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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뉴스가 역사다. 시사가 곧 역사가 된다. 그러니 매일 기사를 쓰는 기자는 왕조시대의 사관이나 승정원일기를 쓴 주서(注書)라는 정7품 국정기록비서관과 다름이 없다. 승정원일기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제303호이다.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기록유산이자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조선사 연구자들이 꼭 봐야 하는 기록물이다. 대략 2억 4,250만 자라는 방대한 분량이다. 조선왕조실록 역시 1,893권 888책으로 조선 태조 때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27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적은 역사책이다. 둘 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니 인류 전체의 기록 문화재이다.

 지난해 말 울산역사연구소는 일제강점기 울산 근대사를 파악하기 위해 '신문기사로 본 일제강점기 울산' 세미나를 열었다. 주제발표 중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울산 병영의 '늙은 과부의 애국'이란 근대신문 기사였다. 울산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활발했다는 사실과 참여 인원과 모금 규모, 화제의 주인공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국권 회복을 위한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에서 펼쳐졌다. IMF 금 모으기 운동보다 91년 전의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국항일운동이었다. 울산도 애국 행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신문을 보면 울산군 18개 면의 792명이 의연금 수천원을 서울 총합소에 보냈음이 확인된다. 언양 양동을 시작으로 상부면의 성동 로서 우암 상서 로하, 내상면의 동동 서동, 강동면, 내현면의 소정 중리 곶지 신리 삼산리 월평 원당 와와리 격동 갈현 봉월, 동면의 동부 서부 상화잠 하화잠, 범서면의 삼호리 구영동, 농동면 신기리 차동리 화산리 송내리 덕동리, 하부면의 양정 주민들이 합심했다. 그러나 울산군의 국채보상 의연금은 배달사고가 나서 경성으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울산 병영의 늙은 과부의 애국 기사(대한매일신보 1907.7.28.) 울산역사연구소 제공
울산 병영의 늙은 과부의 애국 기사(대한매일신보 1907.7.28.) 울산역사연구소 제공

 

 화제의 주인공은 병영 서동에 사는 늙은 과부였다. '대한매일신보'는 '늙은 과부의 애국(老寡愛國)'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1907.7.28.) 김복득이라는 이 여인은 논 9두락을 팔아 200원을 납부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칭송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두락은 논밭 넓이의 단위를 이르는 말로 '마지기'의 이두식 한자어이다. 한 말의 씨앗을 뿌릴 만한 넓이를 말한다. 대개 논은 150~300평, 밭은 100평 정도에 해당하니 9두락이면 1,800평 내외로 계산해도 당시 200원은 큰돈이다.) 

 울산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활발했음을 처음 알게 됐으니 근대신문이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창이란 규정이 맞는다. 일제강점기 울산 지역사 연구는 근대신문이 중요한 사료로 활용된다. 근대신문의 울산 기사는 지역에 대한 기록이 다른 사료보다 풍부하고 현장감이 뛰어나다. 물론 전문가의 엄정한 검토와 비판적 연구가 뒤뛰라야 하지만 주재기자의 현장기록은 인정해야 한다. 역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는 문서, 문헌, 유물과 건축, 조각, 비석이나 돌 따위로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매일 지역사를 기록하는 현재의 지역신문도 마찬가지다. 신문기사가 곧 내일의 지역사가 되고 오늘날 역사가는 매일 기록하고 포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선택되고 기록돼 전하는 '오늘의 사건, 사고와 현장'이 바로 내일의 역사가 될 것이다. 

 울산역사연구소는 지난해 2월 출범 이후 울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위촉을 비롯해 '근현대 주제사 연구'(울산읍성 지역 기록화 등)와 '지역사 구술기록화'(댐 수몰 이주민과 원로예술인 구술기록), '지역사 자료조사'(근대신문 번역사업, 이케다 스케타다 울산개발 자료 번역, 울산동백의 역사적 생물학적 검토, 행정구역 명칭변경 등), '울산생활문화 자료조사'(이주민 구술, 철교 등 3개소 디지털 기록화) 등을 알차게 진행했다. 시민들의 많은 이용을 바란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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