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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조 동화작가
정임조 동화작가

머위 껍질 벗겨 데치고, 쑥인절미 고물에 묻히고, 반찬 몇 가지 만들어 집을 나선다, 가지산 자락에 새 둥지 같이 앉은 요양병원, 그곳에 엄마가 계신다.

얼굴 못 보고, 목소리 못 듣고. 전화로 간호사만 불러내 간식 봉지 전해주는 게 고작이지만 봄 소풍 가는 아이마냥 즐겁다. 엄마는 잘 계셔? 언덕으로 오르는 길, 아카시아꽃이 치맛자락 팔랑거리듯 묻는다. 눈부신 이 계절을 엄마도 보고 계시겠지. 

작년 8월에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셔두고 이별 준비에 들어갔다. 엄마는 당장 죽는 한이 있어도 집에 있겠다 하셨다. 요양병원이 이승의 끝이라고 생각하셨다. 집으로 날마다 요양보호사가 오고, 아들딸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치매와 숙환으로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당신이 계신 곳이 어딘지 모른다. 

치매. 엄마는 5분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독한 치매다. 

비대면 면회는 2주에 한 번 겨우 이뤄졌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비닐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앉으면 생이별도 그런 생이별이 없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우실 때마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의사 말 잘 들어서 얼른 집으로 가자 하고 돌아올 때는, 마주 앉은 고헌산을 쳐다보기도 부끄러웠다.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신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참담함과 죄스러움, 사랑하는 이를 요양병원에 두고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자식으로서 벌 받듯 견뎌야 하는 고통은 비길 데가 없었다.

하지만 8개월 후, 슬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기적이 일어났다. 요양병원으로 오기 전, 극도로 악화됐던 치매와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했던 지병이 호전됐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또렷하고 높고 맑아졌다. 말라죽을 것 같은 나무가 다시 살아나 꽃을 피운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요양병원을 살아서는 갈 곳이 못 된다고 말한다. 죽음 직전까지 간 사람이 마지못해 거쳐야 하는 생의 벼랑 끝에 지어진 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지고 있는 십자가가 다르듯, 어떤 여건을 받아 들이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엄마를 보면서 느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찾아낸 생명 빛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남매는 시간이 흘러 그것이 엄마의 '유난한 외로움' 때문이라는 걸 알아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같이 살자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홀로 병석을 지켜낸 지 7년이다. 엄마로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병마와 싸우면서도 늘 꼿꼿한 모습이었지만 결국 한 인간으로서 맞닥뜨린 외로움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식들의 돌봄은 그저 겉돌았을 뿐, 엄마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엄마의 외로움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노인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 과오가 엄마의 병을 부추기고 죽움 직전까지 내몰았던 것 같다.

우리는 내 곁의 사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특히 부모는 자식을 다 알고, 자식도 부모를 다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가끔 내드리는 시간과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과 손에 쥐어주는 용돈이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엄마의 남다른 외로움을 감지하지 못했다. 

비록 요양병원에서지만 처지를 같이 하는 환우들과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고, 자식 자랑하고, 가장 아팠던 이별을 털어놓고, 생의 뒷면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외로움을 덜어내는 가장 완벽한 시간과 공간이 됐던 것이다. 또 24시간 들리는 간호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죽음의 두려움을 걷어가 줬다. 고독사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걸 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일이야말로 사람살이에 한 숟갈 밥보다 더 절실한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식들에게는 차마 풀어 보이지 못한 채 꽁꽁 싸매고 있던 오래된 외로움이라는 보자기를 같은 병실 환우들 앞에 풀어놓고 스스로를 치유해 오는 엄마를 보면 남들은 다 꺼린다는 요양병원이 오히려 고맙다. 엄마에게 하루 한 번 전화하는 일이 밥 먹고 잠자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됐다. 엄마는 적어도 하루에 6통의 전화를 받는 복 많은 노인네가 됐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두 달째 면회를 못 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요양병원 간호사들이 특별히 영상통화를 하도록 도와줬다. 엄마가 살아 계셔서 행복하다. 엄마가 계시는 병실을 기웃거릴 수 있는 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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