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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숙 중등교사
홍경숙 중등교사

2017년 해외여행을 하다가 알게 된 영국에서 살고있는 언니가 한 분 있다. 그 당시에 본인은 영국이 좋아서 거기에 뼈를 묻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소식이 왔다. 12월에 코로나19에 감염돼 한 달간 병상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병상에서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보았다면서 한번 읽어 보라고 보내왔다. 혼자 읽기에는 너무 가슴 시리고도 열정적으로 살아온 삶의 흔적이 감동으로 와 닿았다. 

'귀향이라는 말만큼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단어가 있을까. 참으로 설레고 그리운 말, 하지만 스무 살 갓 넘은 나이에 생존을 위해 선택한 내 첫 귀향과, 그로부터 40년이 훌쩍 지난 예순 중반의 내가 다시 꿈꾸는 두 번째 귀향은 크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글로 시작됐다.

'사회보장 제도도, 마땅한 직업도 없었던 70년대 말, 나는 두 살 된 딸아이와 연탄아궁이 하나로 부엌을 대신한 단칸방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지독히도 추웠던 그 겨울, 내가 돌아갈 곳은 단 한 곳, 고향 친정집으로 향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내 삶의 첫 번째 귀향은 그렇게 시작됐다. 고개를 떨군 채 등 뒤에서 울어대는 딸아이를 달래면서, 모두가 모두를 아는 작은 시골 마을을 빈손으로 짐이 돼 돌아가는 그 귀로(歸路)는 참으로 부끄럽고 힘든 길이었다. 그렇게 한 내 귀향은 늘 바늘방석에 앉은 나날이었고, 자구책(自救策)으로 나는 어린 딸을 뒤로한 아픔을 안고 지금은 한국 교육 제도에서 지워진 간호고등기술학교 졸업장 하나에 의지해 중동으로 넘어갔다. 그로부터 40년, 나는 다시금 내 인생의 마지막 귀향을 꿈꾸고 있다.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작은 미생물 하나가 내게 던지기 시작한,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기를 희망하며….'

이쯤에서 벌써 마음이 움직였다. 

'중동에서의 계약이 끝났을 때는 귀향 대신 나는 영국행을 택했다. 이방인으로서의 정착이 그리 순탄한 것은 못됐지만 다시 가정을 이루었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했고 최상급 우등생 졸업장과 함께 대학 4년을 무사히 끝냈을 때는 내 나이 40. 런던 시티의 금융 회사 취업으로 대학 생활과는 또 너무나 상반된, 냉정한 판단과 빠른 숫자만으로 승패를 가리던 비즈니스 세계에서 활기차게 10년의 세월을 보냈고, 그리고 금융가에서 배운 비즈니스 노하우는 또다시 10년간의 부동산업으로 이어졌다. 그 후 정년을 결정하며 20년 런던 생활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영국 내 삶의 시작이었던 시골 마을로 돌아갔다. 내가 받고 또 얻은 만큼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줘야 할 것 같은 심정에…' 

정말이지 우여곡절의 삶이 어떤 건지 알 것도 같았다.

글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돌아온 시골 마을에 조그만 장학재단을 세우고, 노인정, 여행자 숙소, 자선 카페 운영을 목표로 작은 빌딩을 취득 개조 중 코로나 벼락의 직격탄을 내가 맞는다. 내 인생 두 번째의 생사를 가늠했던 코로나 병상에서, 1년이나 지속되는 세계적 봉쇄의 침묵과 더불어 내 영혼은 텅 빈 건물과 춥고 배고팠던 그 단칸방 사이를 넘나들며, 운명처럼 조국을 향한 내 귀향의 둥지를 트기 시작했다. 지난 수십 년 타국에 또 타국을 떠돌며 배워온 영어, 일어 등의 언어력과 20여 년의 비즈니스 산 경험들을 내 고향 젊은이들과 나눌 수 있는 조그만 공부방이라도 열고 싶은 바람이 나의 귀향을 재촉한다. 또한 내가 태어난 조국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보낸 이 땅인데 왜 한국적인 것들은 갈수록 더 절실해지는가. 영국 친구들과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한국말 수다가 그립고, 몇십 년을 먹어온 선데이 로스트는 여전히 구수한 멸치 된장국만 못하며, 내 음악의 세계는 아직도 트로트 장단에만 춤을 추니, 이제는 구슬픈 '보릿고개'를 같이 노래할 수 있는 이들과 내 남은 생을 함께 하고 싶다. 돌고 돌아 참 너무도 멀었고 굴곡의 연속이었던 내 타향살이 40년, 다시 고향길로 향하고 있는 내 이 마음은 인간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인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내 생의 마지막 귀향은 어떤 모습일까. 당당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로 고향을 향한 간절한, 나만의 행진을 하고 싶은데, 내 고향은 이번에는 나를 반겨 주려나'

이 글을 다 읽고 나니 언니의 치열했던 삶이 오버랩 되면서 마치 또 하나의 분신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니가 어서 속히 귀향해서 언니가 졸업한 밀양의 초등학교 앞에 공부방을 만들어 후배들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영어, 일본어와 비즈니스로 일군 경험들을 나누며 홍익인간으로 남은 여생을 불태우며 살다 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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