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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금순 울산시인협회 회장·시인
전금순 울산시인협회 회장·시인

겨울산은 설경(雪景)이 우선이다. 설경은 동서를 가로지르는 높은 산에서 특히 뛰어나다. 높은 산을 넘지 못하는 눈구름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잦은 폭설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지산이나 신불산, 간월산, 영축산, 재약산,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 설경이 탁월한 이유다. 

 겨울산을 올라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추위와 신비함,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는 눈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산에 오르고 또 오른다.

 오늘은 맑은 공기와 겨울산의 아름다운 경치로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지산으로 '문학여행'을 떠나보자. 

 

 가지산에서 

 노말남

 

 능선이 겹겹이 누운

 산 아래 산, 점점이 앉은 집

 천이백 고지, 정상을 얼마 남긴 능선에서

 땀방울 바람에 말리며

 무뎌진 칼로

 그림을 그린다 글을 쓴다

 

 여기서 저기를 향하여

 내 가슴팍 저만치 가고파를 외치면서도

 걸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촘촘히 박힌 집

 정 나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가을바람이 옆구리 틈 비집을 때

 헤어질 일을 감내해야 한다는,
 

 *이별이 너무 길다 ㅡ슬픔이 너무 길다ㅡ*

 직녀에게 들려주는 견우의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천이백길 낭떠러지에 걸터앉아

 한낮의 꽃보다 더 뜨거운 시간

 무뎌진 칼로 그림을 그린다 글을 쓴다

 

 개인적으로 가지산 하면 연상작용으로 떠오르는 두사람. 말순 할멈과 김헌경 시인. 

 말순 할멈을 노래한 시이다. '적적한 말순 할멈 동짓날 새색시 되어 시집왔다네요.  먹빛 연못을 물거울 삼고 살다가 어느새 노랑 할미꽃 연못을 떠 다닌다네요. 대밭에  걸어 두었던 듬성듬성 빠진 치아 자식 볼까 두려워 마실 보내놓으면 소화되지 않는 세상. 우물우물 입 안을 맴돈다네요. 새벽부터 온종일 묵정 밭에서 숨어있던 돼지감자 캐노라면 손가락 마디마디 세월이 욱씨건린다네요. 짤짤 끓는 아랫목에서 말순 할멈의 신음이 잦아들고 있어요'.

 노말남 시인의 가지산에서 시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또 한사람. 영남알프스 선산으로 먼저 가신 울산작가 고 김헌경 시인이 불현듯 떠오른다. 

 '영남알프스 선산자락에/별꽃으로 핀 사람/태양이 바람을 몰아/풍경화를 그릴 때/시인은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 받아들고/혼자만의 시세계를 그리고 있다/봉분 주변에서/시어들이 잔디를 뚫고 피어나면/흰 국화꽃 받아들고/환한 미소로 화답하신다/눈물 대신/맑은 계곡 투명한 잉크로/오늘도 시 한 수 만지고 계실까'(시(시 '별꽃으로 핀 사람'ㅡ고 김헌경시인) 

 10년 전 작고 하신 김헌경 시인을 기리며 쓴 본 필자의 졸시이다. 김헌경 시인에 대한 그리움을 이 시로 달래어 본다. 

※노말남 시인은 2008년 문예시대 수필 부문으로, 2009년 시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제5회 청림문학상 수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전금순 울산시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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