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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대교와 울산항 야경.  김동균기자 justgo999@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대교와 울산항 야경. 김동균기자 justgo999@

   짧은 낮이 자꾸 짧아져 간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 고인 어둠을 산토끼도 모르게 살금살금 퍼내오는 동짓달. '동짓달 기나긴 밤 허리 하나 베어내 봄날 이불 아래 서리게 넣었다가 고운 님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는 황진이의 시 가락이 떠오르는 겨울밤. 그렇다 하여 이 밤이 누구에게나 길고도 지루할까. 밤의 시작을 내심 반기는 곳이 있다. 울산만에 면한 산자락을 깊숙이 돌아 공영주차장에 차를 댄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잘 닦인 산길을 오른다. 12월 중순의 찬 공기를 숨차게 뿜어내는 중년 남녀가 앞서 걷는다. 백발이 된 억새들이 새해맞이 채비에 바쁘고, 까마귀는 까옥 까옥 까아옥 산등나무 위에서 어디 남은 도시락이 없나, 배고프게 운다. 목적지까지 800m 남았다는 이정표에 이르자 전망대가 보인다. 해가 전망대의 등을 넘어 내일로 가는 중이다. 산등성이의 철탑이 눈높이로 가늠된다. 해발 203m, 화정산 정상이다. 눈앞을 가로막는 63m 높이의 전망대.

 

울산의 산·바다·공장
광활하고 다채로운 풍광
앙증맞은 미니어처로
내 눈안에 들어오네

거대한 성장 이뤄 얻은
무지개빛 반짝임은
고층건물 야경과 다른
흉내 낼 수 없는 불꽃잔치

 

정박중인 선박들이 가득찬 울산항과 울산대교의 모습. 울산시 제공
정박중인 선박들이 가득찬 울산항과 울산대교의 모습. 울산시 제공

3층 창가를 한 바퀴 두 바퀴 돌며 내려다보니 탁 트인 울산의 풍광이 달려든다. 동창 너머에 이르게 뜬 낮달이 울산 앞바다에다 쌍둥이 하나 내려둘 즈음이다. 오랜만에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간절하게도. 눈 비비고 일어나서 해가 돋기를 고대한 올해 첫 아침의 설렘 같다. 느릿느릿 돌다 보니 이 작은 공간에서 광활하고 다채로운 풍광을 만끽하는 뜻밖의 즐거움이 인다. 울산의 산과 바다와 공장들. 동쪽에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 울산과학대학교, 방어진항, 화암추등대,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와 멀리 간절곶이 희미하게 보이고 울산신항, 온산공단, ㈜SK, 대운산. 정족산, 장생포, 신불산. 울산석유화학단지, 문수산, 가지산, 고헌산, 치술령까지 눈길이 닿는다. 가까운 KCC를 훑고 북쪽의 현대자동차, 눈 아래의 현대미포조선까지 섭렵한다. 이 너른 곳을 한눈에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을 꼭 거머쥐고 있었다. 저 치열한 삶의 현장이 마치 앙증맞은 미니어처 같다. 옥상에 올라가니 바람이 펄럭인다. 풍백신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시 돌아보는 풍광. 살았으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폐가 펌프질하는 듯하다. 광포한 바람에 이내 공포가 엄습한다. 옷 틈을 파고들어 살을 에는 추위에 도망치듯 내려온다. 실내가 안온하고 다정하다.


 16시 45분, 서녘이 물든다. 창에 그려진 방향-곳곳의 위치를 창에 상세히 표시해 두었다-이 대운산을 가리킨다. 붉은 해가 산꼭대기에 꽉 붙었다. 다시 옥상으로 올라간다. 산봉우리가 한 덩이 해를 감추는 시간은 5분여. 휴대폰 동영상에 해넘이를 담는 동안은 손이 시린 줄을 몰랐다. 오늘 낮을 마감하는 저 해와 똑같은 해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한 남성이 숨을 몰아쉬며 삼각대를 세우더니 연신 해넘이 사진을 찍는다. 노을에 물든 옆 모습이 그림 같아서 나는 사진 찍는 그를 찍었다. 해가 이울고, 하늘이 붉게 물든다. 울산만을 둘러싼 세상이 찬란해진다. 하얗다가 노랗다가 오렌지빛이었다가, 눈앞에서 타오르는 꽃불들. 울산대교도 흰빛에서 푸른빛, 파란빛, 보랏빛… 굴곡진 하루가 무지갯빛으로 반작인다.


