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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자 여러분들 무예가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 시범을 보이도록 하겠소. 마침 이곳에 조선 제일의 검객과 택견이라 부르는 발차기의 대가가 함께 모였으니 보고 배울 것이 많을 것이오."

 노각수의 말에 산꾼들이 술렁거렸다. 재미난 광대극이라도 보게 된 것처럼 설레는 모양이었다. 노각수의 지시에 이승균이란 자가 진검을 들고 나왔다. 칼집에서 칼을 빼 공중에 치켜들자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검광이 눈부셨다.

 마당 한쪽에 산채를 지을 때 쓰다 남은 참나무 판자가 쌓여 있었다. 도끼로 굵직한 참나무를 쪼개 놓은 것이었다. 두께는 대략 두 치 정도였다. 이승균은 산 사람 한 명을 불러내더니 참나무 판자 한 장을 가져와 허공에 들고 있도록 했다. 이승균이 뽑아 든 칼을 판자를 향해 휘둘렀다. 판자는 보기 좋게 두 쪽으로 갈라졌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종이를 베는 것처럼 사뿐하게 갈라졌다.

 마른 참나무를 가볍게 자를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목이나 허리쯤은 가볍게 절단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선달은 이승균의 칼솜씨에 깜짝 놀랐다. 칼을 휘두르는 자세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완벽했다. 

 "다음은 우리와 형제인 장꾼 대장님의 발차기 시범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각수가 승낙도 얻지 않고 이선달을 불러냈다. 이선달은 하는 수 없이 장물 보따리를 벗어놓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산 사람 다섯을 불러내 참나무 판자를 한 장씩 들고 있게 했다.

 "어설프게 잡고 있으면 다치기 쉬우니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으시오."

 다섯 명의 산 사람들이 서너 걸음 간격을 두고 빙 둘러섰다. 모두 얼굴 높이로 참나무 판자를 들고 있었다. 이선달은 가볍게 다리를 푼 다음 공중제비를 넘었다. 젊어서부터 풍물패를 따라다니며 공중 줄타기를 했던 이선달이었다. 바닥을 차고 공중제비를 넘으면 발바닥이 두 길 높이의 허공을 찬 다음 땅에 내려왔다. 산 사람이 들고 있는 참나무 판자를 발로 차 쪼갠 다음에 몸이 공중제비를 넘고 내려왔다.

 판자 다섯을 모두 쪼개고 바닥에 사뿐히 내려서는 데 수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 모양새가 나비가 공중을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산 사람들이 우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칼로 판자를 가를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이승균은 기분이 별로 안 좋은 표정이었다.

 다음은 노각수의 차례였다. 노각수 역시 참나무 판자를 들고 나오게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판자 한 장을 왼손으로 들더니 한쪽 끝을 땅바닥에 댔다. 오른손 주먹으로 판자를 내려치니 우지끈 소리를 내며 판자가 부서졌다. 세로로 쪼개진 것이 아니라 가로로 부러졌다. 한 장을 부순 다음 연거푸 다른 판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부수었다. 다섯 장을 연속으로 부수었는데 아이들이 수수깡을 부수는 것 같았다. 산 사람들이 우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노각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여러분들도 부지런히 연습하면 모두 이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꾀를 부리지 말고 열심히 연습하기 바란다."

 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정말 자기들이 연습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갈고 닦으면 노력한 만큼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지금은 나라가 아주 어지러운 세상이다. 삼촌이란 자가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에 앉아있다. 나이가 어리다고, 혈육이라고 봐주는 세상이 아니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세상이다. 여러분들도 다른 놈한테 먹히지 않으려면 내 몸 하나는 내가 지킬 수 있어야한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산 사람들답지 않게 대답 소리가 우렁찼다. 노각수는 계속 훈련을 하도록 지시하고 이선달을 데리고 산채로 들어갔다. 산채 안에는 구수한 고깃국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어떻소? 산 사람들도 훈련만 시키면 필요할 때 잘 써먹을 수 있지 않겠소?"

 "글쎄요. 어디에 써먹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군요. 이런 산중 도적놈들을 나라에서 받아줄 리도 없을 테고요."

 "거참 도적놈 소리는 그만 하시구려."

 노각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선달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화만 돋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노각수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허허. 우리가 이제는 많이 가까워진 것 같은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봅시다. 형씨가 이곳에 온 이유가 뭐요?"

 "이유가 뭐가 있겠소. 나 같은 사람이 조선팔도에 마음 놓고 살아갈 데가 어디에 있겠소. 발길 닿는 대로 떠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여기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계시었소?"

 "먼저 말하지 않았나요? 함길도에 있었다고."

노각수는 함길도에서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함길도는 예전부터 오랑캐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노각수는 자신의 주먹이 먼 옛적 북옥저 시대부터 내려온 권법이라고 했다.

 "옛적에 토문강 유역에 북옥저란 나라가 있었다오. 강 북쪽에 읍루족이라고 있었는데 툭하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 노략질을 일삼았다오. 사람들은 처음에는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살았는데 나중에는 어린아이 때부터 주먹을 단련시켰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먹을 단련시키면 돌멩이 정도야 쉽게 깨뜨릴 수가 있는 법이지요. 어린아이들의 주먹을 모두 단련시키고 나니 어떻게 되었겠소. 아이들이 모두 장정이 되었을 때 읍루족이 다시 강을 건너왔는데 어떻게 되었겠소. 창검으로 무장하고 건너온 자들이 모두 대갈통이 부서져 죽고 말았답니다. 그 후로는 함부로 강을 건너오는 법이 없었답니다."

 "참 대견한 일이군요. 그렇다면 함길도 사람들은 모두가 돌주먹이란 말이네요?"

 "그렇진 않소. 태평성대에는 사람들의 긴장이 풀어져 무예를 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지요. 고난을 당하면 사람은 강해지고 태평성대 뒤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해이해져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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