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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이왕 죽이실 거면 이것저것 물어볼 것 없이 깨끗하게 바로 죽이시오."

 "내가 누구 좋으라고 그러겠느냐. 이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올 때까지 매일 여길 드나들 것이다."

 "그래 봐야 댁이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부인께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했느냐?"

 "흐흐흐. 이건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댁이 이렇게 나오니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부인께서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우리 집 양반은 토끼하고 경주해도 이길 거라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어떻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모두 듣고 싶은 것입니까?"

 "이런 고얀…."

 안흥선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래 그 말 말고 또 어떤 말을 하였느냐?"

 "꼭 다 들어보아야 하겠다. 이겁니까?"

 "그래 네가 들은 이야기를 다 해보아라."

 "흐흐흐. 댁의 물건을 데쳐놓은 느타리버섯 같다고 했소. 하하하."

 "그럼 네놈 좆은 뭐라고 했느냐?"

 "그야 금방 따온 소백산 송이 같다고 했습죠. 소백산 송이가 크기도 우람하고 향이 얼마나 좋습니까. 부인께서 소백산 송이를 끔찍하게 좋아하셨습니다.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입으로 핥아보고. 흐흐흐."

 안흥선은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내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안흥선은 꿇어앉아 있는 김장복을 발로 차 뒤로 넘어뜨렸다. 옥에 들어온 후 발목까지 묶인 김장복은 꼼짝할 수 없었다. 안흥선이 달려들어 김장복의 바지춤을 끌어내렸다. 김장복이 용을 써서 피하려 해도 불가항력이었다. 안흥선이 사타구니에 달린 김장복의 거대한 물건을 왼손으로 꺼내 들었다. 과연 한 손으로 거머쥘 수 없을 정도로 우람했다.

 "지금 뭘 하시려는 거요?"

 안흥선의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품에서 짤막한 과도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김장복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사람 좀 살리시오. 사람이 죽습니닷!"

 김장복이 밖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보초를 서던 군사도 물 한 동이를 들여다 주고는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고 없었다.

 "아아악!"

 드디어 김장복의 비명이 순흥부의 밤공기를 찢어놓았다. 안흥선의 손에 피가 뚝뚝 흐르는 소백산 송이가 들려있었다. 김장복은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안흥선은 옥을 나와 휘적휘적 순흥의 밤거리를 걸어갔다. 그때까지 들고 있던 소백산 송이를 길거리에 휙 하고 던져 버렸다. 안흥선이 저만치 걸어간 뒤에 똥개 몇 마리가 몰려와 물건을 차지하려고 서로 으르렁거렸다.

 이선달은 전하를 알현하고 나온 뒤 관풍헌 가까운 곳의 주막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일찌감치 영월나루로 가서 동강을 타고 내려오는 뗏목을 얻어 탔다. 강원도에서 나오는 품질 좋은 재목이 남한강 물줄기를 타고 단양 충주 여주를 거쳐 한양까지 갔다. 떼꾼들은 노자도 받지 않고 곧잘 사람들을 태워주곤 했다. 대신에 삿대를 들고 뗏목을 부리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게 원칙이었다. 이선달은 각동 입구의 옥동천에 와서 삿대를 내려놓았다. 그길로 옥동천을 거슬러 올라가 남대주막거리까지 갔다. 어제 하동장을 본 장꾼들은 오늘 영춘장을 보고 있을 터였다. 영춘장이 파하면 일부는 영월로 올라가고 일부는 다시 고치령을 넘어 순흥으로 갈 것이었다.

 이선달이 남대 주막거리의 소운을 만난 것은 점심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소운은 난데없이 찾아온 이선달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그저께 밤에 팔베개하고 잔 생각을 하면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숱한 남자들의 품에 안긴 소운이었지만 이선달은 특별한 경우였다. 이선달을 위해서라면 머리카락을 베어 짚신을 삼아 바칠 만큼 각별하게 생각했다.

 "오라버니 낮에 어쩐 일이세요?"

 정상적으로라면 지금 시간에는 영춘장에 있어야 했다. 이선달은 등짐을 내려놓고 소운을 가까이 불러 손목을 잡았다. 소운은 감격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너 때문에 일부러 여길 들렀다. 여기 잠깐 앉아 보아라."

 소운은 이선달 앞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이선달은 어제 삼옥마을에 가서 듣고 온 이야기를 그대로 일러 주었다. 소운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예전에는 삼옥마을에서 제법 알찬 부자로 불리던 집안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주저앉아 버렸다니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자신을 내친 지아비였지만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니 기가 찼다.

 "그래 그 사람은 만나보고 오셨나요? 어느 집에 머슴을 살고 있던가요?"

 "내가 바빠서 만나보지는 못했다. 마당에 큰 대추나무가 있는 박 부자네 집이라고 하더구나."

 "그랬군요. 박 부자네 집이면 그 집 며느리하고 나하고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인데 마음이 편하지 않겠군요."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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