 서울 스카이 123층에서 내려다본 야경, 엑스 더 스카이 100층에서 내려다본 해운대, 마카오 타워 61층 전망대에서 본 야경도 아름답지만, 울산대교 전망대 야경은 남다르다. 이곳은 고층 건물이 쏟아내는 불빛 야경이 아니다. 산업시설에서 솟구치는 꽃불, 울산만의 외항과 내항에 정박하거나 오가는 거대한 선박들 불빛, 그리고 남구와 동구를 최단거리로 이은 울산대교의 우아한 라인이 어울린 화려함이다. 어떤 곳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산업도시 울산만의 꽃불잔치다.

울산대교 전망대.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대교 전망대.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의 하루는 돌아봐도 돌아봐도 둥글다/ 뒤돌아본 적 없는 지구별이 샛별을 돌아와/ 영남알프스의 산과 울산 바다를 돌린다/ 염포산 너머 출렁다리에 뜬 이른 달은/ 숨겨둔 옥토끼를 쿵덕쿵덕 내어놓고// 당신 얼굴이 당신에게 가닿는 일처럼/ 뱃고동은 방어진항과 장생포항과 울산항을 돌린다/ 해넘이 찰나의 5분/ 치술령 핏빛 바람이 대왕암을 친 머리칼을 휘감고// 당신이 달려가는 울산대교 하얀 등이 하 푸르다/ 파랗다 아니 붉다, 붉디붉은 보랏빛 불꽃이로다// 당신이 가던 길 달려와 땀방울 떨군 잿빛 작업장이 노래지면/ 파이프라인 전구마다 오렌지 불꽃이 튀고/ 잉걸불 꽃잔치가 붕새의 날개로 펼쳐지는// 저 한 쌍의 등대와 골리앗크레인을 보라/ 다리의 난간과 산자락의 노을, 공장의 굴뚝과 바다의 일렁임/ 당신의 얼굴과 저 달이, 저리 어둠을 터뜨리는 불꽃/ 이곳에선 하나의 꽃불로 피어남을/ 이곳에선 동짓달 긴긴 어둠을 꽃불로 밝히는 일임을/ 줄기를 세운 불똥이 줄기를 뽑아 스치우는 찬바람아// 한낮의 일광을 물어 나른 까마귀 날갯짓이 눈부신 십리대숲 다리 걸쳤듯/ 울산만의 갑오징어 떼 흰 등뼈 곧추세워 울산대교의 쇠밧줄과 겨루네/ 온 바다 불태우는 당신아/ 밤마다 꽃불아이 잉태하는 울산큰애기야/ 오늘은 누가 불꽃대붕의 치맛자락에 데이는가
 - 졸시'돌아봐도 돌아봐도 울산대교'전문


 
 울산대교는 민간기업 9개사가 울산하버브릿지주식회사를 조직해 건립했다. 남구 매암사거리 시작점에서 동구 방어동 대교터널 입구까지 1800미터. 단경간(다리 한가운데에 솟은 주탑과 주탑 사이의 교량이 하나라는 뜻) 현수교(다릿발 없이 케이블에 매달린 다리)는 1150미터다. 단경간 현수교는 구름다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광안대교, 이순신대교, 남해대교, 영종대교가 이와 같다. 울산항과 자동차 수출부두를 오가는 대형선박의 최대항로 폭을 위해 채택한 방식. 울산의 동과 서를 이어주므로 산업과 해양 발전, 아산로와 염포로의 교통체증 해소에 기대를 모으며 2015년 6월 1일에 개통했다. 시속 70km 제한 속도의 자동차전용도로이다. 최대 40분이던 방어진과 장생포 간 거리는 15분으로 대폭 줄었다. 구간과 차량의 크기에 따라 250원~3,600원까지, 교량 구간 이용요금은 600원~2,400원이다. 


