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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아이티공간 기술연구소장·산업문화갤러리 It's room 관장
윤혜진 산업문화갤러리 잇츠룸 관장·아이티공간 부사장·유예지 대표

삼성패션연구소를 비롯한 전 세계 브랜드들은 올해의 컬러로 '블루'를 선정했다. 자크뮈스(프랑스 패션브랜드)에서도 이번 해 트렌드로 꼽히는 '데님'을 중심으로, 블루컬러 아이템을 줄지어 선보였다. 그리고 조니워커(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브랜드) 역시, '블루용띠 에디션'을 출시했는데, 푸른 용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디자인했다. 이 모든 블루들의 향연은 2024년이 갑진년 청룡(靑龍·푸른 용)의 해이기 때문이다. '갑진'은 육십간지(六十干支)의 41번째로, 푸를 갑(甲) 용의 진(辰)으로 이뤄졌다. 하늘로 승천하는 힘찬 용(龍) 전체에 깊은 청(靑)빛이 뒤덮이면서 더욱 생기있는 활력을 발하게 된다. 

 인류기원 이래 이 '블루'라는 색은 아주 오랜기간 단독으로 구분되지 못했다. 인류학자들 말로는 BC 5000년경까지도 블루계열 청색들은 검정(黑)색의 일부로 여겨졌다. 더군다나 헤브라민족들은 보랏빛과 청빛을 구별조차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슨, 블루라는 색은 자연에서 구현되기가 가장 어렵고 드문 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서 파란색은 '영원성'을 상징했다. 눈화장할 때도 나일블루라는 청색을 이용해 눈매를 아주 시원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블루는 무색으로 취급받았다. 그 이유는 화려한 색채감을 즐겼던 이집트인들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가능한 색이 적고 간결한 미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 생활양식에는 기하학과 수학을 더욱 기초로 삼았다. 기하학적으로 계산된 건물 바탕에는 무색과 같은 흰색과 하늘색 또는 옅은 자주색과 금색, 그리고 레몬색과 포도주 색을 주로 사용했다. 간혹 도자기나 그림에 좀 더 많은 색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단색 바탕 위에 윤곽선이나 장식으로 아주 간소하게 점을 찍었던 것을 보면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엄격히 색을 제한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여느 다른 색보다 훨씬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의미를 시시각각 달리한 블루.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지만 밝기와 채도에 따라 같은 색이라도 그 색이 주는 느낌은 정말 확연히 달라진다. 그중 파랑은 더욱 유별나다. 블루는 청렴과 낭만, 그리고 엄정한 기준의 색이기도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슬픔과 우울을 나타냈기 때문에 로마인들도 파란색을 미개하며 어둡고, 더 나아가 세련되지 못한 색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이후 근세작가들은 이 블루를 고독한 이미지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비극적 죽음으로 결말맺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독일 작가·철학자, 1749~1832)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괴테는 블루를 청춘과 낭만의 상징이라고도 했지만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베르테르가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은 '파란 연미복'이었다. 베르테르 영향으로 아무 죄 없던 '블루'는 전 유럽에 걸쳐 우울과 불운의 상징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빈센트 반 고흐(네덜란드 화가, 1853~1890) 또한 '슬픔에 잠긴 노인(1890)'에서 파란 옷을 입힌 노인에게 슬픔을 안겼다. 이런 연유로 '블루'의 고독하고 어두운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꽤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현재까지도 'I'm Blue'라는 표현이 '우울하다'는 의미로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자연염료가 보급되면서 12세기쯤 교회에도 파란색이 들어왔다. 하나님의 옷에 조금씩 더해진 블루는, 아이러니하게도 긍정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성한 색으로 위상이 높아진 블루는, 성모 마리아의 의상에도 고귀(高貴)하게 입혀지면서, 'Blue Blooded' 단어가 현재까지도 '귀족'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인사이드 아웃(픽사의 1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에는 인간의 다섯가지 감정, 기쁨이(노랑)·슬픔이(파랑)·버럭이(빨강)·소심이(보라)·까칠이(연두)를 의인화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항상 기쁨이는 슬픔이에게 매번 '제발 그만 좀 슬퍼하라'고 꾸짖기도 하고, 구역선을 그려 그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기쁨이는 알게 된다. 슬픔이가 있기에 자신이 기쁠 수 있고, 삶 속에 슬픔(블루)은 아주 귀중한 보물이라는 것을. 

 세계최고 브랜드들이 올해의 컬러를 '블루'라고 명명한 것도 같은 이유인 것 같다. 지금의  시대적 블루(슬픔)의 골은 너무나 깊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고난을 어찌어찌 잘 헤쳐 나가보자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패션(passion:격노·울화통·열정·수난)'의 블루.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만 유일하게 한가지 색(머리색 파랑)을 더 가지고 있었던 것은, 지금의 슬픔이 우리를 더욱 깊어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2024년만큼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슬픔까지도 품을 수 있는 좀 더 성숙된 나날이 되길 희망해 본다. 윤혜진 산업문화갤러리 잇츠룸 관장·아이티공간 부사장·유예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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