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실 여섯 가닥을 뜯는 쉼 없는 파랑
명주실 여섯 가닥을 뜯는 쉼 없는 파랑
  • 김려원
  • 2021.07.08 20:53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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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원 시인의 울산 등대 마주보기] 2. 슬도등대
방어진항 끝자락 동진포구
60여년 세월 녹슨 철문 붙들고
구멍 숭숭 거문고 소리 벗삼아
찬란한 붉은 하루 끝맺음 하는 곳
슬도섬은 바다의 거친 숨을 달래고 등대는 선박의 밤길 어둠을 밝혀준다.  사진=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
슬도섬은 바다의 거친 숨을 달래고 등대는 선박의 밤길 어둠을 밝혀준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지극한 만남은 곡진하기 그지없는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두둥두둥 둥당 둥기당, 어느 전생의 못다 이룬 사랑이 꿈결에도 나의 별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가. 그를 들으려 방어진항 끝자락의 성끝마을, 동진포구로 간다. 해상공원으로 단장한 입구가 환하다. 주차장 왼편 언덕배기에선 소리박물관과 소리카페가 파랑의 일렁임을 듣고 있다. 주차장을 둥그렇게 감싼 계단식 쉼터에 앉으니 바윗돌을 어루만지는 물보라 틈에서 갯강구들이 바쁘다. 장난감 같은 낚싯대로 꽃게를 잡아 올리는 아빠와 아이는 신이 났다. 태화루 푸른 병과 오징어땅콩을 소일 삼은 두 중년은 휘어진 길의 노년행 열차에 오른 듯 혀가 꼬이고.

 그러든 말든 300여m 앞의 하얀 등대가 자태를 뽐내며 바람에게 전언을 한다. 어여 와, 이리 오라니까. 나는 32년 전에 놓인 방어진방파제를 어슬렁대면서 둑에 양각된 조개, 물고기, 해초를 구경한다. 정면에서 손가락 프레임을 짜면 둥글게 휘어 보이는 슬도교. 반구대암각화의 '새끼 업은 고래'조각상 그림자의 호위를 받으며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바람을 만져본다. 이제 스물댓 칸 나무계단을 오르면 슬도등대. 잠시 갈등이 인다. 계단을 오를까, 오솔길을 오를까. 그래, 계단을 올라 오솔길로 내려가자. 

 해발 7m 꼭대기에서 슬도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감지 센서가 4편의 거문고 곡을 재생 중이다. 등대가 내어놓은 널찍한 허벅다리 위에 가볍게 몸을 얹는다. 거구를 지탱한 60여 년 세월이 녹슨 철문을 붙들고 있다. 등대 계단을 올라 전망대를 몇 바퀴 돌아본다. 팔각으로 만들어진 몸체에서 고래 5마리가 헤엄친다. 몸체에 맞춘 일곱 각의 울타리(한 각은 계단에 내주었다) 위아래로 각각 8개의 전등이 달려있다. 주변의 낮은 수심과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암초들로 인해 1958년에 설치한 높이 10.8m의 등대. 등대지기는 없는데 등대를 감아 도는 바람이 자꾸만 모자를 붙잡으란다. 그때쯤 끝 간 데를 알 수 없는 명주실 여섯 가닥을 뜯는 쉼 없는 바람 소리, 바람에 실린 파도 소리, 너럭바위가 미끄럼 태우는 물보라의 즐거운 비명 소리. 태곳적 바다가 생겨날 때 터진 울음이 이랬을까. 멀리 있어도 한없이 보고픈 당신. 바위를 뚫고 오른 한 자락 현이 명치를 날카롭게 벤다. 

섬 끝 바위에 깊게 패인 구멍이 많아 곰보섬이라 불렸으나 밀려온 갯바람과 파도가 구멍과 만나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해서 슬도(瑟島)로 널리 알려졌다.
섬 끝 바위에 깊게 패인 구멍이 많아 곰보섬이라 불렸으나 밀려온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 구멍에서 만나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해서 슬도(瑟島)로 널리 알려졌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파도를 끌어당기는 바위등성이로 내려가 본다. 현을 뜯는 바람의 손이 저를 흘려듣는 내 귀싸대기를 때린다. 중국 전국시대에는 현을 뜯을 때 흑두루미가 날아와 춤추었다는데 이곳에선 갈매기가 바람의 씨앗을 물어다 준다. 바다 쪽으로 뿌리를 내린 바위마다 구멍이 숭숭하다. 구멍 숭숭한 울 엄마의 뼈도 저와 같으리라. 맘 한쪽이 파도의 매를 맞는다. 그 멍울진, 120만 개에 이른다는 공명통. 연체동물 가운데 최고의 맛이라는 돌맛조개가 모래로 굳어진 바위섬을 뚫은 것이란다. 산액을 분비해 석회암이나 산호초를 녹여 그 속에 들어가 사는 돌맛조개는 멸종위기종이다. 최고의 맛을 사람들이 놔둘 리 없으니. 수백만 년간 물속 바위에 구멍을 파댔을 조개. 그들의 지극한 수고로움으로 많은 사람이 듣는다는 거문고 소리 들으려 허공에다 귀를 내민다. 공룡이 쿵쾅거리던 때의 발자국 소리까지 들을 참이다. 정상에도 나 있는 구멍 때문에 해저 암반의 융기로 추정하는 섬. 파도와 바람을 맞는 너럭바위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섬.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 시루섬. 거북이를 닮아 구룡도. 구멍 숭숭 곰보섬. 그리운 이와 파도빛 술잔을 부딪치고픈 술이섬이라는 이름의 여기. 등대 전망대에서 숨바꼭질하는 엄마와 꼬마의 깔깔거림에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난다. 아이는 멀리 떠다니는 배도 보고 꽃게도 만지고 바람에 맞서 방귀도 뀐 모양이지만, 학원 갈 시간인가 보다. 엄마가 살살 달래며 재촉하는데 등대만 맴맴 돈다. 방파제낚시터에 이어진 빨간 등대가 궁금해 몇 발자국을 떼니 클로버밭. 습관처럼 무릎을 굽혀 행운을 찾는다. 아이에게 주고 싶었으나 보이지 않는다. 아이야, 일상 속에 숨은 행운을 오늘 찾은 꽃게처럼 만져보렴.

