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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울산에 있는 자연유산 '울주 반구천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 명승지정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두 차례 명승지정을 추진하다 주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일이 있다.

지난 2013년의 상황은 심각했다. 당시 문화재청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지금은 현지 주민 일부가 반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울산지역 상당수가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 일대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한 현지 조사에 나서고 주민들과의 일전도 불사했다.

'명승'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적인 면이나 관상적(觀賞的)인 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국가 지정문화재를 말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가 관리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는 울산시가 추진하던 당시의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문화재 분야에서는 상부기관인 문화재청의 '힘'으로 울산시의 반발을 묵살하겠다는 점령군식 발상이었다. 결국 서울주발전협의회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문화재청의 조사 현장을 방문을 원천 봉쇄하는 등 적극적인 저지로 무산된 기억이 있다. 

이번에 명승지정을 예고한 대곡천은 천마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연화산 등을 굽이치며 수많은 절벽과 협곡, 옛 물길, 습지 등을 만들어내며 다양한 지형과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대곡천을 반구천으로 부르는 것은 반구천이 조선시대까지 불렸던 현재 대곡천의 원래 이름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특히 이곳은 구곡(九曲)문화와 함께 저명한 정자 등 자연경관과 역사문화경관이 복합된 명승으로서 가치가 뛰어난 자연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이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층으로 초식공룡 및 익룡의 발자국 화석이 남아있다. 특히 암각화 인근에서는 코리스토데라 발자국이 발견돼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로 명명되기도 했다. 코리스토데라는 중생대 수생 파충류의 일종으로 신생대에 멸종했다.

또 최근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으로 선정된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선사시대∼삼국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국보 '울주 천전리 각석', 정몽주(1337∼1392)가 유배 중 머문 포은대(반구대의 다른 이름), 울산시 유형문화재 '반고서원 유허비', 반구서원, 집청정 등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유람문화까지 알려줘 역사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반구천의 아름다운 경관은 구곡(九曲)문화를 이뤄 많은 이들이 시, 글, 그림을 남겼으며, 특히 겸재 정선은 '공회첩'(孔懷帖)에 반구(盤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대곡천 계곡은 대자연의 굴곡지점이 인문학적 지도로 그려진 몇 안 되는 곳이다. 사계절과 밤과 낮, 맑음과 흐림의 경계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고대 인류의 족적 가운데 거의 드물게 원형이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선사문화의 보고다.

이 때문에 대곡천에 들어선 사람들은 경이로움과 매일 마주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울산이 한반도 정주문화의 출발지이자 북방민족의 '유토피아' 대장정의 끝자리였다는 사실부터 고래문화의 다양성이 집결된 반구대암각화가 우리보다 세계인이 더 경이롭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충격'에 빠진다. 

대곡천의 절정은 반구대암각화다. 여기에 서면 고래울음이 들린다. 디지털 망원경의 초점을 고래에 맞추면 햇살과 그림자가 무연히 감춰버린 귀신고래가 울음소리만 토해낸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고래와 숨박꼭질을 하다보면 어느새 오후 4시, 바위 표면에서 고래가 춤을 춘다.

반구대는 세상의 빛이 열리는 시간이 아니라 어둠으로 향하는 발원의 시간, 침묵과 묵상의 시간에 하늘과 만나는 자리다. 바로 이 지점이 있기에 문화재청은 이 일대를 명승으로 지정하고 앞으로 세계유산 등재와 선사문화 일번지의 탐방 코스로 개발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명승지정의 전제조건이다. 바로 반구대암각화 주변의 훼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암각화 자체의 침수나 훼손 말고도 지금 반구대암각화 일대는 선사문화 1번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인위적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원래 있던 주택이나 영업시설은 그렇다 쳐도 신규로 들어선 사설 건축물들은 얼마든지 사전에 막을 방법을 찾아야 했지만 그 시기를 놓쳐버렸다. 이를 방치하다 보니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 반구대암각화로 통하는 입구에 가보면 입이 벌어진다. 정체성이 모호한 한옥펜션이 들어서 있고 잡동사니 건물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 훼손이 일반화됐다. 사유지라 법적으로 개발을 차단하는 게 불가능해 주변에 추가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명승지정을 한다고 해서 대곡천, 아니 반구천의 원형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 현장에서 보다 멀리 기이 있게 바라보고 주민들의 반발에 귀를 기울인뒤 명승지정을 추진하는 것이 답이다. 문화재청의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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