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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준 동구의장
홍유준 동구의장

최근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한 동구 주민을 만났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연구소도 없이 생산하청기지(깡통회사)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 주장은 지난 2019년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 해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바 있다. 
 
주민이 이 같은 우려를 하는 것은 현대중공업그룹이 경기도 성남시에 건립 중인 '통합 연구·개발센터' 때문이다. 2022년 12월 완공 예정인 이 센터는 지하 5층, 지상 19층, 연면적 16만 5,300㎡의 규모를 자랑한다. 완공 후에는 그룹에 속한 7개 계열사의 연구·개발인력 5,000여명이 이전할 예정이다. 
 
아직 이전과 관련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동구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등의 연구·개발인력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적게는 600여명에서 많게는 700~800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400~500명으로 가장 많다. 부양가족을 2.5명으로 단순 계산해 보면 적게는 1,500명, 많게는 2,000명이 동구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주 실적이 개선되면서 수주 물량이 현실화되는 내년부터는 동구 경제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그런데 또다시 인력이 빠져나간다고 하니 주민으로서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에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면 그 어떤 기업 활동에도 제동을 걸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은 스스로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해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통합 연구·개발센터'도 이 모든 것을 감안해 진행돼야 한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위해 동구와 현대중공업의 역사를 천천히 되짚어 봐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1970년대 초 울산의 한적하기만 했던 동구 미포만에 배를 건조하겠다며 달랑 설계도면 한 장 들고 와 30여년만에 세계 1위의 조선소로 발돋움했다. 절대 현대중공업만의 힘으로 세계 제1위 조선소가 된 것은 아니다. 조선소가 들어설 수 있도록 문전옥답(門前沃畓P)을 기꺼이 내 놓은 주민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 희생된 수백명의 근로자들, 잔업·특근을 마다하지 않고 젊음을 바친 근로자들, 페인트 가루를 덮어쓰면서 살아온 주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동구 주민들은 현대중공업에 많은 실망을 하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조선업의 불황으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 2019년 울산시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강행한 물적분할 등 이윤 극대화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또 사내 협력업체들이 임금체불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기성금(공사대금)삭감, 근로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내 복지제도 후퇴, 지역정서를 외면하는 소통 부재 등은 세계 제1위 조선소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실망, 그 자체다. 
 
물적분할 당시 본사가 이전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본사는 변함없이 울산'이라 답했다. 하지만 핵심 기능인 연구·개발 없이 단순 생산만 이뤄지는 곳을 본사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개발인력 이전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도 옳지 않다. 스스로 신뢰를 깨트리는 일이다.
 
동구와 현대중공업은 40년 넘는 세월로 엮인 운명공동체다. 동구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현대중공업이 밉지만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의 부활을 기대하고 응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현대중공업은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이번에는 동구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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