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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낙원, 쿠시로(釧路)!

쿠시로는 두루미와 사슴, 여우 등 야생동물이 풍부한 생태도시이다. 겨울이면 두루미(鶴) 사진을 찍기 위해 전 세계의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이곳에서는 여러 장소에서 두루미 중 특히 단정학(丹頂鶴)을 쉽게 볼 수 있다. 두루미는 원래 철새이지만 홋카이도에서는 텃새가 되었다. 곳곳에서 먹이를 주며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고 또한 쿠시로습원국립공원(釧路湿原國立公園)과 같은 두루미들이 생장하기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겨울이 지나도 시베리아 등지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다. 두루미는 멸종위기동물로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쿠시로 두루미 1. ⓒ이상원
쿠시로 두루미 1. ⓒ이상원

 

전쟁터가 되는 ‘오토와바시(音羽橋)’!

쿠시로 '오토와바시(音羽橋)의 아침'. ⓒ이상원
쿠시로 '오토와바시(音羽橋)의 아침'. ⓒ이상원

세츠리가와(雪裡川)에 놓여 있는 작은 다리로 단정학(丹頂鶴)을 볼 수 있는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이다. 겨울이면 이 강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깨어나는 두루미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일본 현지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진가들의 각축장이 된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돼 있어 늦게 가면 삼각대를 세울 마땅한 자리가 없어 무조건 일찍 가서 삼각대를 세워 두어야 한다. 우리 일행은 새벽 3시에 호텔을 나서 눈길을 달려 30분만에 이곳에 도착해 삼각대를 받쳐 두고 기다렸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영하 20도였다. 여기서 속눈썹이 어는 경험을 했고, 삼각대가 얼어 애를 먹는 사람도 있었다.  

쿠시로 두루미 가족. ⓒ이상원
쿠시로 두루미 가족. ⓒ이상원

오랜 기다림 끝에 여명이 밝아오면서 두루미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600mm 이상의 초망원렌즈를 장착한 수많은 카메라에서 셔터 소리가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9년 전 왔을 때도 이곳은 전쟁터 같았다. 물안개가 피어나고 나뭇가지에 생긴 상고대가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고, 두루미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대로 괜찮은 장면이었다. 평온하게 일상의 아침을 맞고 있는 두루미가 사람들의 바람대로 움직여줄 리가 만무한데도 일부러 힘들게 찾아온 사람들인지라 여기저기서 두루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한국인들도 많이 와서 한국말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더 좋은 상황을 기대하며 이튿날에도 일찍 가서 기다렸으나 짙은 물안개로 두루미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세상일이 어디 인간의 욕심대로 되던가.

 

단쵸관찰센터(丹頂觀察センタ-)

쿠시로 '두루미의 착륙'쿠시로 '두루미의 착륙'
쿠시로 '두루미의 착륙'. ⓒ이상원

이곳에서는 넓은 평원에서 일정한 시간에 먹이를 주어 그 먹이를 먹기 위해 두루미들이 몰려온다. 코로나 유행 기간에는 관광객 출입이 되지 않았으나 올해부터 재개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냉동생선을 먹이로 주어 두루미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독수리들도 와서 두루미와 먹이 다툼하는 장면을 순간 포착하는 게 주요 촬영 포인트의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의 우려 때문에 동물성 먹이 대신 옥수수 등의 먹이를 주게 되어 맹금류는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일반 관광객이 보면 좀처럼 보기 힘든 단정학을 마음껏 볼 수 있으니 더 없는 볼거리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 
그 외 ‘츠루이·이토 단쵸 생츄어리(鶴居·伊藤タンチョウサンクチュアリ)’, 츠루미다이(鶴見台), 카쿠치목장 등에서도 두루미 비상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모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루미의 숫자도 적고 역동적인 장면을 볼 수 없어 각국에서 모여든 사진가들을 또 다시 안타깝게 했다. 두루미들이 조류 인플루엔자를 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두루미는 겨울에도 천적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물속에서 한 쪽 다리를 들고 잠을 잔다. 두루미의 발목에는 원드 네트라는 열교환기관이 있어서 발끝에서 차가워진 피가 그대로 몸통의 심장까지 가지 않고 열교환기관에서 더운 동맥피에 의해 데워진 뒤 체내로 들어간다. 이때 동맥피는 거꾸로 적당히 차가와져서 발끝으로 가서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단정학(丹頂鶴)은 정수리 부분이 빨간 색을 띠고 있어 이름 붙여진 두루미인데, 빨간 부분은 털이 아니라 피부이고 화가 나거나 흥분했을 때 더욱 빨개진다고 한다.

