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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리 울산시간호사회장

“벌써 일 년하고도 4개월째 돼갑니다. 코로나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저희들은 간호사입니다. 위험하고 감당하기 힘든 환자 수에도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 이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고 견뎠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하면 '영웅'이라 했고, '간호인력이 모자란다'고 하면 '힘내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요?"
 
지난달부터 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서울 정도로 거세진 울산의 코로나 전담병원 한 간호사가 호소하듯 한 말이다. 
 
4월 한 달 동안 울산지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772명으로, 지난해 2월 이후 4월 말까지 15개월 동안의 전체 누적 확진자 1,931명의 40%나 차지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확산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엿새 만에 벌써 213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이에 따라 울산의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 발생률은 182.47명(6일 기준)으로, 수도권을 제외하고 대구(386.13명)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울산시는 이 같은 코로나19의 확산세를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때문으로 보고 있다.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기존 바이러스보다 1.7배나 높다. 그래서 울산지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역사회 전역에서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확산한 데다, 이들 접촉자로 자가격리 중인 시민도 425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 비율도 높아 숨은 감염원에 의한 추가 확진자 발생 가능성마저 큰 상황이다.
 
이처럼 연일 늘어가는 확진자로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환자 치료를 위해 오늘도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 등 의료진들의 번아웃(소진)도 걱정된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환자 중증도에 따라 간호사 수를 배정하는 기준인 중증도별 인력기준이 울산에는 아직까지 없다. 위중한 확진자가 발생하면 부족한 병상과 간호인력 탓에 타지역으로 전원(轉院) 시키기 바쁘다. 
 
코로나19 등 신종 감염병 발생과 장기화로 간호사의 역할이 재인식되고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간호사 업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로 간호사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일은 더 이상 안 된다. 이제는 중환자 병상과 이를 지킬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황 자체를 바꿔야 한다. 
 
코로나 이후에도 신종 감염병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에 대한 체계적인 인력 양성 정책이 없어서 야기되는 문제라면 이제는 바로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을 간호하겠다는 간호사들의 염원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적정 수준의 양질의 간호인력이 확충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감염병 발생 시 지역에서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적인 요구인 간호법을 제정돼야 한다.
 
간호법은 이미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낯선 법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간호법령인 간호사규칙이 있었고, 의사규칙, 치과의사규칙이 존재했다. 그러나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의료인을 총동원하기 위해 이런 법령들을 통폐합, 1944년 의료법(조선의료령)을 만들었다. 일본의 경우, 1942년 의료법으로 통폐합했다가 패전 후 1948년 의사법, 치과의사법, 간호사법을 모두 복원했고 의료법과 함께 운용하고 있다. 대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해방 후에도 일제가 전시(戰時) 비상용으로 만든 의료법 유지에 급급, 의료인의 전문성을 외면해왔다.

간호법 제정은 다른 의료인의 영역을 침범해 간호사의 이익을 도모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간호와 관련된 전문 인력이 배치될 수 있도록 법체계를 재정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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