 낚시 나온 몇 사람 둘러앉아 생선회를 먹는 건너편으로 하얀 방어진등대가 지척이다. 시퍼런 물이 가로막아 여기선 걸을 수 없는 곳. 낚시터 벽면에 그려진 색색의 물고기들을 지나서 만난 빨간 등대의 이름표는 방어진항북방파제등대. 방어에서 유래한 방어진항 지명을 따 2017년에 부조 타일로 제작한, 일명 방어등대다. 대방어 2마리, 갈매기, 조개, 해초, 어부 그림이 정겹다. 전망대에 서니 바다 건너 도심과 수평선에 즐비한 선박이 그림 같다.   

 거문고 가락을 뒤로한 오솔길의 무꽃, 팬지, 해국이 소리박물관 방향으로 한들거린다. 아뿔싸! 월요일 휴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방울방울 음미하며 마을에서 가장 높은 소리카페 창으로 슬도등대를 마주보려 한 낭만은 무산되고. 개구진 아이의 손인 듯 슬도를 꽉 붙잡은 성끝마을 엄마의 품으로 들어선다. 골목 가운데서 팔을 벌리니 손끝이 양쪽 담벼락에 닿는다. 내가 엄마의 몸을 벗어날 때도 이런 골목을 지났을 것이다. 웃자란 자주수국의 꽃만큼 낮은 지붕, 해녀와 파도를 품은 낮은 담장, 낮은 출입문, 더 낮은 늙은 엄마들, 더 낮게낮게 웅크린 길고양이들 그리고 전봇대의 노란 아랫도리와 노란 대문들. 배가 고파 저도 모르게 노랑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우리네 엄마들의 노란 미소 같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돼 온 어촌마을 풍경은 누군가에겐 고향 같겠으나 누군가에겐 낯설 것이다. 담벼락 귀퉁이에 붙은 에어컨 실외기가 파도 소리를 끌어당겨 큰 박자로 웅웅거린다. 거문고 연주가 매 순간 흐르고 흰구름 드높이 솟은 이곳은 가장 높고도 좀더 낮은 성끝마을. 사람의 마을은 높낮이로 판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슬도와 연결하는 바닷길이자 방어진항을 드나드는 어선을 지켜주는 방어진 방파제의 모습.
슬도와 연결하는 바닷길이자 방어진항을 드나드는 어선을 지켜주는 방어진 방파제의 모습.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동진끝섬-현대백화점행 31번 버스가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머무르고 있다. 입안에 침이 고여 활어회센터를 둘러보고 오니 휜 도로 저편으로 버스의 꽁무니가 사라진다. 방어진 마을 곳곳에 내려줄 거문고 자락 한가득 빈 좌석에 싣고서. 집으로 가려니 한창 막힐 퇴근 시간. 길에서 밀리느니 거문고 소리나 듣자. 나는 슬도로 다시 들어간다. 아까와는 다른 이상한 느낌이 난다. 카메라를 든 10여 명이 바위에 서서 서쪽을 보고 있다. 해거름이니 아마 일몰 촬영이 목적? 종일 흐려서 생각지도 않던 광경이다. 그들의 곁에 조심스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 먹구름과 흰구름이 교차하며 놀을 끌어당긴다. 세상의 밝음을 마감하는 중이다.
삼각대 카메라를 세워둔 것으로도 모자라 손에도 카메라를 든 이에게 물었다. 
 "혹시, 일몰을 찍으시는 건가요?"

김려원 시인
김려원 시인

 그렇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동해의 일몰을 볼 수 있는 최고 명당이란다. 동해는 일출, 서해는 일몰이라는 수식이 쨍그랑 깨져버린 찰나. 그런데 그와 나는 다른 서쪽을 보고 있었나 보다. 떨어지는 해가 아쉬워서 왜 저 해를 찍지 않느냐고 내 맘이 동동거리는데 그는 심드렁심드렁. 한순간 떨어져 사라져가는 오늘의 해를 나는 보았고, 해덩이에 반사되는 하늘의 변화를 그는 보았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 속 좁은 문맹을. 하얀 슬도등대의 허벅다리 곁으로 바알갛게 들어섰다가, 멀고 먼 숲을 한 점으로 불태우고 사라진 태양. 보고있어도 미칠 듯 보고픈 심장을 뜯으며 오늘의 해가, 차마 붙잡을 수 없는 당신의 손과 다름없이 떠났다, 그날처럼.

-뒤돌아보지 말아요,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내 사랑 에우리디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어둠 속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 당신도 결국 나를 따라서…!
-에우리디케, 우리의 별자리를 보아요. 영원한 나의 멜로디, 나의 거문고 에우리디케.

 
 5월 초부터 볼 수 있는 슬도의 거문고 별은 저문 이 저녁의 어디쯤 왔을까. 너럭바위 어디쯤에 내려앉아 슬도등대를 휘몰아쳐 도는 작은 섬의 거문고 가락을 뜯고 있을까. 홀로, 아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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