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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추억을 한잔하다

홈플러스 앞 사거리는 한비 사거리에서 복산 사거리로 새 이름표를 달았다. 홈플러스 중구점 근처에 한비사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은 거의 사라졌다. 오직 한비다방만이 과거를 회상케 하고 있다. 

 한비다방은 번영로를 물고 있어서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다방에서 커피 한잔하기는 쉽지가 않다. 주변에 주차하기가 마땅하지 않음이 가장 큰 원인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인근 울산여중이 운동장 입구 한쪽을 주차장으로 개방했다. 하지만 방역 관계로 외부인들에게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다방을 간 날은 운이 좋게 울산여중이 공사 중이라서 문을 개방하는 바람에 주차할 수 있었다. 

 다방 지하 계단을 내려서면서 공간이 넓은데 우선 놀랐다. 그때 주방에서 둘려오는 따뜻한 목소리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과거에는 마담이라고 했는데 이 사치스러운 낱말은 이제 두꺼운 국어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다. 레지 아가씨도 없는데 공간이 넓었다. 테이블마다 선풍기형 전기난로가 설치돼 있다. 전기난로 스위치를 켜고 자리를 잡았다. 앉은 자리에서 둘러보니 의자와 테이블까지 그때와 변하지 않은 것들이다. 고전적 다방 스타일 그대로였다. 

 "역시 다방은 이런 맛이 나야 해." 

 함께 간 친구가 말했다. 한때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홍 피디였다. 한때 울산에서 인정받았던 기획자였고 매우 실력 있는 드럼 연주자였다. 울산에서 내로라하는 나이트클럽에서 악단장으로 오래 연주인 생활을 했다. 다방 실내를 둘러보더니 "이 정도 공간이면 미니 콘서트를 해도 될 것 같다"라고 했다. 녹슬지 않은 그의 기획력이 돋보였다.

 사실 눈에 들어오는 다방 공간이 엄청 넓었다. 주인은 수정빌라 지하층 전부가 다방이라고 했다. 다방을 인수할 당시만 해도 이 정도 크기의 공간이었다면 레지 3~4명은 거뜬히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에게 며칠 전 간판에 불 켜진 것을 보고 주차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돌아가는 그 짧은 시간에 불이 꺼졌었다. 저녁에는 몇 시에 문을 닫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대중은 없지만 대략 오후 8시쯤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토, 일 3일간 연달아 쉰다고 했다. 20대 대통령 후보들이 말하는 주 4일 근무가 이 다방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영업하면 남들이 폐업했다고 하지 않느냐 했더니 가끔 그런 손님도 있다며 웃었다. 주인은 다방영업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다방을 오래 해서 그런지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때가 되면 지나가겠지요"라며 무덤덤했다. 

주방, 찬장 위 커피 타임이라는 영문자가 눈길을 끈다.
주방, 찬장 위 커피 타임이라는 영문자가 눈길을 끈다.

 

차가운 손 녹여주는 동그란 찻잔

이 다방에서는 FM 라디오 대신 벽걸이 TV가 있다. 세태를 반영하듯 대권후보들의 이야기와 '코로나19' 사정에 대해 특집방송이 한창이었다. 무심히 방송을 보고 있으니 괜히 불안해졌다. '코로나19' 감염환자가 급증 아니라 폭증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TV 방송 보다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라디오 음악방송이 좋지 않으냐고 했더니 주인은 손님들이 TV를 선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홍 피디와 한 두어 시간 앉아있었다. 그 사이에 가끔 손님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별 용무도 없이 왔다가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고 갔다. 그중 특징은 7080 음악다방처럼 손님들이 자기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흥미 있게 지켜보았다. 머리숱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 손님이 들어와서 처음 앉았던 자리에서는 커피를 시키지 않고 기다리다 어떤 손님이 나가자 황급히 옮겨가서 커피를 시켰다. 자리가 커피 맛을 돋게 하는 것일까, 한편 우습기도 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니 그 사람이 다시 쳐다보였다.

