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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자기 입으로는 함길도에서 자랐고 이징옥 장군의 휘하에서 있었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이징옥 장군이라고?"

 "자기 입으로 장군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은데, 이 장군을 죽인 이행검을 질타하는 걸 보면 우리 쪽 사람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오! 이는 필시 이징옥 장군의 원혼이 우리를 도우려 사람을 보낸 것이야."

 "그래도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자의 무예는 어느 정도였느냐?"

 "권법에 능한 자로 소인이 대적하기에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무기를 소지하지 않아도 능히 창칼을 대적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자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거라. 오늘도 영남에서 다섯 명의 무사가 찾아왔는데 모두 무예가 출중한 자들이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대군은 순흥부에 오고부터 실력 있는 무사들을 끌어모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힘 있는 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힘을 길러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민 중에 무예를 익힌 자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팔도 고을마다 무예에 능한 자는 부지기수였다. 그들을 찾아 끌어낼 묘안을 짜내야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거사 후에 부귀영화를 보장한다는 다짐으로 통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로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현실의 부당함을 주장해야 했다. 인륜을 저버린 수양대군에게 하늘을 대신해서 처단한다는 주장은 곧잘 먹혔다.

 오늘도 언양에서 올라온 다섯 명의 무사들은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에 고무된 자들이었다. 자신들은 대군이 떡밥을 던지기도 전에 일이 성공하면 조용히 낙향해 초야에 묻혀 살 것을 천명했다. 대군은 일을 도모하면서도 이런 용기 있는 사람들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대군이 큰일을 도모한다는 이야기는 은밀하게 퍼져나갔다. 전국의 깊은 골짜기에서 수련만 하고 있던 무예가들도 하나둘씩 순흥으로 몰려들었다. 대군은 몰려드는 무사들을 순흥 유지들의 집으로 골고루 분배해서 보냈다. 한꺼번에 많은 숫자의 무사들을 모아놓지 않은 것은 첩자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순흥의 유지들은 순흥 부사 이보흠의 권유에 거의 다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사발통문을 만들어 제일 먼저 순흥 부사 이보흠의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 주효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왕보다는 가까이 있는 부사가 더 믿음직했다. 더구나 왕은 조카를 끌어내리고 왕위를 찬탈한 패륜아가 아닌가. 만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순흥의 유림들은 대군을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대군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나라 주상전하께서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대군은 상왕의 안위를 생각하면 위리안치되어 있는 가시나무 울타리 안의 초막도 과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대군의 말은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군의 뜻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유림들이 점점 늘어갔다. 순흥부를 벗어나 안동과 예천의 유림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일에는 이선달의 활약이 컸다. 이선달은 방물장수를 가장해 유림들의 집에 손쉽게 드나들었다. 이선달은 수시로 대군과 유림들 사이를 오고 갔다.

 대군이 위리안치되어 있는 곳이 가시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함부로 바깥출입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초막의 문을 지키는 군사는 순흥부에서 나와 있었다. 대군을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전을 위해 지키는 것이었다. 

 "닷새 후에 전하를 알현하러 가겠다고 전하고 오너라. 가서 미리 잘 말씀드려라. 다시 이 나라의 국권을 바로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이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고 오겠습니다."

 "오늘 밤은 안흥선 처사의 집에서 묵도록 하라. 거기 오늘 언양에서 올라온 무사들 다섯을 보내놓았느니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이선달은 대군의 처소에서 물러 나왔다. 안 처사의 집은 여러 번 드나든 적이 있었다. 인심이 후하고 인품이 선량해 주위에 칭송이 자자한 집이었다. 밤이 늦은 시간인데 안 처사 집의 하인이 싫은 기색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주인 나리께선 이미 처소에 드셨습니다."

 "낮에 온 손님들은 잘 계시는가?"

 "네. 사랑채에 묶고 계십니다.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이선달은 하인의 안내를 받아 사랑채로 들어갔다. 다섯 명의 언양 무사들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선달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하인은 밤참을 좀 내오겠다 하고 물러갔다. 언양 무사들은 낯선 사람의 출현에 긴장하는 표정들이었다가  대군께서 보내서 왔다고 하니 긴장을 풀었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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