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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곤 제일고등학교 교사·시인
김동곤 제일고등학교 교사·시인

남도 끝자락, 산사의 밤은 적막하다. 스마트폰도 놓아두고 인터넷이 없는 방에 객으로 머문 지 한 달, 산사 밖의 소식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새벽 예불도 객인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어서 밤늦도록 불을 켜고 누워 책을 뒤적거리고 글을 끄적거리는 것이 일과처럼 됐다.

 오늘은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책상 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제목을 단 책을 뒤적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뜻하는 프랑스 말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말인데, 불행하게도 그 책에 들어 있는 것은 온통 남의 나라 이야기뿐이었다.

 깊은 밤, 그 책을 보면서 새삼스레 '삼국사기'를 떠올렸다. '삼국사기'는 신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열전' 부분은 삼국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충실하게 그려 준다. 수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의 이야기나 공주와 결혼해 용맹을 떨친 바보 온달의 이야기, 효녀 지은과 설씨녀의 아름다운 이야기 등은 모두 열전을 통해서 전해진다.

 '김유신 열전'으로 들어가면 삼국 통일의 영웅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와 '음험하기가 사나운 독수리 같았던 정치가'(신채호)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주인공이 걸어 나온다.

 660년, 5만명의 신라군을 이끈 김유신은 황산벌에서 5,000명의 결사대를 이끈 계백과 만났다. 계백은 이미 자신의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나온 만큼 결사적으로 신라군에 대항했다. 열 배가 넘는 신라군은 이런 계백의 군사에게 네 차례나 패하고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이때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김유신의 동생인 장군 흠순이었다. 김흠순은 아들 반굴을 불러 말했다.

 "신하에게는 충성이 제일이고, 자식에게는 효도가 제일이다.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것은 충성과 효도를 오롯이 하는 길이다."

 반굴이 아버지의 말뜻을 알고는 백제 진중에 들어가 힘껏 싸우다 죽었다. 그러자 좌장군으로 있던 김품일이 또 나섰다. 김품일은 아들 관창을 불러 말했다.

 "너는 겨우 열여섯 살이지만 자못 용감하다. 오늘 싸움에 있어 삼군의 본보기가 되겠느냐?"

 관창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는 적진으로 달려들었으나 백제군에 사로잡혀 계백 앞에 끌려갔다. 계백이 어린 관창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 보내자, 관창이 다시 홀로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계백이 관창을 사로잡아 죽여 목을 베어 말안장에 달아서 신라 진영으로 보냈다. 아버지 김품일 장군이 아들의 머리를 잡고 피눈물로 소매를 적시며 말했다.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다행이다."

 이에 신라군의 사기가 올라 백제군을 무너뜨리고 백제를 멸망시킴으로써 삼국 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삼국 중 가장 약한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반굴은 대장군 김유신의 조카였고, 관창은 좌장군 김품일의 아들이었다. 그야말로 미래가 보장된 신분이었다. 김유신은 그런 사람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신라에는 하나의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야기는 이제 김유신에게 자신에게 돌아간다. 김유신 자신은 과연 의무와 책임을 실천했을까? 김유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읽어 보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는 이제 당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대방의 싸움에서 김유신의 아들 원술이 비장이 돼 출전했다. 싸움은 신라군의 패배로 끝나고, 원술은 책임을 지고 싸우다 죽으려고 했지만 보좌하던 담릉이 후일을 도모하라며 원술의 죽음을 말렸다. 그래서 원술은 살아서 돌아오게 됐다. 이때 김유신은 문무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원술은 왕의 명령을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훈마저 저버렸으니 베어야 옳습니다."

 왕은 원술에게만 중한 벌을 내릴 수 없다 하고 김유신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술은 부끄러워 숨어 살다가, 아버지 김유신이 죽자 어머니를 뵈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면서 만나 주지 않았다고 한다.

 "너는 이미 아버지에게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어찌 네 어머니가 될 수 있겠느냐?"

 이 이야기 또한 김유신에게나 신라에 있어 도덕적 의무와 책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음을 잘 보여 준다. 이야기 그대로 김유신 자신에게도 이런 솔선수범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본 반굴과 관창의 모습이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내로남불이란 말이 널리 회자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여 이르는 신조어로, 똑같은 행위에 대해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이러한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사회에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라는 말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굽은 자로는 직선을 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라는 평범한 격언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새벽이다. 김동곤 제일고등학교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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