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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작년 연말쯤에 유럽에 다녀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7년 만의 해외 나들이다. 그동안 어머니 돌봄으로 일정을 길게 잡기가 힘들어서였다. 어깨가 아파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받아 떠난 위태로운 여행길이었다.

 파리 숙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우리가 도착한 방에는 벽걸이형 냉·난방기 겸용 제품이 설치돼 있었다. 리모컨을 켜주며 전원을 켜면 난방이 된다고 말했다. 차가운 공기가 나오기에 원인을 물었더니 조금 기다리면 따뜻해질 거라고 했다. 한참 기다려도 난방이 되지 않았다. 따뜻해지겠지, 하다가 피곤해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안내 데스크에 가서 직원에게 방이 춥다고 얘기했더니 오후에 입실할 때 가서 봐주겠다고 했다.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에 입실할 때 난방 얘기를 했더니, 큰 키에 하얀 피부를 한 직원이 유쾌하게 웃으며 같이 가자고 했다. 영어로 몇 가지를 물었는데 딸이 대답을 했다. 나의 학창 시절엔 아무래도 문법 위주로 공부한 터라 회화에 약했다. 직원은 리모컨으로 온도를 올리더니 기다리면 될 거라고 했다. 친절이 몸에 밴 직원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온도는 우리가 최대로 올려본 터라 미심쩍었지만, 직원이 그렇다니 별도리가 없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따듯해질까? 두 사람이 다 씻고 나올 때까지 차가운 바람이 나왔다.

 "방을 바꿔 달라든지 해야겠어."

 내 말에 딸은 불어로 표시된 리모컨을 이리저리 살폈다. 뚜껑을 아래로 열어 뭔가를 조작했다. 아무래도 우리 앞에 숙박한 사람이 설정을 바꿔놓은 듯했다. 직원은 난방이 안 된다고 하면 설정까지 살펴야 할 텐데 바깥 온도만 올려놓고 가버린 것이다. 조금 기다리니 따뜻한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벽걸이형이라 공간을 전부 데울 만큼은 아니었다. 설정 온도의 상한선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선지 우리나라 방바닥만큼 따듯하지 않았다. 방은 밤새 가을 같은 온도였다. 유럽을 여행하는 내내 그리워한 것은 우리나라의 따끈한 방바닥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적당히 냉기만 가시게 난방을 하는 것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럽 3개국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보다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거였다.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여름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시원하고,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 따뜻하다. 유럽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지하철, 버스 등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특별히 따뜻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대체로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온풍기를 틀어놨는데도 서늘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나라 숙소는 덥다 싶을 정도로 데워준다.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우리나라 숙소가 난방에 후한 건 사실이다.

 이번에 파리에서 3일 동안 있었던 숙소는 아담했다. 대를 이어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지 할아버지, 할머니 등 가족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침대나 전등 등도 오래되고 전체적으로 엔틱한 분위기였다. 공간은 꼭 필요한 것들로만 배치돼 있었고, 오래된 마룻바닥이 지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숙소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한옥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숙소는 오래되면 낡은 느낌만 들고 전통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새것이 좋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곳은 소박하다 싶을 만큼 오래된 물건을 깔끔하게 관리해 그대로 사용했다. 오래되어 낡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단아하고 기품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편리하고 화려한 취향에 물들었다면, 초라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파리 곳곳을 걷다 보면 반듯한 자연석을 깎아서 만든 길이 많다. 그 길은 영구적으로 써도 될 만큼 견고해 보였다. 우리는 어떤가? 필요해서 바꿀 때도 있겠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보도블록을 쉽게 바꾸는 장면을 목격하곤 할 때면 마음이 쓰리다. 우리나라도 한 때 자연적인 것을 사용하고 오래 쓰던 때가 있었다. 농이나 경대, 지게나 돌담 등 우리 어머니·아버지께서 쓰시고 만드셨던 것들이다. 요즘은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릴 적,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전기세 든다며 등 하나라도 아껴 썼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화려한 유럽의 뒷면에는 생각보다 절약 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됐다.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것보다 물건의 소중함을 알고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환경도 함께 살리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정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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