 오래 죽치다 보니 선풍기형 난로가 열기를 고루 제공하지 못해 손이 시릴 정도였다. 다가가면 뜨겁고 잠시만 물러나도 추웠다. 추위를 물리칠 필요가 있었다. 이때가 커피를 마실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사장님 커피 주세요." 

 

한비사거리였던 교통표지판이 어느날 복산 사거리로 바뀌었다.
한비사거리였던 교통표지판이 어느날 복산 사거리로 바뀌었다.

 

 주인은 무슨 커피를 달라 하느냐고 묻지도 않고 프리마 3, 커피 3, 설탕 3, 즉 '333 커피' 보다는 건강에 유익한 원두커피를 마시라고 했다. "그러마"고 하면서 사장님도 한잔하시라고 했더니 반가워했다. 살아남은 여느 다방들과 마찬가지로 이 다방에서도 주인은 1인 3역이다. 마담 역할도 하고 레지, 주방장 역할도 했다. TV에서는 대통령이 되면 사병들도 월급을 200만원 주겠다는 대권후보들의 공약 자막에 정신이 팔려있을 즈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나왔다. 우선 손이 시려서 두 손바닥으로 얼른 잔을 감쌌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김창완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1979년 11월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록 밴드 노고지리 제2집에 수록된 '찻잔'이라는 노래다. 노랫말처럼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함이 아침 햇살처럼 전신에 퍼지면서 순간 추위를 잊게 했다. 대중가요의 매력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아직도 이런 물건이 있었나." 

 커피를 담아온 은회색 알루미늄 쟁반이다. 다방 개업 당시 샀을 것 같은, 모서리가 찌그러지고 칠이 벗겨져서 은백색이 회색에 가까운 알루미늄 쟁반이었다. 아직도 이런 물건들이 남아있구나, 진작 고물상에 가버렸을 물건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지나가다 한비다방 간판을 보고 진짜 영업을 하고 있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가다 한비다방 간판을 보고 진짜 영업을 하고 있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무리하며

한비다방은 시내 음악다방과는 달리 한적한 사원 주택 앞 다방이었다. 처음 개업할 당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원 주택 정문 인근에다 다방을 개업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무룡산 꼭대기에 다방을 개업한 것이 더 나았을 그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면서 그렇게 잘나가던 도심 음악다방들과 유명 다방들이 문을 닫았지만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이 한비다방이 아직도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은 손바닥이 얼얼 하도록 손뼉을 쳐야 할 일이다. 주인은 "요즘도 옛날 다방 생각이 나서 지나가다 진짜 영업을 하고 있는가 싶어서 찾아왔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라고 했다. 아마 그들도 못내 청춘 시절의 흘러간 추억이 그리웠을 것이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울산 다방 역사에 이만큼 긴 시간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다방은 그리 흔치가 않다. 방어진 일대 다방을 제외하면 다방은 울산에서 거의 흔적을 감추고 있다. 울산 변두리이긴 하지만 한때 티켓다방으로 유명했던 언양도 이제는 완전 파장이다. 겨우 두세 개 다방이 문을 열고 있다. 며칠 전(2024년 1월) 언양읍성을 둘러본다고 갔을 때였다. 거리의 다방 간판들이 한때 다방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부스럼딱지처럼 먼지를 뒤집어쓰고 매달려 있다. 이에 비하면 여전히 문을 열고 있는 한비다방은 거의 유물 급에 속한다. 

 진담 반 농담 반을 섞어서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 신청하자고 했더니 주인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웃었다. 

 생각나면 들러보는 조그만 길모퉁이 다방이 한비다방이다. 해가 져서 어둑해지면 다방 간판에 어김없이 희미한 불이 켜진다. 그 불빛에 홀리듯 찾아가 보면 주인의 정이 담긴 커피 한잔에 추억을 타서 마실 수 있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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