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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정 동화작가
최미정 동화작가

새해를 맞았다. 새해가 되면 좀 더 욕심이 생긴다. 지난해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쉬움으로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많이 이루고 싶어진다. 신년 초 해외 가족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들뜬 아이들은 가방 한가득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썩 필요 없는 물건들이 가방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가방에 짐이 많으니 어딜 이동하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까운 시간을 가방을 풀고 싸는데 보내다 보니 살짝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없으면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안 쓰면 되는 것을 아이들은 하나라도 빠지면 여행에 흠집이라도 날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버리지 못하고 쟁여 놓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에 아이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저 아이들도 언젠가는 조금씩 줄여 가는 것의 묘미를 알아가리라 여기면서 삶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삶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산 초입에서 느끼는 설렘이 인생의 처음이요 정상을 향한 열정과 몸부림이 지금이다. 산 정상이라는 목표는 내 마음에 열정을 더하게 하고 지친 몸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내가 산을 오를 때에도 줄이고 줄인 배낭이지만 돌아왔을 때는 손 한번 대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배낭을 꾸릴 때는 한없이 중요한 것들인데 돌아보면 그것들은 내 어깨를 누르던 짐이었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욕심인 줄 모르고 양껏 담기만 한 것이다. 


 내 삶에서 욕심은 언제고 나를 따라다니며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 내가 인생의 절반쯤 살았다며 마음을 다독일 때 욕심의 실체도 조금씩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어쩌면 욕심을 버리기 위한 하나의 도피다. 산 정상에 서면 아주 가끔은 욕심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욕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내가 이 험한 곳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겠냐 싶기도 하다. 정상에 오르고서야 내가 바르게 살고 있구나.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리고 가시에 찔리며 오른 정상이니 보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위안 삼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이는 산을 오를 때 비워내기 위해 산을 오른다고 하는데 나는 오를 때 마음 따로 내려올 때 마음 따로다. 항상 가벼운 배낭을 생각했다가 돌아와서 배낭의 것들을 꺼낼 때 이게 왜 필요했을까? 의아했던 마음 한편에 다음에 또 다른 걸 넣어야지. 새록새록 욕심이 생기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길에서 아이들의 짐 속에서 사람의 길을 발견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는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다. 아이들은 싸고 또 싸고 그만한 준비가 있었기에 길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손짓, 발짓 짧은 영어 실력으로 몇 번씩 소통해 가며 길을 잡은 여행이었다. 여행사의 도움 없이 여행 일정을 짜느라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나는 낯선 길 보다 익숙한 곳, 많은 이들이 마음을 두어 간 길에 더 매력을 느낀다. 이 작은 외길에 숨어 있을 무수한 마음들의 자취를 읽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작은 돌부리를 넘으며, 참나무 그늘을 지나며, 때로는 커다란 암석 사이를 굽어 지나며 무수히 많은 사람이 풀어놓았을 삶의 애환들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아이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기를 좋아한다. 배낭이 무거워지고 준비할 것투성이라 시간이 배로 걸려도 낯선 곳으로 동경은 그 또한 매력이 있지 않을까? 나는 조금씩 줄여 가는 짐을, 아이들은 채우고 또 채워서 가는 짐을 지고 같이 해서 더 즐거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니 그 또한 아쉬울 뿐이다. 


 가방은 다시 꾸릴 수 있다. 내가 나이 들어도 다시 꾸릴 가방은 항상 내 곁에 존재할 테니. 언제부터인가 치열하게 살기보다 느리게 살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나이를 먹은 탓이다. 줄여야 좋다는 마음이 또 바뀌려고 한다. 줄이기보다 채우고 낯선 곳으로 일부러 찾아가고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지 않을까. 


 버려야만 다시 채워진다는 사실에 온전히 마음을 다 버린 것은 아니지만 활기찬 삶을 위해서 조금은 욕심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저 그런 하루, 쳇바퀴 구르듯 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여행 마지막 날 카운터 직원과 한참 동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 나오던 딸에게 물었다. 
 "둘이서 무슨 말을 한 거야?"
 "나도 잘 몰라."
 "네가 알겠다고 고개 끄덕끄덕했잖아."
   "직원이 웃으면서 말하길래, 나도 끄덕이며 웃은 건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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