 울산대교 건립 과정에서 울산대교 전망대도 만들어졌다. "동구와 장생포가 경쟁해 이곳에 세우게 됐어요. 울산대교 전망대는 울산 야경을 소개하는 유일한 곳이라 명소가 됐습니다. 12월 불빛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아서 더 예뻐요." 울산문화관광 해설을 6년째 하고 있다는 이문희 해설사의 또박또박한 설명을 듣는 중이다. "울산은 바다와 강과 산에 산업이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같은 곳이지요. 밤엔 가족과 연인이 많이 들르는데, 울산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경탄합니다. 그러면서 늘 평면적으로만 보아온 주변에 대해 재발견을 해요. 일반적인 21층 아파트에선 느끼지 못하는, 지구는 둥글다는 거지요."


 "올해 울산은 한국경제성장을 위한 특정공업지구 선정 60주년 기념해입니다. 광역시 최초로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해이기도 하고요. 이 일대는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입니다. 지금도 저 아래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차량이 보이네요." "저 남쪽 간절곶 방향이 울산온산국가산업단지입니다. 울산대교 다리 오른편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고요. 낮엔 파란색으로 보이죠. 지금 아산로를 통해 차량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네요. 자동차수출선적부두는 그 맞은편이고 낮엔 하얀색으로 보여요. 그 옆에 있는 카 캐리어 선박도 보이지요?" 

울산대교의 야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울산대교의 야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거대한 울산공단 불빛들이 울산대교 무지갯빛 반짝임과 어울려 울산의 역동성을 꽃불로 피우는 밤. 저 빛이 사그라든다는 건 우리 경제가 암흑시대로 드는 일이다. "산업 테마 시티투어 때 SK,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을 방문해요. 공장에 들어가면 파이프라인밖에 안 보여요. 낮에도 사람이 거의 없어 회색빛이지요. 밤엔 위험 물질을 취급하니 파이프라인마다 전구를 켜서 위험감지를 합니다. 저리 반짝이는 경관을 이룬 이유입니다." 


 이른 저녁 식사를 한 듯한 부부가 아이처럼 키를 낮춰 망원경을 들여다본다. "옴마야, 무섭다!" "머라꼬? 저게 머가 무서븐데?" 서로 콧방귀를 뀌며 울산대교 방향으로 자리를 옮긴다. 울산의 낮을 각기 담아온 그들이 울산의 밤을 각자의 휴대폰에 담는다. 연인 한 쌍이 들어온다. "자기야, 울산의 밤이 넘 황홀하다 그쟈?" "글체? 내도 놀랍다!" 그들은 어깨를 서로 감싸며 출렁다리 쪽으로 간다.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1층의 친절한 안내원은 "산길이긴 해도 안전할 거예요. 걱정되면 마을버스를 타면 돼요. 20분 후에 오겠네요." 한다. VR체험관과 매점은 해질녘에 이미 문을 닫았다. 카페는 전망대가 문 닫는 21시까지 운영한다지만 커피를 숭늉 마시듯 해야 하니 섭섭하다. 입구에 서 있는 바오밥나무 광섬유 불빛과 울산공단 꽃불을 떠올리며 산길을 내려간다. 밤길은 호랑이보다 사람이 무섭다는데 밤길의 호랑이는 멸종됐고, 코로나로 얼굴이 멸종된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간다. 사람이 다가오면 가로등을 호위병 삼아 헛둘헛둘, 눈 비비며 운동 나온 아줌마인 양 제자리 뛰기를 한다. 15분여 밤길을 쫄깃한 심장으로 내려왔다, 오늘도 무사히. 식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시동을 건다. 휘황한 울산대교를 달릴 환희의 순간이다. 꽃불 다정히 피워 또 다른 별 하나를 태우는 이 밤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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