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극락정토의 염원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극락정토의 염원
  • 김정규 기자
  • 2021.02.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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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트래블] 창녕 관룡사와 용선대
극락정토를 염원한 신라인들의 정성이 천년의 시간을 건너와 여전히 유효하다. 반야용선을 인도하는 듯 관룡산 바위마루에 앉은 여래상 앞에 간절한 기원이 오늘도 이어진다.
극락정토를 염원한 신라인들의 정성이 천년의 시간을 건너와 여전히 유효하다. 반야용선을 인도하는 듯 관룡산 바위마루에 앉은 여래상 앞에 간절한 기원이 오늘도 이어진다.

창녕으로 가는 길은 비어있다. 터널 일색인 울산~밀양 고속도로를 거쳐 천왕재를 넘는다. 젊다는 자만감으로 한때 바이크를 타고 자주 넘던 길에 앙상한 나무들만 팔을 뻗어 그날을 기억하는 듯 하다. 

천왕산은 청도와 밀양, 그리고 창녕을 가르는 능선으로 창녕의 주산인 화왕산과 마주보고 있다. 천왕재는 그 경계의 고개다. 화왕산을 북으로 돌아 관룡사로 향한다. 
 

관룡사에서 용선대로 오르는 길은 청정한 소나무 숲의 시간이다.
관룡사에서 용선대로 오르는 길은 청정한 소나무 숲의 시간이다.

# 1천여명에 설법하던 신라 8대 사찰 중 하나
관룡사 들어가는 길은 여느 절과 다르지 않다. 창녕군 화왕읍 옥천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산으로 들어간다. 하늘을 뒤덮은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길가에 비켜선 한쌍의 돌장승이 도량과 속세를 경계한다. 

장승은 예로부터 잡귀의 출입을 막고 불법을 지키며 풍수적으로는 허한 곳에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했다. 장승들은 사람보다 조금 더 큰 높이에 왕방울 눈에 주먹코, 방방한 턱을 지녔다. 우락부락하지만 정감 있는 얼굴이다.

왼쪽이 남장승 오른쪽이 여장승으로 추정되나 명문으로 남은 것이 없어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다.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된 소박한 미로 절집의 시작을 알려준다. 

# 보물만 6개 보유한 작지만 큰 절
돌장승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3단 축대 위에 우뚝 선 관룡사와 만난다. 밑에서 보는 절집은 낮은 산문 뒤로 범종루만 보여줄 뿐 그 모습을 숨기고 있다. 

높은 돌계단 위에 돌담을 쌓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은 석문은 작고 아담하다. 오른쪽으로 위로 사천왕상이 모셔진 천왕문이 자리해 절집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관룡사(觀龍寺)라는 이름은 증법국사가 절을 지을 때 화왕산 월영삼지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것에 기인한다고 알려져 있을 뿐 이력이 명확하지 않다. 신라 8대 사찰 중 하나로 원효대사가 중국 승려 1,000여 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해 대 도량을 이루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다만 조선조 들어 몇 번이 중수를 거쳤다는 기록이 관룡사사적기로 증명되고 있다. 

관룡사는 작지만 국가지정 보물만 6개를 가진 큰 절이다. 약사전과 석조여래좌상, 대웅전, 목조여래삼불좌상,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등이다. 약사전 3층 석탑과 관룡사 사적기 등은 지방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경내에서 첫 번째로 마주치는 것은 대웅전(보물 212호)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약사전, 범종루, 함월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창녕에서 제일 큰 절집이라지만 소박하다. 다만 절집을 둘러싼 관룡산과 구룡산의 절경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 빼어난 절경 앞에 다소곳하게 앉은 절집은 그래서 포근하다. 

대웅전은 정면과 측면 3칸으로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내부는 단청이 화려하고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벽화가 채우고 있다. 불단 뒤 관음보살벽화(보물 1816호)는 선지식을 구하러 온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음보살을 그린 것으로 그 크기가 가로 3m 세로 4m가 넘는 대형작품이다.

목조여래삼불좌상(보물 1730호)은 중앙의 석가여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약사여래(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보살), 오른쪽에 아미타여래(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로 구성된 조선 후기 양식을 따르고 있다. 

