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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일행은 안 처사의 사랑방에서 나란히 누웠다. 자리에 누운 다음 이선달이 물었다.

 "어떻소? 대궐에 들어가 살고 싶지 않으시오?"

 "거길 어떻게 들어가 산단 말이오?" "간단하지 않겠소. 조카를 몰아낸 여우 놈만 몰아내면 우리 모두 대궐을 지키며 살게 될 것이오."

 "실망했소. 형씨는 구중궁궐에 들어가 살자고 대군을 모시고 있는 것이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일이 성공하면 우리와 함께 언양으로 갑시다."

 "거기 가서 뭘 하게요?"

 "뭘 하기는요. 할 일이 없으면 강에 나가 낚시나 하면 되지요. 언양은  산과 강이 어우러져 살기에 참 좋은 곳이오."

 "그럼 그렇게 할까요."

 이선달은 마음이 흐뭇했다. 자신도 일이 성공한 다음 구중궁궐에서 호의호식하는 꿈을 꾸는 것은 아니었다. 언양 무사들의 속마음을 떠보느라 일부러 그래 본 것이었다.

 대군도 이선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선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잘못되어 있는 일을 바로잡고자 한다는 명분뿐이었다. 그것이 더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한 아버지의 씨로 태어난 아들들이 모두 같지는 않은 가봐. 조카를 죽이는 자도 있고 살리려고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수양 대군보다는 그 밑에서 온갖 못된 짓을 꾸미는 것은 한명회가 하는 짓이라는데."

 "모르는 말씀. 저도 사람이라고 하늘이 무서워서 하는 수작이지. 자신의 죄를 한명회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일부러 만들어 낸 소리라네."

 "참말로 악독하긴 하나봐. 어떻게 형제를 잡아 죽일 수가 있겠어."

 이선달이 안 처사의 사랑방에서 언양 무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각에 순흥부의 관사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방 안에는 이보흠과 대군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밖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갈까 이마를 마주 대고 있었다.

 대군은 이번 일에 순흥 부사 이보흠의 힘이 막대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보흠은 순흥 부사로 부임하기 전에 대구와 함양의 군수로 있었다. 특히 대구에서는 세창의 관리로 이름을 톡톡히 날린 바가 있었다. 대구의 유지들은 이보흠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이 대감의 활약으로 성공하게 될 것이오."

 "너무 소신을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대평가가 아니오.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가까이 있는 사람을 편들기 마련이오. 대구와 함양에서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줄 사람을 일러 주시오. 크게는 한수 이남의 인재들을 모두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시게요?"

 "오늘 우리 사람이 영월에 다녀왔습니다. 전하를 이리로 모시고 와야지요. 그런 다음 우리 군사들을 마구령과 고치령 그리고 죽령으로 보내 길목을 막는 겁니다. 문경의 조령까지 막아야겠지요. 태백준령만 막고 있으면 저들의 예봉을 피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민심이 우리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분명 이곳의 동태를 살피는 눈도 있다고 생각을 하셔야지요. 안동에 한 대감의 아우가 와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걱정만 해서는 일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머리만 굴리고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대군은 새벽녘이 되어 배소로 돌아왔다. 두 칸짜리 배소에서 발을 뻗고 누우니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떨어져 있는 가족이 그리웠다. 지난날 경복궁 근정전에서 혼례를 치르던 날의 정경이 떠올랐다. 만조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악이 울리고 무희들의 춤은 신명이 났었다. 새들도 신이나 궁중의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녔었다.

 흐뭇한 눈길로 자신을 지켜보는 선왕의 용안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선왕을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선왕께선 오늘의 사태를 미리 짐작이라도 하셨던 것 같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낼 것을 강조했었다. 지금은 지하에서도 두 눈을 감지 못하고 번쩍 뜨고 계실 것 같았다.

 "아바마마. 소자 오늘의 이 난국을 반드시 바로 잡아 놓겠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기도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대군은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겨우 잠이 들었다.

 늦게 잠자리에 든 언양 무사들과 이선달은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밖으로 나서니 집안 사람들이 분주하게 마당을 오가고 있었다. 마당 앞에는 만월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정자가 있었다. 그 정자 안에 성대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자 이제 손님들도 모두 기침을 하셨군요. 모두 만월당으로 드시지요."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바로 소인의 아들놈 백일이랍니다. 딸만 셋을 낳다가 귀하게 얻은 아들놈입니다." 

 "허허. 이런 경사가 있나. 감축드립니다. 귀한 아들을 얻으셨군요."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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