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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춘해보건대 작업치료과 교수
이혜진 춘해보건대 작업치료과 교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고, 계획할 수도 있다. 죽음이란 단어는 매우 추상적이며,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죽을 장소와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계획을 세우시겠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임종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임종(臨終)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뜻하며, 사람이 죽기 직전 가족들이 곁에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임종 장면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생각해 보자.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웰다잉(Well Dying)'이라고 한다. 내 죽음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을 의미 있게 정리하고 삶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어 내가 세운 계획대로 임종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웰다잉이라 할 수 있다. 웰다잉은 죽음에 대한 태도와 관리를 다루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게 되며, 죽음이 불가피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을 강조한다. 

미리 나의 죽음에 대해 예측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더라도 이에 대한 신중한 준비를 하였기에 나와 가족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웰다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방법도 있지만 법적인 측면에서는 호스피스 완화치료,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 장례 설계, 상속 및 유언장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장지 선택 및 버킷리스트 작성 등 본인의 삶을 마무리하기 위한 계획과 설계까지 포함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의 아버지께서는 요양병원과 대학병원 응급실을 자주 오고 가며 수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돌아오시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수간호사님께서 조심스레 보호자를 부르며 DNR 동의서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그렇게 DNR 동의서를 작성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셨다. 이렇게 쉽게 가실 수 있는 길이지만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여잡고 있었던 그 시간을 돌이켜보다 보니, 미련했던 필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인들에게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에 대해 자주 설명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서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서(DNR 동의서)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건강한 성인이 자신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작성하는 문서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에 대한 유보나 중단을 작성하는 것이다.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서(DNR 동의서)는 소생이 불가능하거나 생명 유지 치료의 도움 없이 생존이 어려운 환자가 본인의 CPR(심폐소생술) 거부를 작성하는 문서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절차가 복잡하고 작성 가능한 기관이 한정적이기에 아직까지도 DNR 동의서를 보호자에게 주로 받는 편이다. 나도 보호자로서 동의서에 동의한 것이다. 임종 직전 아빠의 CPR을 어디까지 할 것인지를 아빠가 아닌, 보호자인 내게 묻고, 결정까지 했다.  

DNR 동의서란, Do-Not-Resuscitate의 줄임말로, 심폐소생술 포기 각서라고 흔히들 부른다. 2018년 한국에서도 존엄사법이 통과됨에 따라 연명치료 중지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는 사전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가족 등의 반대로 연명치료가 이루어지는 때도 많았다. 현재는 환자가 DNR 동의서를 작성하고 의료진이 그 사실을 알 고 있음에도 불구 연명치료를 강행한다면 의료소송은 물론 병원에 따라 징계 및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DNR 동의서에 서명을 했더라도 보호자들이 소생을 원하면 연명치료를 중지하기 힘든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필자의 아버지께서는 오랜 기간 와상환자로 8년을 침대에 누워계셨다. 입으로 식사도 하시지 못하여 뱃줄로 영양을 공급받고, 심한 운동성 실어증으로 의사표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가능했으며, 이해를 잘하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소리를 통해 의사표현을 하셨기에, 생각하는 인지기능은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신체상황과 자신을 간병하는 그런 가족들의 힘든 모습을 전부 보고 있으셨던 아버지께서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가족들에게 위급한 상황이 오고 생명의 유지가 힘들 때, 연명치료를 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을 것이다. 늘 위급한 상황에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는 날은 아버지께서는 딸인 나에게 그만해라는 눈빛을 보내셨다. 기력이 없어 표현도 하시지 못하시지만 필자는 아직도 아버지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는 늘 곁에 있다. 살아있음에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죽음 앞에 복잡해질 가슴 아파질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서류를 확인하고, 죽음에 대해 가족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통해 뜻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의 죽음을 계획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부모의 죽음을 계획하고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떤지 이번 칼럼을 통해 제안해 본다. 이혜진 춘해보건대 작업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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