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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을 품은 연오랑과 세오녀. U울림통(30)

 신라 전기 마지막 박씨계 왕인 제8대 아달라(阿達羅) 이사금 때 동해 바닷가(포항 영일만 호미곶)에 연오(延烏)와 세오(細烏) 부부가 살았다. 

 어느날 남편 연오가 바다에서 해초를 따다 어떤 바위에 실려 일본(도기야 都祈野 : 해돋이의 뜻)으로 떠내려 갔다. 
 그리고 이른 곳의 사람들이 그를 받드니 일본 변방에서 왕이 되었다. 

 돌아 오지 않는 남편을 찾던 아내 세오는 연오가 벗어 놓은 신발이 있는 바위에 올랐는데 역시 실려 일본에 이르니 남편과 재회 하고 귀비(貴妃)가 되었다.

 이후 계림(신라)은 해와 달을 잃어버려 임금이 일관(日官)을 불러 물으니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갔다고 말한다.

 임금은 사신을 보내 연오와 세오를 데리고 오라 했으나 부부는 거절하며 대신 왕비가 짠 명주 비단을 내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 했다. 

  그 비단을 국보로 삼고 임금의 창고 귀비고(貴妃庫)에 소중히 보관하며 제사를 지내니 계림은 해와 달을 되찾을수 있었다. 

 장장호 작가는 연오와 세오의 이름에 각각 들어간 '까마귀 오(烏)'는 하늘을 숭상하며 까마귀를 신물(神物)로 여겼던 풍습과 두 사람이 바다로 건너가 왕족 지위를 가졌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한다. 

 삼국유사와 설화집 수이전(殊異傳)에 전하는 이 이야기는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도 기록이 남아 있어 고대 한.일 관계에 관한 신화와 설화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진행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포항시 남구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연오랑과 세오녀의 기념조형물. 2019. 5. 18
포항시 남구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연오랑과 세오녀의 기념조형물. 2019. 5. 18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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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보기 : 장창호TV [31] 연오랑 세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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