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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수필가·요양보호사
김현주 수필가·요양보호사

기나긴 겨울 같이 춥고 어두운 날들도 있었고, 또 다시 돌아온 봄날은 언제나 그렇게 별빛 따라 흐르고 흘러가 버렸다. 마치 멈추지 않은 강물처럼. 자식들에게 큰 나무처럼 그늘을 주고 꽃을 피워, 은혜 주시던 부모님들은 연로하셔서 치매와 더불어 대부분 요양시설에 계신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사를 잘하시다가, 죽으로 다시 미음으로 결국은 숟가락을 놓고 곡기를 끊는 날이 오면 요양보호사들은 직감한다.생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음을.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많은 어르신들을 떠나 보냈지만, 그날은 유독 마음이 저려 왔다.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부고를 들었다. 왕성한 식욕을 보이시고 늘 맛나다 하시던 어르신이 어느 날부터 숟가락을 놓으시고 전혀 식욕을 보이지 않았다. 건강 상태가 안 좋아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몇 주 후 퇴원한다는 소식에 침상 정리를 하는데 하루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간호과의 연락을 받았다. 예감이 심상치 않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됐다. 윤 어르신은 결국 요양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굿굿하게 걸어와야 했던 이승에서의 모든 길은 끝이 났다. 

 슬퍼할 시간도 없이 업무는 이어지고 일상은 진행되기에 저녁 배식을 하는 시간에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몇 주 동안 급격하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지신 구 어르신이 식사 도중 목 넘김이 안 좋아 음식을 못 넘기며 입술이 파랗게 질려서, 제대로 숨을 못 쉬는 상황, 간호팀장이 하임리히범으로 어르신을 들어 올려 숨통을 트이게 하고서야 상황은 안정을 되찾았다. 어르신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첫 마디가 "난 괜찮아 고마워 고마워요"였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선임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눈물 흘리는 것보다 어르신을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 하는 일을 간호팀장과 의논하고 지시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입원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간호팀장과 의견 일치를 본 뒤 입원 준비물을 챙겨 달라는 말에 배식하던 일을 다른 선생님께 맡기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어르신 옷을 다시 갈아입히고, 양말을 엘리베이터에서 신겨가며 병원으로 보내 드렸다.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다가 하는 일이 반복되니까 서두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윤 어르신의 부고에 슬퍼할 시간도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어르신들을 돌봄을 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의 현실이다. 요양원에 어르신들 돌봄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반면, 최저 시급이라는 딜레마로 인해 퇴사나 이직율이 높다 보니 항상 과중한 업무로 이어지는 요양원의 현실을 감안하면 현장은 늘 쫓기 듯 일을 한다.

 집에 돌아와서야 늘어지는 피로를 안고 잠자리에 누울 때 슬픔은 비로소 슬그머니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다. 생의 마침표가 누군가의 삶에 느낌표가 되는 순간이다. 주변에서는 직업의 어려움을 위로하며, 힘들지 않느냐?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힘들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든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치매로 고통받는, 어르신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돌봄의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 돌봄에 문제가 생길 것을 감안해 CCTV 설치하는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요양보호사를 잠재적 학대 가해자로 만드는 현실을 생각하며 개탄을 금치 못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이 지상파를 통해 보도되기도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임을 인지한다. 24시간 사각지대 없이 감시받고 일하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요양보호사 채용 서류에도 범죄이력증명서를 조회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어르신들의 인권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 단순노동이라고 치부하는 일부 보호자들이나 사회적 인식도 이제는 많이 달라져야 할 일이다. 치매라는 무서운 병환을 이해하고 돌봄 하는 것, CPR 등 긴박한 응급 상황일 때 대처 방법 등을 늘 숙지하고 대처하는 일 등은 간호사의 업무의 기본을 아는 수준은 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호자들이 요양보호사들을 함부로 말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발언을 하는 일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반대로 자식도 모시기 힘든 치매 부모를 돌봄 하는 요양보호사들을 지극하게 생각하고 챙겨 주는 보호자 분들도 많다. 면회 시 여름이면 수박이나 과일, 빵 등을 간식으로 가져다 주기도 하고, 비누나 기타 위생용품을 챙겨 주시는 보호자분들도 계셔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달해 주는 물품이 중요 한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값진 것이다. 이 모든 상황 들 속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현장에서 묵묵히 어르신들을 돌봄하는 동료 요양보호사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승을 떠나는 순리를 겪게 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긴 인생길. 부모님과 孝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현주 수필가·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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