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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최옥연 수필가

텃밭을 갈무리한다. 싱그러움도 지나고 탐스럽게 달렸던 과일들과 푸른 채소들도 이제 때가 다 된 것 같다. 텃밭에 남은 농작물이라고는 가을무가 전부다. 이것저것 다해봐도 그나마 괜찮은 것이 무다. 무는 채소 중에서 유일하게 이 밭에서 제대로 수확하는 농작물 중에 하나다. 야심차게 여러 농작물을 심었지만 제대로 수확한 농작물이 없었다. 인물 없는 푸성귀들을 이웃들에게 건네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나마 무는 자식 농사에 빗대자면 체면치레는 해 주는 셈이다.

주말농장을 경작하면서 무슨 전업 농부들의 농심을 따라가겠는가,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십여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헤매고 있어서 낭패다. 농산물 수확의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농사에 관한 우리의 무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변수들이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도 또한 농사짓는 일이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영향을 준다. 겁 없이 이 텃밭에 이름을 올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덤볐으니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것도 많지만 날마다 모험이다. 

그래도 핑계를 대자면 땅심의 영향이 중요하다 여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하듯이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땅의 토질이 좋지 않다. 오래전에는 지목이 답으로 벼를 경작하던 논이다. 밭으로 쓰기는 그다지 좋은 땅이라고 볼 수 없다. 토질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비라도 내려서 땅에 수분이 들어가면 펄처럼 진득하다가도 물기만 사라지면 흙덩어리가 마치 돌처럼 굳어진다. 그러니 대략 적당히 땅만 파서 일굴 수밖에 없다. 위에만 살살 일구며 거름을 넣고 경작을 하는 것이 전부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토질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흙이 부드러워서 어떤 작물이든 잘 자라던 흙과는 비교도 되질 않을 정도로 경작하는 것이 제한적이다. 그 이유를 보면 처음 몇 해는 나무에서 과일들이 잘 매달렸다. 허나 잘 자라던 나무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뻗어 들어갈 즈음부터 잎이나 가지가 말라가며 시름시름 죽어 나갔다. 과수마다 성질이나 성장 조건에 따라서 생육 발달이 달라진다. 물기가 잘 스며들고 잘 빠지는 토질에 맞는 과일들은 아예 생육 발달이 떨어진다. 

 이 텃밭에서 근근이 약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면 고작 감나무 정도다. 모든 생물이 햇볕, 흙과 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발육 조건이 같은 것은 아니다. 식물마다 생육 조건과 생존 여건이 다른데도 같은 토질에 무더기로 다 몰아놓고 살아내기를 바랬으니 민망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예상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가 일구고 있는 성질의 땅에 잘 맞는 과수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땅에 안성맞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적당히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밭을 일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심었던 나무들은 대부분 잘려나간 셈이다. 절반은 가지가 말라서 삭정이가 된 체리나무 가지를 남편이 톱으로 잘라낸다. 머잖아 남은 가지들도 절반은 잘라야 될 것 같다. 이 가지 저 가지 다 잘라내고 나면 뭉텅하게 남은 뿌리 부분만 오래도록 지켜보기만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어디 처음부터 다 잘할 수 있는가, 욕심내지 않는다. 농사짓는 기술이 부실해도 땅의 주변 환경이 주는 이점이 아주 많다. 그래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쾌적한 자연환경을 주말마다 접하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어디 농사를 짓는 기쁨이 그런 것뿐이겠는가, 부실하나마 식탁에 조석으로 오르는 푸성귀를 즐기는 것은 우리가 꿈꾸던 극히 이상적인 삶이다. 그것만으로 과분하게 여긴다. 비록 토질이 좋지 않아 우리가 원했던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의 토질에 어울려 뿌리 내릴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천천히 찾아 나갈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실패를 거듭해도 또 하게 될 것임을 안다. 그렇더라도 이것저것 시도했던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니 다행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올해 마지막 부추를 잘랐다. 봄부터 여름과 가을이 오기까지 거두지 않아도 잘도 자라 주었다. 그렇게 매주 우리 가족의 입맛을 돋우던 주된 식재료였다. 싱싱하고 부드럽던 잎들이 계절이 바뀌면서 윤기를 잃어간다. 다듬는데도 손이 많이 간다. 아무리 잘 다듬어도 팔다가 남은 떨이 상품 같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별반 다른 거 없는 듯하다.

부추 한 움큼 손에 쥐고 한참을 바라보며 부추 멍을 때리고 있다. 때가 있는 것이 어디 부추뿐이겠는가, 우리도 저렇게 나이가 더 들어가겠지 싶다. 풋풋하고 명랑하고 재바른 총기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무리 챙겨도 하루 하나는 놓치고 가는 것 같다. 멍을 때리다 정신을 가다듬는다. 부추 전을 먹으면 파릇파릇하던 총기가 되살아날까, 소박하지 않는 기대를 품고 집으로 간다. 

또 다른 날 땅을 일구기 위해 밭으로 갈 것이다. 방법을 찾으려고, 모든 농사의 핵심은 땅심인 것 같다. 좋은 토질에 좋은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가을로 접어든 나의 삶에도 땅심 같은 내공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최옥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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