 

쿠시로 인근의 호수! 

마슈 호(摩周湖)! 

쿠시로 아칸 마슈호(摩周湖). ⓒ이상원
쿠시로 아칸 마슈호(摩周湖). ⓒ이상원

흘러 들어가는 강도 없고, 흘러 나오는 강도 없는데 세계 굴지의 투명도를 과시해서 ‘신비로운 호수’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파란 호수를 만나는 건 운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안개가 많아 호수를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다행히 마슈 호 제1전망대에서 맑은 호수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났다. 

 

쿳샤로 호(屈斜路湖)! 

쿳샤로호(屈斜湖)의 아침. ⓒ이상원
쿳샤로호(屈斜湖)의 아침. ⓒ이상원

일본 최대의 칼데라호이다. 이 호수 근처의 가장 유명한 온천 마을은 ‘스나유(砂湯)’로 호숫가의 모래를 파면 온천수가 퐁퐁 솟아난다. 이곳에서 고니(백조)에게 먹이를 주어 많은 고니를 만날 수 있다.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호숫가에 코탄온천(コタン溫川)이 있다. 호수는 다 얼었는데 그 온천이 나오는 곳만 얼지 않아 그곳에 고니들이 모여 있다. 일출을 기대하며 아침 일찍 그곳에 도착했을 때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호수 바로 옆에는 무료인 남녀 공동 노천탕이 있다. 마침 그 노천탕에서는 외국인 여성 한 명이 온천욕을 하고 있었다.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눈 덮인 호수와 고니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고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노천온천에 몸을 담그다니…참으로 신나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사진 찍는다고 그런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혹시 그곳에 다시 가게 되면 꼭 그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하리라 다짐을 한다.

그곳에는 그 노천온천을 관리하는 한 노인이 있다. 아이누족이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그 노천탕의 온도를 적정하게 맞추고 청소도 해오고 있다. 겨울철 먹잇감이 부족한 고니에게 먹이를 주어 보살피기도 한다. 그가 있어 그 고요한 산골은 추운 겨울에도  세상을 따뜻하게 작은 안식처가 되는 것이리라. 

아칸 호(阿寒湖)! 

둘레 약 30km의 큰 호수로 주변에 고급 료칸(旅館)과 호텔 등 숙박시설이 다채롭고 볼거리가 많은 휴양지이다. 이곳에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누족의 마을인 ‘아이누코탄(アイヌコタン)’이 있다. 또 여기에는 일본의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끼 같은 모습의 동그란 녹조 생물인 마리모(マリモ)가 살고 있다. 

홋가이도는 원래 아이누족이 살던 땅이었다. 오랑캐의 땅이라는 뜻인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리다가 1869년 홋카이도(北海道)로 개칭되면서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 후 홋카이도의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본토인들의 대대적인 이주와 함께 아이누족의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 철저한 동화정책으로 아이누어 사용이 금지되고, 고유의 문화와 전통은 말살되었다. 미개인 취급을 받으며 탄압을 받았고, 모든 면에서 차별대우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은 2019년 ‘아이누인의 긍지가 존중되는 사회실현을 위한 시책추진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처음으로 아이누족을 일본 원주민으로 명기하고, 정치 및 경제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들의 언어를 기억하는 사람이 줄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홋카이도에는 13,000여 명의 아이누족이 살고 있으나 해마다 그 숫자가 줄고 있다. 

일본의 최동단, 네무로(根室)!

