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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라 수필가·장애인인권전문강사
한미라 수필가·장애인인권전문강사

장애 하면 딱 오르는 단어가 장애인이 아닐까? 지금 당신도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장애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렇지 않다. 장애는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가 90%가 넘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장애가 장애인이라 생각하고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는 걸까? 그만큼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정적이고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 돌봄과 배려의 대상, 치료와 재활의 대상이기에 비장애인 세상 속에서 그들이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유아에서 청소년, 청년, 노년이 될 때까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장애인에게는 "할 수 없다,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편견의 시각으로 바라볼까? 그 이유는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더라도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가 가진 잠재된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는 마음과 기다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달라질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보는 만큼만 세상을 보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

 필자는 장애인 부모로 살아간 지 만 20년이 되었다.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는 낙담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장애가 있는 큰딸 덕분에 내가 몰랐던 부분을 알았기 때문이다.

 큰딸은 희귀성 레트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백일 때는 소아 간질로 알았다가 4살 때 우연히 검색하다 레트증후군을 알게 되었고 딸과 증상이 비슷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은 레트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당시는 엄청나게 힘들었다. 현재 21살이 되었지만, 키 142cm, 몸무게 31kg 초등학생 3학년 정도이고 신변처리가 안되고 먹고, 입고, 자고, 의사소통 등 혼자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재 아기일까? 성인일까? 분명 큰딸을 본 사람들은 아기로 바라봐 줄 것이다.

 얼마 전 큰딸 생일이 지났다. 남편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큰딸이 만 20살이 되면 아빠랑 소주 한잔하자.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을 우리 부부는 고민 끝에 소주 한잔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게 했다. 태어난 김에 성인이 되었으니, 경험이라도 해보라고 마시게 했다. 그런데 그 소주 한잔을 다 마셨다. 우리 부부는 놀랐다. 잘 마신 것에 놀란 것도 있지만 혹시나 문제 있을까 걱정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하루 잘 넘어가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큰딸을 키우면서 안 겪어 본 경험이 없다. 난치성 간질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경기에 수면장애가 있어 하루 꼴딱 샌 적도 일주일에 반 이상이다. 이런 상황만 봤을 때 사람들은 혀를 쯧쯧 차며 "안 됐다. 불쌍하다. 힘내요. 장애 부모로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라고 한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사느냐에 따라 생각대로 산다. 그런 점에서 큰딸로 인해 눈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삶의 스승이다. 그리고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사람이 가진 특별한 능력 감각이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 감각을 100% 활용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방치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무감각하다.

 사람의 오감은 자기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필자는 큰딸이 아기 때부터 외부 감각자극을 많이 경험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 중 매일 같이 경기하고 쓰러질 때마다 큰딸의 머리, 이마, 볼, 귀에다 입을 대고 말했다. 큰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혜진이 너는 대단하다. 이렇게 힘들게 경기하는데 이겨내는 네 모습이 대단해 그리고 혜진이 머릿속에 뉴런아! 얼른 체계를 잘 잡고 시냅스를 원활하게 연결해 줘'라고 그 행동을 19년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 경기가 심해서 7살 때 퇴행된 적도 있었다. 아빠, 엄마 손잡고 아장아장 걸을까 하는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하루 몇 번씩 정신없이 경기하는데 부모로서 맨정신으로 있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그 행동을 똑같이 반복적으로 했다. 그리고 아이 귀에 대고 '혜진이 너는 일 년 후면 따뜻한 봄에 아빠, 엄마 손잡고 걸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일 년 후 아이 상태가 호전되어 장애 전담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기적이라고 말했다. 기적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말한다. 아이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큰딸의 내적 힘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바라봐주는 시선과 지지 그리고 기다림 덕분일 것이다. 기다림으로 인한 변화는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보다는 이해해줄 때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라 걸 느꼈다.

 현재 혜진이는 혼자 일어서고 물컵을 입에다 대주면 조금씩 마시고 비언어로 자신의 감정표현을 한다. 일상이 힘들어 지쳐 소파 밑에 기대어 앉아 있으면 어느새 혜진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의 목덜미를 잡고 무릎 위에 앉을 때 나는 혜진이를 보면서 이렇게 얘기해준다. "엄마, 엄마, 엄마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뻐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사람은 우리 혜진이란다." 이 말을 해주면 혜진이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눈으로 나에게 사랑을 보내준다. 그럴 때 나의 힘듦은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려 간다. 그녀의 웃음은 내가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다. 분명한 건 느리지만 성장하고 발달한다. 

 우리는 모두 장애와 함께 성장한다.

 장애는 우리의 다양성을 더해준다.

 장애는 우리의 가능성을 넓혀준다.

 사람은 언제가 죽는다. 필자도 죽는다. 그렇다면 현재 살아가는 동안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가족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한미라 수필가·장애인 인권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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