대웅전 옆 큰 구유는 비구들의 공양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법을 하였다는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도량과 속세를 구분하는 관룡사 돌장승. 한쌍이 마주보고 서서 불법을 수호하는 듯 하다.
도량과 속세를 구분하는 관룡사 돌장승. 한쌍이 마주보고 서서 불법을 수호하는 듯 하다.

# 임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약사전
약사전(보물 146호)은 대웅전을 등지고 서쪽 방향으로 살짝 돌아앉은 한 칸짜리 건물이다. 배흘림기둥에 주심포계 맞배지붕으로 단아하다. 벽체보다 과장된 듯 올려진 지붕 탓에 긴장감이 느껴진다. 내부는 벽화로 치장돼 화려하고 마루가 아닌 전돌이 깔린 옛 방식이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은 중생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사여래불로 추정되지만, 왼손 위에 있었던 약사발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약사전은 임진왜란 때 화마로 인해 모든 전각이 소실됐지만 살아남은 유일한 건물이다. 이때부터 약사전이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알려져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어준다는 말이 생겼다.

# 기암절벽이 포근하게 감싼
관룡사를 둘러싼 관룡산과 구룡산의 기암절벽은 봉화 청량산 청량사를 떠오르게도 하고 장성 백양산 백양사를 불러오기도 한다. 관룡산과 구룡산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잘생긴 산이다. 바람에 제 살을 드러낸 바위들이 고스란히 시간의 흐름 속에 멈춘 듯 고요하다.

음양오행에서 암반은 금이요 나무는 목이라 상극이다. 그러나 고대 암릉과 인연을 맺은 소나무들은 청정함으로 빛난다. 암릉의 작은 틈에 자리한 소나무는 질긴 뿌리로 터전을 잡고, 암릉은 날려온 낙엽과 흙먼지를 토양으로 제공한다. 오로지 비로만 목마름을 이겨내며 생명을 이어가는 그 강인함은 상생의 기운으로 고단함을 이겨낸다.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앉은 관룡사. 작지만 보물 6개를 보유한 큰 절로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앉은 관룡사. 작지만 보물 6개를 보유한 큰 절로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명부전과 공양채 사이 좁은 길로 들어선다. 숲은 나무들의 들숨과 날숨이 잔잔하다. 온통 소나무의 빛으로 둘러싸인 시간이다. 세상 잡음이 한발씩 물러난다. 현실의 경계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 듯한 오묘하고 생경한 느낌이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게 몸속을 파고든다. 

20여분 산길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마루를 만난다. 

용선대다. 관룡산 암반 위에 동향으로 앉은 석조여래좌상(보물 295호)으로 높이가 1.81m이다. 1m가 넘는 높은 좌대 위에 결가부좌한 여래상은 지긋한 눈으로 입가엔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수인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마귀를 항복시키고 이를 지신(地神)에게 증명하게 하는 손 자세로,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배 앞에 둠)의 형상이다. 좌대에 새겨진 통일신라 722년이 조성연대를 증거한다. 

3단 축대위에 앙징맞게 조성된 산문이 관룡사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3단 축대위에 앙징맞게 조성된 산문이 관룡사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큰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형국
여래상은 왼쪽으로 관룡산과 구룡산을 거느리고 오른편으로 화왕산을 멀리 두고 품는다. 여래의 시선은 저기 산 아래 사바에 머문다. 시선의 흐름엔 막힘이 없고 시원하다. 동짓날 해뜨는 방향을 응시하는 여래는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방향과 묘하게 일치한다. 

거대한 암벽 위에 홀로 당당하게 자리한 여래의 모습이 흔들림이 없다. 돌출된 암벽은 마치 큰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형국이다. 고통의 연속인 중생을 극락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반야용선을 연상케 한다.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의 감정과 다툼에서 구제를 바라는 중생들의 염원이 천년의 시간을 건너왔다. 

화왕산으로 오르는 바위에 앉아 여래상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의 갑갑함이 사라진다. 세상의 무거운 근심도 한결 가벼워진다. 

여래 앞에 선 사람들의 간절함이 먼발치서 보인다. 합장한 손에 오래토록 마음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말들을 담아 염원한다. 산 아래 마을이 안개 속에서 고요하다. 글·사진=김정규기자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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