일본 최동단의 인구 26,000명의 작은 어촌 마을로 홋카이도에서 대중교통이 가장 불편한 지역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홋카이도의 수많은 명소를 두고 관광 안내 책자에도 잘 나오지 않는 이곳을 렌트카를 몰고 찾아온 이유는 독수리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후렌 호(風蓮湖)의 독수리

네무로 후렌코(風蓮湖)의 흰꼬리수리. ⓒ이상원
네무로 후렌코(風蓮湖)의 흰꼬리수리. ⓒ이상원

겨울철에 두껍게 얼음이 언 후렌 호(風蓮湖)에서 관광객에게 입장료(1,500엔)를 받고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곳이 있다. 그 먹이를 먹기 위해 날아오는 독수리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먹이 주는 시간에 맞춰 숙소에서 일찍 나가 삼각대를 받치고 기다렸다. 눈이 날리고 있었다. 냉동 생선을 먹이로 주자 여러 종류의 독수리들이 모여들었다. 먹이가 풍부해서인지 먹이 다툼하는 장면 같은 걸 볼 수는 없었다. 마치 식사를 하러 넓은 연병장에 모여든 작은 병정들 같았다.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어서 실망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여러 나라에서 온 사진가들이 독수리들이 움직일 때마다 연사 모드로 계속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나중에 보면 마음에 드는 사진은 별로 없고 결국 대부분의 파일들이 휴지통에 버려지게 될 것을…어쩌면 그것이 사진을 찍는 것보다 더 힘들고 귀찮은 작업이다.

네무로 후렌코(風蓮湖)의 사슴. ⓒ이상원
네무로 후렌코(風蓮湖)의 사슴. ⓒ이상원

독수리들이 숲 속으로 날아가고 야생의 사슴들이 호수로 나왔다. 에조시카(えぞしか)라고 부르는 홋카이도의 사슴은 길을 가다가도 있었다. 

하나사키등대(花咲灯台)! 

네무로 하나사키등대(花咲灯台) 앞 주상절리와 바다. ⓒ이상원
네무로 하나사키등대(花咲灯台) 앞 주상절리와 바다. ⓒ이상원

이 등대 아래 해변에는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쿠루마이시(車石)이라는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있다. 석양 무렵 이곳에 도착해 장노출로 사진을 찍었다.
 
노삿푸미사키등대(納沙布岬灯台)! 

일본 최동단의 등대, 네무로 노삿푸미사키등대(納沙布岬灯台). ⓒ이상원
일본 최동단의 등대, 네무로 노삿푸미사키등대(納沙布岬灯台). ⓒ이상원

일본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이다. 이 등대 왼쪽이 오호츠크해이고 오른쪽이 태평양이다. 이등대 앞에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곳에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영토분쟁 중인 쿠릴열도(일본명: 千島列島)가 있다. 주변 곳곳에 북방 영토를 반환하라는 슬로건이 보이고, 영토반환 요구를 담은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궂은 날씨에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영토분쟁 현장에 서 있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네무로를 떠나기 전에 비교적 큰 슈퍼에 들러 간단한 쇼핑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카드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1엔까지 일일이 주고받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되었고 한때는 전기제품과 조선업의 세계 선두주자였으나 한국에게 1위 자리를 내준 지 오래 되었고…, 아직도 세계 최강국의 하나이면서 관공서와 회사에서는 이메일 대신 팩스로 문서를 주고 받고, 전자결재 대신 도장을 찍는 이상한 나라 일본! 아날로그를 고집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한참 뒤처진 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마지막 촬영 일정을 위해 아시히카와(旭川)로 돌아오는 길은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신호등은 대부분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세워져 있고, 국도에는 도로 양쪽에 경계를 표시하는 빨간색 표지판이 세로로 세워져 있었다. 눈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네비게이션에서 표시된 366km의 거리를 예정 시간보다 3시간이 더 걸려 9시간 30분 만에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어렵게 찾은 식당에서 꽤 비싼 음식을 주문했는데도 다른 식당과 마찬가지로 반찬은 역시 하나도 없었다. 겨울인데도 얼음을 가득 채운 냉수는 충분히 주었다. 우리나라 어느 식당에서나 푸짐하게 제공되는 각종 반찬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면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각성도 했다. 

가까운 나라에서 그렇게 길지 않은 기간의 여행이었지만 나의 고국, 대한민국이 그리웠다. 어디에 가서도 기죽지 않을 만큼 위상이 높아진 우리나라의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다. 평소 무심하게 넘겼던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좀 더 멋진 여행을 위해서는 건강도 잘 지켜야 하고,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게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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