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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최옥연 수필가

세컨드란 단어는 여러모로 아주 매력적이다. 세컨드는 어떤 명사 앞에 가져다 놓아도 어색하거나 어울리지 않은 곳이 없다. 모래알처럼 겉돌지 않고 입에 착 달라붙는다. 경제 뉴스를 보다가 세컨이 눈에 들어왔다. 요는 1가구 2주택을 조건부로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인구감소 지역에 세컨하우스 한 채를 더 구입해도 양도세 특례로 1주택으로 간주한다는 문구가 보인다. 균형적인 지역 발전을 위한 것이니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세컨드와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단어는 뭐니 뭐니 해도 세컨하우스다. 세컨하우스 하나쯤 갖고 싶어 하는 것도 사람들의 로망이지 싶다. 나는 격하게 더 갖고 싶다. 열성적으로 환호한다. 충격적일 정도로 심각한 인구감소가 오랫동안 진행돼 국가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이 시점에 사후약방문처럼 내놓은 정책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무척 고무적이다. 

세컨드는 컬링에서 두 번째로 스톤을 던지는 팀을 말하는 데 상당히 능숙한 선수가 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도 세컨드의 중요함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쉽게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세컨드를 가장 먼저 기억했던 것 같다. 남녀 사이의 부적절한 단어로 더 많이 부각됐다. 내 사고에 오류가 없다면 세컨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암암리에 금기시했던 것 같다. 세컨드의 아름다운 의미들이 터무니없이 부정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좀 멀리하고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에도 세컨드로 적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다. 

베스트보다 세컨드가 좋다. 어디 가서 줄을 서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맨 앞자리에서 여가 없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보다 살짝 물러서서 좀 더 여유로운 것이 좋다. 우리는 너나없이 가장 빠르게, 가장 돋보이고 앞서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지만 대부분 결과는 정해져 있다. 모두가 잘나고 앞서기만 하는 세상이라면 올바른 사회 구성이 되지 못한다. 무슨 재미나 삶의 희망이 있겠는가, 베를 짜는 일도 씨줄 날줄로 섞어서 짜야만 옷감이 된다. 이처럼 학교에서도 줄 세우기만 한다면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선두를 위해 부단히 쏟아 온 노력 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선두를 위해 일상을 저당 잡히고서 외줄을 타는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저 그런 부조리한 세상임에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일단 처음보다 두 번째가 편안하다. 생각만 하는데도 여유롭지 않은가. 나만 그런 것일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성적도 마찬가지다. 선두는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에 비하면 이등의 편안함은 비례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마음만 먹으면 추월할 여지도 있고 선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세컨드에 따라붙는 명사의 쓰임이 모두 차등은 아니다. 

말이 세컨이지 그것들은 자체 발광한다. 세컨스킨, 세컨백, 세컨플레이, 둘째, 약자, 하나 걸러서, 잠시, 세컨하우스 등 세컨이 붙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 외에도 경기 중에도 작전지시나 부상자를 돌보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도 세컨드라고 한다. 그래도 세컨에서 가장 정겹게 다가오는 수식어는 '잠시'다. 우리는 추상적인 베스트를 위해 젊은 날을 저당 잡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 뒤에는 수많은 세컨드가 응집돼 있다.  

세컨의 의미와 가장 잘 부합하는 해석도 '잠시'인 것 같다. '잠시'는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위해서 잠시 쉬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은 건네다가도 짧은 호흡으로 생각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 잠시의 여유 속에는 인내가 있고 그 안에는 용서도 들어 있겠다. 잠시는 새로운 도약의 러닝 포인터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붙여 쓸 수 있는 '잠시' 두 번째 세컨드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세컨은 힐링이다. 선두에서 또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친 피로를 풀어낼 수 있다. 현대인에게 그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럴 때 또 여가 공간이 되는 곳으로도 세컨이 제격이다. 급한 일을 두고 잠시 돌아가는 것도 그런 세컨의 여유다. 

메인 자리보다 가장자리가 편할 때도 있다. 그것은 너무 익숙해서 반전도 감흥도 없는 톱니처럼 굴러가는 쉼 없는 일상과는 다른 일종의 사사로운 일탈이 되기도 한다. 용기 없는 그 짧은 일탈은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분명 있다. 

또 하나 세컨 하우스는 나의 오랜 로망이다. 로망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거창하고 빛나는 것이 아니라도 말이다. 세컨은 '잠시'라고 한다. 그 짧은 잠시가 주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잠시는 음식에서 결정적인 한 줌의 고명이다. 또한 삶의 질주와 함수관계다. 

세컨드에 대한 미적 아름다움을 두고 곡해하거나 등한시 하지 말았으면 한다. 현대인에게 슬픈 말 중에 하나가 '이등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일등은 뭐가 있고 이등은 뭐가 얼마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난 사람도 사람이고 못난 사람도 사람이다. 늘 앞서야만 되고 많이 가진 삶을 살아가는 가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덜 가지고 잘나지 않는 이들에게는 서로에게 갖는 측은지심도 있다. 그것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는 왜 일등보다 이등이 편하고 뛰어난 것보다 적당하고 두루뭉술한 것이 편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때론 알면서도 호구가 돼 줄 때가 있다.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곳보다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세컨하우스가 좋다. 끊임없이 달리는 것보다 조금씩 쉬어가는 여유로움이 거기 있다. 베스트를 누려본 적이 없었으니 세컨드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앞으로는 세컨드의 의미가 제대로 표현되는 현실이길 바란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스스로 행복한 삶의 반열에 있으니 말이다. 최옥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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