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마사
우생마사
  • 조재훈
  • 2021.06.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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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의 아침산책] 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주말 저녁 서울에 사는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들떠 있는 목소리에 살짝 취기가 도는 듯했다. 죽마고우 둘이서 인왕산을 등산하고 내려와 경복궁 인근의 막걸리집에서 회포를 풀다가 옛 생각에 필자가 소환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친구 녀석 왈, 인왕산 정상에서 청와대를 향해 '임기 말 국정을 부디 안정적으로 운용해 주십사' 기원하고 내려왔노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진심은 따로 있었다. 어릴 적 함께 자라면서 귀하게 가치를 매겨 온 것들을 쟁취하려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 이제 와 되돌아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 싶더란다. 오히려 하찮게 여겨졌던 일상의 작은 것들이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음을 요즘 새삼 깨닫게 된다고 동행한 친구에게 털어놓았단다. 세상이 팍팍해진 탓인지, 아니면 살아가는 여유가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듣기에는 참 좋았다. 잊고 지냈던 친구와의 지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고위공직자로 은퇴한 이 친구는 평소 뼛속까지 관료 냄새를 풍겼다. 정책에 대한 통찰과 실력, 추진력은 물론 두둑한 강단까지 겸비했으니 그야말로 능력자였다. 가끔 정부의 정책 시비가 언론에 오르내릴 때면 후배 공무원들은 이 친구의 부재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정책 입안자로서의 명성도 자자했다는 후문이다.

'공무원 생리학'(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에는 공무원에 대한 개념 정의를 해놓은 게 있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라고 뒤끝 있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친구는 그저 소신껏 묵묵히 일할 따름이었다. 그나마 시쳇말로 '꼰대' 소리를 듣지 않고 일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친구도 결국 정치권의 파고는 넘지를 못했다.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한 듯 괴로워했다. '마봉백락'의 이치를 몰라보는 세태를 원망도 했을 터이다. 하지만 인생 2모작을 위한 설계를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아쉬움과 축복을 뒤로 하고 지금은 새로운 길을 또 열심히 가고 있다. 

순간 사회를 송두리째 흔드는 많은 권력형 부정부패의 출발점이 바로 잘못된 삶의 선택에서 오는 욕망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연일 뉴스를 통해 접하는 불공정과 부도덕, 비양심의 우울한 소식들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심각성만 낳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이 옳고, 남의 말을 듣고자 하는 아량도 관용도 없다.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목청 돋우며 떠들어대지만 소음 공해로 메아리칠 뿐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의 물을 흐리는 격이다. 어쩌면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이유도 지금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흔적을 남긴 탓이다. 

아주 커다란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밀어 넣으면 둘 다 헤엄쳐서 뭍으로 나온다. 말의 헤엄 속도가 훨씬 빨라 거의 소의 두 배의 속도로 먼저 땅을 밟는다. 그런데 많은 비가 와 홍수가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을 동시에 던져 보면 소는 살아서 나오는데 말은 익사하고 만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왜 그럴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말이 헤엄을 잘 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 강한 물살이 떠미니까 그 물살을 이겨 내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려 용을 쓴다. 전진하다가 물살에 밀려서 다시 후퇴하기를 반복한다. 결국 한참을 헤엄치며 바둥거리지만 제 자리서 맴돌 뿐이다. 그러다가 지쳐서 익사하고 만다. 그런데 소는 절대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떠밀려 내려간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싶어도 그렇지 않다. 가만히 지켜보면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강가로 접근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다 어느새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아 엉금엉금 걸어 나온다. 그 유명한 사자성어 '우생마사(牛生馬死)'다.

무릇 순리에 따르는 게 탈이 없는 법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교나 방책을 부리지 말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수도 없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삶을 좀먹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도 예외가 아니다. 진정한 백신은 어쩌면 자정 능력에서 찾아야 할 것도 같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서 남에게 내어줄 수 있는 아량과 희생이 코로나 치유의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6월의 신록이 더욱 눈부신 것도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며 경외하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과 같다. 친구의 말처럼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에 진심을 담아 오늘은 오랜 벗에게 연락 한 번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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