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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최옥연 수필가

이야기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작은 모임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이어졌다. 우연찮게 고구마 라떼로 시작한 추억 몰이는 꼬리를 물면서 계속되었다. 고구마와 관련된 각종 무용담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도 끝을 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많겠는가, 누구 하나 그 가난한 언저리를 배회하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때가 그리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연로한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다. 인구 감소나 출산 절벽을 들먹이지 않아도 어느 모임에 가든 대부분 중년을 훌쩍 넘어선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벌써 그 일원이 되어간다. 사회 전반의 구성원이 나이를 먹었다. 어느 한 사회단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반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혹자는 중년을 넘어 칠십이 되어도 청춘이라지만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년 사회에서 스스로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나 떨어지는 인지 능력을 두고 우리가 정녕 청춘이라 할 수 있는지 나에게 묻고 싶다. 고령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변화는 빠르고 적응은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에 의존하고 때론 그 추억을 먹고 산다.

 얼마나 오래도록 유년의 추억들을 품고 살았을까, 장소 불문하고 뜬금없이 불쑥 펼칠 소재도 아니다. 하니 물 만난 고기처럼 뒤질세라 너도나도 이어지는 이야기를 접고 누구 하나 쉽게 털고 일어설 궁리를 하지 못한다. 고구마에 추억은 가지각색이다. 쌀 대용으로 식사를 해결했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온 가족이 좁은 방에 빙 둘러앉아 얼굴을 맞대고 간식거리로 먹던 고구마 속살 같이 살가웠던 이야기로 긴긴밤을 사려 담았을 것이다. 어떤 분은 죽으로 먹었다고도 한다. 고구마를 빼고 어린 날을 추억할 수 없음이다. 어떻게든 고구마는 사람을 살리고도 남았다. 

 농사 중에서도 고구마 농사만큼 힘든 것도 없다. 대부분 고구마는 비탈진 곳에 심는다. 밭으로 가는 길이 반듯한 신작로로 된 길은 매우 드물다. 비탈진 밭에 고구마 줄기를 심으려면 지난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를 따뜻한 방에서 상하지 않게 보관해야 한다. 음력 2월이 지나고 나면 먹고 남은 고구마를 텃밭에 묻어 봄까지 싹이 오르게 한다. 꽃샘추위도 이기고 봄비도 먹고 보리누름이 지나 보리를 베고 나면 고구마 줄기가 자라면 고구마 심을 준비를 한다. 낫으로 적당하게 잘라서 만들어 둔 둔덕에 하나씩 손으로 심는다.

  고구마를 심을 때는 비를 맞고 심어야 실패가 없다.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 비가 내려 주어야 착상이 빠르다. 처음부터 마른 땅에 고구마 줄기를 묻어 두고 오래도록 비까지 내리지 않으면 낭패다. 대부분 천수답인 농작지에서 비가 없으면 풍작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는 여름 내내 잡초를 뽑느라 고구마밭에 엎드려서 등을 낮추고 살았다. 여름 내내 키운 고구마는 찬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한다. 엉켜 있는 줄기를 낫으로 걷어내고 남은 줄기 끝을 당기면 굵직굵직한 고구마가 주렁주렁 딸려 나온다. 거둬들인 고구마를 안방에 보관하면 든든한 겨울 먹거리가 된다. 어느 집에서나 고구마 몇 포대쯤 안방 아랫목에 두고 살았다. 아이들도 겨울을 나고 마면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혼자 고구마를 먹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온 가족이 같이 먹었던 음식이다. 그 한때의 시간들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순간순간 기억의 저장고에 두고 하나씩 끄집어내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이쯤 되면 고구마 한 소쿠리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부분 가난이 상징인 것처럼 살았던 사람들이다. 고구마가 주식이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었고 나도 그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때는 고구마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다. 주로 쪄서 간식으로 먹었다. 어떤 분들은 고구마 국밥으로도 먹었다고 한다. 내게 국밥은 생소한 일이지만 지역마다 먹거리는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가끔 고구마를 찾는다. 물론 찐 고구마가 아니라 군고구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어릴 적에 자주 먹었던 먹거리여서 그런지 가끔은 간식으로 고구마를 찾은 때가 있다. 지난해에 척박한 땅에 고구마를 한 두렁 심었다. 뿌리가 잘 들지 않아 키우는 데 애를 먹었다. 그것마저 고라니한테 시주하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고구마는 그 당시에는 우리들의 식생활에 주된 먹거리였음은 분명하다. 나는 어머니가 가끔 해 주던 고구마를 넣은 칼국수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삶아 으깨어 물에 풀었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칼국수를 솥에 썰어 넣었다. 어떤 음식이 맛이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밥보다 고구마 감자 등 그런 구황 작물이 좋았는데도 우리 집 밥상에는 밥 외의 음식이 오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때 입맛이 굳어진 것일까? 고구마로 한 요리는 그것 이상은 그다지 기억나는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요즘이야 많은 요리사들의 노력으로 고구마로 만들 수 있는 메뉴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한층 상기된 얼굴로 고구마를 소환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당신들이 먹었던 그 입맛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렇게 고구마 예찬은 밤과 함께 깊어갔다.

 뭐니 뭐니 해도 고구마는 깊은 겨울밤에 먹어야 제맛이다. 그것도 구들방이 제격이다. 문 밖 마루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고구마를 방으로 들인다. 가운데 소쿠리에 담아 놓고 빙 둘러앉아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고구마를 집어 든다. 구들방에 담아둔 수없이 많은 추억이 무궁무진하겠는가. 그것들이 웃을 수 있는 기쁨이기도 때론 북받치는 슬픔이 되기도 했다. 

 오늘 밤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꿈을 꾼 듯 오래된 시간에 사로잡혔다. 도란도란 행복을 풀어내던 수많은 겨울밤을 더듬어 본다. 카페를 나섰다. 그 어느 시린 기억 하나가 겨울밤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  최옥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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