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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이선달과 언양 무사들은 때아닌 잔치에 손님이 되었다. 정자의 제일 상좌에는 안흥선의 노부모가 자리에 앉아 있고 그 좌측으로 안흥선이 앉았다.  안흥선의 부인 예천 댁은 백일 된 아이를 안고 안흥선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 옆으로 고마고마한 계집아이들 셋이 나란히 앉았다. 딸들은 모두 제 아비를 닮아 동그란 눈에 쌍꺼풀이 선명했다. 부부의 맞은편엔 안흥선의 아우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앉아 있었다. 그 밖에도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이선달과 언양 무사들은 노부부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소인의 귀한 아들놈 백일이 되는 날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조촐한 음식을 장만했습니다. 귀한 손님들께서 저희 집에 와 주셨는데 축하의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축드립니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에 빈손으로 축하 자리에 앉아 있으니 송구스럽습니다."

 "감축드립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귀한 집 아들의 백일잔치를 축하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악사가 가야금을 연주했다. 이선달은 자리에서 잠시 일어났다. 사랑채로 들어가 자신의 방물 짐에서 호박으로 만든 노리개를 꺼내왔다. 한복 저고리에 다는 물건으로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다. 노리개를 아이를 안고 있는 예천 댁에게 건네었다. 귀한 집에 아들을 낳은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었다.

 예천 댁은 이선달이 내민 호박 노리개를 한참 동안 망설이다 받아들었다.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고는 물건을 자리 아래에 넣어 두었다.

 "귀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흥선이 감사 인사를 했다. 이선달은 방물 보따리에 그만한 물건이 있기를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음식을 다 먹은 뒤 안흥선이 아이를 받아 들었다.

 "자. 어떻습니까? 이 녀석이 나하고 쏙 빼닮았지요?" 

 안흥선은 아이를 공중으로 번쩍 안아 올렸다. 아이가 놀란 듯 눈을 번쩍 떴는데 아무래도 쌍거풀진 제 아비의 눈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래도 둘러앉은 사람들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다.

 "어쩌면 아버지를 빼다 박았습니다."

 "허허허. 그렇지요."

 웬일인지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들렸다. 안흥선은 한쪽 팔로 아이를 감싸 안고 다른 손으로 아이의 기저귀를 끌어 내렸다. 백일 된 아이의 고추가 드러나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와 하는 함성을 질렀다. 희멀건 아이의 고추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보십시오. 이것까지 저를 닮았습니다. 허허허."

 이선달은 얼른 예천 댁의 안색을 살폈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안흥선이 아이를 공중에서 몇 번 흔들어댔다. 아이는 겁을 먹어서인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흔들었다. 예천 댁이 사색이 되어 아이를 뺏다시피 채어갔다. 아이는 제 어미가 기저귀를 채우고 젖을 물릴 때까지 시끄럽게 울어댔다.

 "허허, 그 녀석 꽤 시끄럽구나. 그저 사람 사는 집에는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야 한다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처사님들."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언양 무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안흥선의 물음에 추임을 넣었다. 이선달과 언양 무사들은 뭔가 빠진 듯한 어색한 백일잔치에서 물러 나와 각자 행장을 꾸렸다. 이선달은 그대로 방물 보따리를 짊어졌는데 언양 무사들도 장꾼으로 행장을 바꾸려니 분주했다. 한 사람은 간밤에 베고 잤던 목침을 광목으로 둘둘 말아 허리춤에 찼다. 한 사람은 볏짚을 모양새 있게 접어서 광목보자기에 쌌다. 사랑방 아궁이 앞에 쌓아 놓은 소나무 장작개비를 보자기에 싸는 사람도 있었다.

 장꾼으로 가장한 일행은 순흥장터로 갔다. 최근 들어 순흥장터는 유난히 더 붐비었다. 여름이라 모두 농사일에 매달릴 철인데도 장꾼들이 많아진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겨울에나 찾아오던 각설이패들도 장마당 한가운데서 판을 벌였다. 

 이선달은 어제 고치령을 넘어온 장 노인 일행을 장터에서 만났다. 장 노인이 먼저 이선달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이 기동이. 자넨 하동장과 영춘장에서 안 보이더니 어딜 돌아다니다 온 거야?"

 "예. 영월의 단골집을 몇 집 돌아서 왔습니다."

 "그래? 물건은 좀 팔았는가?"

 "그럼요. 단골들인데 안 사고 배기겠습니까."

 "허허 재주도 참 좋으이. 그래 무슨 물건을 팔았는가?"

 "옥비녀 두 개와 호박 노리개를 팔았습죠."

 "이문은 많이 보았는가?"

 "그럼요. 옥비녀 한 개를 팔면 쌀이 한 말입니다."

 "허허. 부러우이. 나도 그런 장사에 좀 끼워주게나."

 "어른은 인물이 빠져서 안 되겠습니다."

 "허, 그게 인물까지 받쳐주어야 하는 감?"

 "그럼요. 누가 부잣집 안방에 곰보 영감님을 들이겠습니까?"

 "곰보라니? 내가 곰보란 말인가? 이래 봬도 젊어서는 인물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네."

 "에이. 설마 그랬겠습니까."

 "이 사람아. 늙었다고 너무 그러지 말게. 세월 가는 게 순간이라네. 나는 뭐 늙고 싶어서 늙었겠나."

 "알겠습니다. 내가 이 장사를 거둘 때는 어르신께 물려드리지요." 

 "어느 세월에 그러겠나. 우리 팔자가 자네나 나나 장돌뱅이 팔자인데."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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