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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비장하고 결의에 찬 저 충언이 임진왜란을 마침내 승리로 이끌지 않았을까. 원균인들 나라 걱정을 왜 하지 않았겠나. 충성심은 같았을지라도 서로 방법의 차이에서 승패의 좌우가 갈라졌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좌우, 동서, 여야 대립은 외세의 침략보다 그 혼돈이 조금도 덜하지 않다. 자기 진영의 패권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매정하고 냉혹한 정치의 이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제 새해의 서막이 올랐고, 총선의 계절인 잔혹한 4월이 손에 잡히는 시간 앞에 와 있다. 새벽부터 하루종일 제 이름 석 자 알리려고 네거리에 서서 명함을 돌리는 이들의 눈빛을 보면 측은지심이 인다. 과연, 우리 민중의 행복과 권리를 지켜주고자 그들이 이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자기의 안위와 권력, 탐욕에 눈멀어 마치 마술사가 쇼를 부리듯 눈 가리고 아옹하는 누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적의 의심스럽다. 

 선조가 질투심에 눈멀어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기용했겠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왕의 명령으로 진군했던 원균은 칠천량 전투 패전으로 조선 수군이 궤멸하고 말았다. 오롯이 백성의 피해로 돌아온 전쟁,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잊어서는 안 된다. 손자병법에 보면, '전투에서 승리가 확실하다면 군주가 전투를 하지 말라고 명령해도 전투를 할 수 있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군주가 전투를 하라고 명령해도 전투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군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원균은 무조건 군주의 명령에 복종했기에 조선은 풍전등화에 처하고 말았다. 다음 쪽을 더 읽어보면 '그러므로 나아가서는 명예를 구하지 않고 물러서서는 죄를 피하지 않으며 오직 백성을 보호하고 군주를 이롭게 하니 국가의 보배다.' 두 장군 모두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다만, 상황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연구하지 않은 결과의 최후가 극명했기에 가슴 아픈 일인 것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선조는 다시 이런 교지를 내렸다. "생각하건대, 그대(이순신)는 일찍이 수사 책임을 맡았던 그날부터 이름이 드러났고, 또 임진년 승첩이 있은 뒤로는 업적을 크게 떨쳐서, 변방 군사들이 장성처럼 든든히 믿었는데, 지난번에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을 하도록 했던 것은 역시 사람의 생각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래서 오늘 이 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절대지존인 임금이 나라의 안위가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리 체면도 잊고 사정하듯이 이순신에게 매달리고 있을까. 그만큼 나라의 운명이 위급하고 긴박했기 때문이었다. 장군인들 왜 원망이 없었을까. 그러나 지금 자존심 따위로 자신의 마음을 흔들만한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구국의 정신과 애민으로 떨쳐 나갔던 게 분명하다.

 다시 본다.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사옵나이다" '고작' 12척의 배가 아니라 '아직도'라는 강인한 긍정의 정신을 통해 장수의 위대한 본보기를 읽는다. 쓰러져가는 나라의 위기 앞에 담대히 진군하는 장군의 모습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음은 물론이다.

 24년의 새해 벽두, 수도권은 12척의 배로 비유되며 여당은 다시 비상대책위 체제로 운영되고, 야당도 당이 갈라지는 위기에 처했다. 냉혹한 현실에 나라의 위기가 임진난 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울산의 정갑윤 전 의원은 당시(2013년 10월 21일) 윤석열 여주지청장에게 질문했다. "조직을 사랑합니까? 혹시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후 6년 뒤 검찰총장에 이어 지금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 있다. 충성은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바로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그것이 군주의 덕목이요 한치 흔들림 없는 올곧은 정신이다. "누구도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여당 비대위원장의 이야기가 불현듯 겹친다. 어법은 달라도 뜻은 같다. 아바타라느니, 추종자라느니 말들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그를 선택했고 절대적 위기의 당을 맡겼다. 성패의 결과는 4월이면 나타날 것이다. 야당도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부산에서 피습당한 당 대표는 수술대에 올랐고, 전 대표는 신당의 길로 우회하고 있다. 

 국민의 삶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살림살이는 힘겨워지고 있는데, 저 여의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위기만 생각했지 국민의 안위를 염려하는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총선에서 초등학교 때처럼 인기투표로 누구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왜 많은 이들은 연예인 흠모하듯 당장의 인기로 떠오르는 이를 추종하는가. 우리의 철저한 감시와 비전의 기초 위에서 옥석을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수많은 이가 출사표를 던지며 예비등록과 더불어 지금 발이 부르터지도록 다니고 있다. 그러나 단 하나, 국민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한 언어의 저 꿋꿋한 충성심! 참 좋은 단어로 교묘히 덧칠하는 놀라운 언변에 결코 속아서는 안 된다. 이서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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