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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그럼 캐어 놓은 산삼은 한 뿌리도 남김없이 내어 오너라. 다 네놈들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

 털보가 다시 산채로 쪼르르 달려가 삼베 보자기에 싼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대장이 보자기를 풀어보라고 시켰다. 털보가 바닥에 내려놓고 보자기를 풀고 바구니 뚜껑을 열었다. 덮어놓은 수태를 걷어내자 사구삼 한 뿌리와 오구삼 한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소백산 산삼이로구나."

 대장은 군사 한 명을 시켜 산삼 바구니를 챙기게 했다.

 "이것으로는 안 되겠다. 이번 보름까지 마구령 입구의 주막집에 육구만달 한 뿌리를 가져다 놓아라. 그렇지 않을 경우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 네 놈들 몰살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니 알아서 해라."

 "네. 알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대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군사들이 죽은 장꾼의 시신을 수습해 들것에 태우자 곧장 산채를 물러 나왔다. 영문을 모르고 끌려가는 김장복은 힐끗힐끗 산채를 뒤돌아보았다.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노각수는 도대체 뭘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군사들이 들이닥쳐도 자신의 주먹 하나로 다 막아낼 것 같았던 노각수였다. 그런 노각수가 왜 털보를 내세워 군사들을 상대하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4] 영월 각동 뼝대바우

마구령을 넘어 온 장꾼들은 밤이 깊어서 남대 주막거리에 도착했다. 주막집들은 장꾼들이 늦게 넘어올 것을 예상하였으므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밥은 물론이고 술자리까지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있었다. 색시들은 몸단장을 마치고 이제나저제나 장꾼들이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오라버니들이 왜 이리 늦으시나. 혹시 백 년 묵은 여우가 둔갑하고 오라버니들을 호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말을 함부로 지껄이네. 백 년 묵은 여우는 바로 네년이지."

 "뭐라고요? 형님 말 다 했습니까? 형님이나 나나 오라버니들 밑구멍이나 빨아먹는 신세는 다 한 가지 아닌가요."

 "야가 뭐라고 하나. 왜 밑구멍을 빨아먹는다는 말이야?"

 "똥줄 빠지게 짐을 지고 넘어온 오라버니들 푼돈이나 털고 있으니 그게  밑구멍 빠는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네 말이 맞긴 맞다. 호호호."

 "앗!  저기 오라버니들이 나타나셨네요."

 "그래? 어디 어디?"

 갑자기 주막거리가 소란스러웠다. 장꾼들은 산에서 혼이 난 터라 한층 더 허기가 지고 맥이 빠졌다. 주막거리에 도착하자 그냥 그대로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색시들이 호들갑을 떨며 버선발로 달려 나와 팔짱을 끼는데도 시큰둥했다.

 장꾼들은 각자 정해 놓은 단골집이 있었다. 어떤 자들은 주모의 음식솜씨가 좋아 선택을 하고 어떤 자들은 색시가 맘에 들어 단골을 정해 놓기도 했다. 장꾼들보다 한발 늦게 주막거리에 도착한 이선달은 서둘러 단골집에 찾아 들어갔다. 주모가 과묵한 성격에 음식솜씨도 좋아 선택한 집이었다. 늦은 저녁을 마친 이선달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자리에 누워 가만히 천정을 쳐다보고 있으니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잠을 청하려는데 노각수에게 얻어맞은 이마와 팔목의 통증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겨루어 본 상대 중에서 주먹은 단연 최고였다. 자신이 칼을 빼 들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둘 중 하나는 뼈가 부러져 주저앉았을 것이다. 이선달은 언젠가는 노각수와 한 번 더 겨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같은 편으로 뜻을 같이한다 해도 일부러라도 한 번 겨루어 보고 싶은 상대였다. 이선달은 조선천지에 발차기로는 자신과 견줄 사람이 없다고 호언을 했다. 그런데 빠르면서 쇠망치처럼 매서운 주먹에 맞서 발차기가 통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이선달이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문밖에 기척이 들렸다.

 "오라버니 접니다. 소운이."

 이선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운은 이선달이 아끼는 색시였다. 나이 열여섯에 영월의 부잣집에 시집을 갔다가 삼 년이 지나도 아이를 낳지 못해 소박을 맞고 쫓겨난 여인이었다. 

 이선달은 그런 내력을 아는지라 측은지심에 소운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듯하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소운을 잠자리에 품고 잔 것은 아니었다.

 "술자리가 파하였느냐? 어서 들어가지 여긴 뭣 하러 왔느냐?"

 "오늘 밤엔 오라버니와 술을 한잔하고 싶어요."

 소운은 이미 개다리소반에 술과 안주를 담아 들고 왔다. 이선달은 술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잠에 빠져들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상대가 소운인지라 야박하게 하기가 그랬다.

 "잠깐 들어왔다 가거라."

 "네, 오라버니." (월·수·금 게재됩니다) 김태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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