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데리고 가긴 어디로 데려간단 말인가? 그러지 말고 동상이 여기 와서 같이 사세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윤미는 나보다는 훨씬 좋은 남자를 만나야지요. 나를 따라가면 대궐 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을 겁니다."

 "대궐 같은 집에? 동상이 돈이 좀 있는 건 알겠는데 대궐 같은 집까지 장만해 두었단 말인가?"

 이선달은 쉽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주모를 앉혀놓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주모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언감생심 대궐이 다 뭐란 말인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 나를 믿고 보내시구려. 윤미를 보내면 여기서 일할 사람을 당장 데려다주겠소. 내가 생각해 놓은 사람이 있소."

 "그렇다면 내가 천천히 생각해보지요."

 "이번에 고개를 넘어가면 영월에 있는 젊은 두 부부를 데리고 올 예정이오. 그런 줄 아시고 윤미를 보낼 준비해 주시오."

 이선달은 주모에게 재차 다짐을 주고 마구령을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언양 무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므로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노각수는 자신이 맡는다고 해도 새로 온 이승균이란 검객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승균의 칼솜씨를 한번 본 이선달은 언양 무사들이 과연 대적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칼이란 것은 숫자로 하는 게 아니었다. 

 언양 무사들은 이선달이 자꾸만 걱정스러운 말을 하자 슬그머니 부아가 나는 모양이었다.

 "우리를 너무 얕잡아 보지 마시오. 언양에 가면 신불산이란 큰 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큰 산을 사랑방 드나들 듯했소. 가파른 바위 절벽도 우리를 막지 못했소. 신불산을 넘어가면 배내골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파래소폭포가 있지요. 높이가 열 길이 넘는데 쏟아지는 물줄기가 천둥을 치는 것 같지요. 우리 다섯 모두 그 파래소 폭포의 물줄기를 칼로 자른 사람들이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이선달은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채가 가까워질수록 순흥 부사 이보흠의 말도 귓가에 맴돌았다. 죽이는 게 만사는 아닌 게 확실하긴 했다. 지금까지 숱한 사람들의 명줄을 끊어놓기는 했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행이 마구령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예전처럼 보초가 나와 있었다. 이선달과는 면이 많은 산 사람이었다.

 "어서 오시오. 장꾼 대장님. 먼저는 정말 좋은 구경을 시켜주어서 고맙습니다그려."

 "털보는 안에 있소?"

 "웬걸요. 털보 형님은 이제 고치령에서 안 내려옵니다."

 "그럼 노각수는 있소?"

 "대장도 고치령으로 갔고요. 이승균 대장만 남아있지요."

 "산채 식구들도 모두 잘 있겠지요?"

 "그럼요."

 이선달은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어차피 이승균은 제거해야할 인물이었다. 노각수는 살리고 이승균을 죽이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잘 되었다 싶었다. 

 "어서 이승균에게 우릴 안내하게." 

 "예. 따라오시죠."

 보초 꾼을 따라 산채에 들어서니 마당 가득히 산꾼들이 앉아 있었다. 그것도 바지만 입은 채 윗저고리는 모두 벗고 알몸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승균이 산꾼들에게 기 훈련을 시키는 중이었다.

 "모두 그만 멈추어라."

 이선달이 산채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앞에 서서 이선달이 다른 사내들과 들어서는 걸 지켜보고 있던 이승균이 깜짝 놀랐다. 노각수가 없는 자리에서는 자기가 대장인데 자신의 허락도 없이 훈련을 중단시키는 짓은 용납할 수 없었다.

 "뭐냐? 누구 허락을 받고 훈련을 중단시키는 것이냐?"

 "허락은 무슨 개뿔. 내가 네놈을 잡으러 왔다."

 이선달은 바닥에 앉아 있는 산꾼들을 모두 일어나게 한 뒤 한쪽으로 몰아세웠다. 산꾼들은 순순히 이선달의 지시에 따랐다. 언양 무사들이 이선달의 지시에 칼을 빼 들고 이승균을 에워쌌다. 난데없는 침입에 잠시 당황하던 이승균은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머금고 칼을 뽑았다. 다섯 명의 언양 무사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천천히 이승균의 주위를 돌았다. 언제 어떻게 공격을 할지 짐작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이승균은 개의치 않고 한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산꾼들은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드디어 언양 무사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의 칼날이 이승균의 명치끝을 향해 깊게 찌르고 들어갔다. 이승균이 몸을 왼쪽으로 돌려 칼날을 피하자 가까이 있던 또 한 명의 무사가 자세를 낮추더니 무릎을 베었다. 이승균의 칼이 무릎 베기로 들어온 칼을 받았다. 대낮인데도 허공에 불꽃이 튀었다.

 다섯 명의 무사는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연속공격을 했다. 이선달은 이들의 첫 합을 지켜보고 나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섯 무사의 실력으로 충분히 이승균을 벨 수 있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선달의 예상은 적중했다. 시간이 갈수록 공격을 막아내는 이승균의 자세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승균의 옷소매가 칼날에 베이더니 곧이어 어깨에 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은 얼굴이었다. 언양 무사들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게 이승균의 몸을 베어나갔다. 한칼에 베어 쓰러뜨리려 하기보다는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이 조금씩 베어나갔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