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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팔순의 어머니가 감기에 걸려 연일 시름이다. 아직은 까딱없다며 늘 청춘인 양 웃으며 나를 더 염려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해 본 적도 없는 듯하다. 오늘처럼 야윈 노모랑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12월의 깊어가는 겨울밤을 보낼 시간도 몇 해나 남았을까. 

 평생을 잠옷이라곤 모른 채 그냥 낮에 일하던 옷 그대로 입고 곤한 잠자리에 들던 지치고 고단했던 삶을 어찌 모르겠나.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잠옷을 사 드렸다. 그 옷을 입어 보고는 잠이 어찌나 단지 모르겠다며 이 엄동설한에도 오로지 단벌 신사처럼 입고 주무신다. 

 간간이 코를 골며 동굴처럼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머리맡에 빼 둔 틀니처럼 덜거덩거리며 한 생을 지금 건너고 있는 중이다. 외로울 때 말동무라도 될만한 친구 같은 딸 하나 두지 못한 채 삼 형제만으로는 이 겨울이 더 외로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둘째인 내가 엉성하게 딸처럼 애교도 부려보지만 그게 어디 마음에 차겠나. 산판이 끝난 민둥산에 듬성듬성 드러난 큰 바윗돌 같은 어머니의 생, 오랜만에 아이처럼 파고들어 쭈글쭈글한 빈 젖가슴을 더듬으며 온기를 느껴본다. 

 돌아누운 채 "야야, 와이카노" 하면서도 내 손을 물리치지 않는다. 폐사지에 널브러진 탑의 옥개석보다 더 단단한 등, 그 위에 시나브로 저무는 12월의 마지막 농협 달력 한 장이 문풍지 새로 들어오는 바람처럼 헛헛하다. 존재론적 고독이 오는 밤이다. 지는 해가 더 아름답고 붉다고 누가 그랬다. 그런데 왜 이리도 한쪽의 가슴에는 심장이 벌렁거리며 아픈가. 

 군대를 제대하던 그해, 어머니는 쉰이 되었다. 전역의 기쁨보다 서울역에서 통일호 기차를 타고 고향 집으로 내려오는 내내 마음으로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가 벌써 쉰이라니…' 다른 친구들 어머니보다 더 젊어서 뿌듯했었는데 갑자기 쉰이라니 난 어쩌나 싶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꼭 삼십 년이 흘렀다. 팔순 잔치라도 크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부재가 내내 걸리셨던지 어머니는 한사코 말렸다. 그냥 조촐하게 스튜디오를 찾았다. 형제들 사이에 앉은 어머니의 엷은 미소, 움푹 들어간 눈, 앙상한 손마디, 헝클어진 백발…. 포도송이처럼 탱글탱글하던 그 총기도 조금씩 퇴색해지고 있음을 본다. 

 인생은 영원할 수 없다는 명제 앞에 역류할 수 없는 시간을 두고 생각이 많다. 정중동(靜中動)의 저 등이 갖는 평화로움이 달빛처럼 홧홧하다. 어쩌지 못할 바에야 한사코 받아들이겠다는 위대한 정신의 한 내면이 울컥울컥 여린 아들의 어깨를 몇 번이고 흔들게 한다. 

 새해다. 묵은 잎을 떨구고 새잎을 준비하는 나목(裸木)의 깊은 시간이 어머니에게 있음을 본다. 내년을 기약하는 건 다시 희망을 품는 거다. 계획을 세우고 다시 못 올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 주어진 생을 엄숙하게 다독이려는 살가운 마음에서 위대한 정신을 배우고 싶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희뿌연 새벽이 오고 있다. 새해는 모두가 화평의 종소리에 마음 따뜻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 불신하며 아옹다옹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제 생을 가꾸는 일에 위무했으면 더 좋겠다. 용솟음치는 즐거움이 바이러스로 들불처럼 번져 이 시대가 위대하게 전진했다고 먼 후일 기억해 주면 행복하겠다. 

 생각하면 실로 위대하고 경이로운 생명, 지금은 비록 공명통처럼 속이 다 비었을지라도 어머니를 통해 부여받은 목숨의 아름다움을 어찌 허투루 방관할 수 있단 말인가. 찬탄하며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덧없는 것은 사라지고 오로지 스스로 발광채가 되어 모두가 은하의 별처럼 유려하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이서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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