되어서일까. 슬픔을 딛고 일어선 이모는 자신보다 먼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기 시작했다. 이모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수리점방을 시숙에게 물려주고 쌀장사를 시작했다. 시숙마저 병으로 세상을 하직하자 제비새끼처럼 보채는 조카들을 챙겨 먹이고 두엇씩은 데리고 자기도 했다. 처녀 때 배운 솜씨로 한복을 지어 팔아 논을 샀지만, 여덟 명의 자식을 두고 외삼촌이 세상을 등지자 또 고스란히 넘겨주고 말았다. 또래보다 발달이 늦은 조카는 더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농번기가 다가오면 양손 가득 찬거리를 들고 집에 온 이모는 우리의 구세주였다. 부지깽이 힘도 빌려야한다는 농번기에 엄마는 부엌에 들어갈 시간조차 없었다. 콩고물에 비벼 마른 밥을 먹는 우리를 위해 맛난 찬을 만들어주었다. 마당에서 닭과 함께 뛰어다니던 어린 우리를 일일이 씻겨주며 살뜰한 엄마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었다. 자신이 만든 둥지보다 큰 새끼뻐꾸기를 키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돌고기의 알이 깨어날 때까지 지극정성 돌봐주는 꺽쇠도 이모보다 낫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손님이 들지 않는 빈 시각, 이모의 손에는 늘 바느질감이 들려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천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었다. 밥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어진 뒤에도 자투리 천을 갈무리하며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조각보는 동네 사람들에게로 가 조각난 삶을 기워주었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는 쌀자루를 몰래 두고 외롭게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모에게 새로운 인연이 나타났지만 재가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매운 손끝과 성실하고 검소한 살림살이를 눈여겨본 이웃이 다시 생각해보라고 간곡하게 권했지만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거절했다. 먼저 떠난 이모부를 배신하기 어려워서였는지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일이 어색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끙게는 온갖 흙을 뒤집어쓰며 씨를 보호한다. 보리가 잘 자라 푸르게 일렁이는 계절이 오면 아무도 끙게를 기억하는 이 없지만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보리가 잘되기 위해서만 애를 쓴다.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며 자신보단 타자를 위한 삶을 산다. 오지랖 넓은 이모 역시 그랬다.    

한 집안의 어른으로서 평생 다른 사람을 보살피던 삶을 살던 이모는 늘그막에 조카를 양자로 삼았다. 어쩌면 시신이라도 거두어주기를 바라서였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노후를 의탁하다 돌아가신지 십년이 다되어 간다. 지금쯤 먼저 간 이모부와 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기고 마침내 푸른 싹을 틔운 강인한 의지들을 바라본다. 한 집안을 오롯이 지켜낸 이모처럼 끙게가 흙을 다지고 골고루 덮어준 덕분일 것이다. 저 멀리 맞은편에서 어릴 적 끙게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봄바람과 구름과 햇살을 태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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