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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향 시인·작가
심수향 시인·작가

더위에 지쳤던 여름이 끝자락을 보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파트 내 벚나무는 마른 잎을 떨구어내고, 가로의 나무들도 부쩍 수척해졌다. 서둘러 갈무리에 들어가는 식물들은 사람이 느끼는 계절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를 예견하고 대처하는 모양이다.

9월의 첫 번째 오일장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따글따글 여문 햇밤이 상품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겨우 8월을 벗어났는데 햇밤이라니 제대로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한 나는 밤이 저리 속살을 채우는 동안 뭐하고 살았을까 싶어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문제는 자연만 제시간에 당도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자연의 변화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발전된 과학이 눈앞에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세상을 들이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AI가 여는 세상이다. 우리 세대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문제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령세대다. 아무리 발전한들 내가 누릴 세상도 아닌데 구태여 익힐 필요 있나 싶어 외면했다. 몇 년 전부터 지면이나 뉴스에서 메타버스니 AI니 하는 용어를 자주 보고 들었지만 오불관 서글퍼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우연한 기회에 AI를 접해보고는 이는 외면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가공할 세상이 지어졌다면 그것이야말로 눈길만 주지 않으면 되겠지만, 내 발밑에 내 코앞에 내 머리 위에 펼쳐지는 세상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무슨 방법으로든 수용하고 익혀야 그나마 남은 시간을 살다 갈 수 있겠다 싶었다. 변화를 거부하고 뒷짐이나 지고 있으면 도리 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겠다 싶어 속으로 뜨끔했다.

놀라운 것은 싫든 좋든 우리는 벌써 그 AI 세상 속으로 들어서서 이미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핸드폰의 알람이 그렇고, 내비게이션 안내로 목적지를 찾고, TV를 켜고 끌 때 통신사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아리야, TV 켜줘" "기가지니, 흘러간 노래 들려줘"라는 대화 방법으로 명령 내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요 몇 년 사이 변화한 우리 생활이다. 다만 이것이 AI의 영역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지금 내가 찾고 알아보는 이 정도의 영역은 인공지능을 다루는 전문가들 눈에는 유아원 정도의 호기심이라고 이야기한다. AI 역시 지금은 시작 단계라 그 분야가 그다지 폭넓게 사용되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미국에서 개발해 내놓은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가 상용화돼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단계까지 와 있다한다. 예술분야를 예로 든다면,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염두에 둔 단어를 몇 개 입력하고 그림 그려줘 하면 순간에 그림 하나가 뚝딱 그려진단다, 문학작품도 내가 쓰고 싶은 방향과 염두에 둔 단어 몇 개를 제시하면 작품 한 편을 고개 한 번 돌리는 사이 지어 준단다. 문제는 전문 예술인들의 창작 영역까지 치고 들어오니 그 폐해를 어떻게 막느냐는 염려 단계까지 와 있다한다. 이를 막고 걸러낼 장치는 아직은 개발돼 있지 않지만, AI를 이용해 만든 작품은 출처를 밝히고 분류를 따로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예술인들의 양심만 믿기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울산에 살고 있으니 '울산과 AI'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각 지자체에서는 발 빠르게 대처해 독거노인들 가정에 AI스피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중 한 어르신은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교육받은 "ㅇㅇ야, 살려줘" 하고 외쳐서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울주군에서도 있었다한다. 아직은 AI 보급에는 편차를 보이고 초기단계라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한계가 있지만, 그야말로 지금은 초기 단계가 아닌가. 앞으로 건강 체크 알리미, 복용 약 시간 알리미, 무엇보다 혼자 있어 외롭고 우울해하는 노인들의 친구 AI가 보급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으니 여러 분야에 도움 받을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 세대는 맨몸 하나로 그 숱한 어려움을 딛고 여기까지 온 세대다. 그러니 낯선 기계나 문명을 받아들이기엔 많이 두렵고 서툰 것을 사실이다. 소수의 부류를 제외하고 대부분 노령 세대들이 색다른 단어만 들어도 손사래 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어쩌랴. 우린 이미 인공지능 시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사방 펼쳐진 인공지능을 핸드폰 자판 익히듯이, 자율주행 자동차에 타보듯이 그렇게 익히면 될 듯하다. 노령 세대들에게 권하고 싶다. 외면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해보기를, 모르면 젊은이들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한 번 용기를 내볼 것을 권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하질 않은가. 새로이 펼쳐질 경이로운 세상에 살아보고 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나도 AI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볼 작정이다. 심수향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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