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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남 전 울주군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
박정남 전 울주군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

이수삼산. 지금은 울산의 중심이지만 오래전 삼산은 허허벌판이었다. 두 개의 물줄기와 세 개의 산이 절경을 이룬다 했지만, 실상은 지천이 뻘밭이고 습지고 염전이었다. 사람 살 만한 곳으로 개발된 후에도 지금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종로와 명동이 있는 강북이 서울 중심이었던 60, 70년대에 강남이 불모지였듯이 삼산도 성남동이 울산의 중심일 때 깡촌 중의 깡촌이었다.

 삼산불패. 경기가 한창 좋을 때 삼산은 울산경제의 상징이었다. 너른 삼산벌 곳곳이 불야성이었다. 절대 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온 말이 삼산불패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경제의 진면목을 보여줬던 강남불패에 비해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붙은 이름이다. 강남불패가 한국경제를 대표했다면, 삼산불패는 한국경제를 이끌던 울산경제의 이정표였다. 

 삼산불패는 좋은 면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호황의 그늘이 숨어 있었다. 구획정리를 했던 삼산에 건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 삼산벌 곳곳에 띄엄띄엄 있던 1~2층짜리 건물들은 거의 고급 유흥업소였다. 그 시절 삼산동에서 저녁 약속을 잡으면 강호에 나간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별천지처럼 유별난 동네, 삼산은 그런 곳이었다. 지금에도 벅찬 수백만 원씩 하는 술값을 내야 했던 이런 고급음식점에는 울산에서 한가닥한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같은 업소 내 다른 방에서 술을 마시다 거나하게 취해 마주치는 일도 잦았다.

 그런 삼산에 삼산초등학교가 있다. 20년도 훨씬 더 된 학교다. 교명은 이수삼산의 삼산을, 체육관은 이수에서 이름을 따 이수관이다. 부근에 비싼 축에 끼였던 아파트도 있고 조금 오래된 아파트도 있다. 삼산불패가 한창일 때 지어졌던 상가건물과 아파트촌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다. 한 때 강남불패 서울 강남의 학교만큼 이름값을 했다는데 지금은 땅값 비싼 삼산벌에 자리 잡은 것치고는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아직도 학교 주변에는 한창 경기 좋을 때 지어졌던 고급 유흥업소 건물들이 빛바랜 몰골로 실내골프연습장이나 음식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옛 영화의 마지막 가뿐 숨을 몰아쉬듯 영업 중이다. 삼산초등학교는 울산경제가 호황일 때 삼산벌의 번쩍이던 조명과 어지러운 네온사인을 교육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진정시키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지금 학교 주변 상권은 삼산불패의 시작과 번영, 뒷걸음질하는 현재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본 세월만큼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이 학교 교문 앞 도로는 어린이보호구역이다. 하지만 갓길에는 흰색 도로선이 그어져 주정차하는 차량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전부터 이 학교에 부임하는 교장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아이들 교통안전을 위해 교문 앞 주정차금지구역 지정(갓길 흰색 도로선을 노란색 실선으로 변경)에 힘을 쏟았다. 몇 년 전 박향미 교장 선생님도 부임과 동시에 주정차금지구역 지정을 위해 구청, 경찰서, 학교 주변 아파트관리사무소 등 여러 곳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경기부진 탓인지 도로변 점포 업주들의 민원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관계기관의 반응에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어색해하던 웃음이 기억난다. 그 모습에는 한때 살아 펄떡이다 점차 뒷걸음질하는 삼산벌과 울산경제의 현주소, 시민이자 학부모인 학교 주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에는 눈을 감은 채 오로지 교육만, 무작정 학교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외칠 수 없는 씁쓸함 같은 게 묻어 있는 듯했다. 

 이름만으로도 거창하고 역사 또한 의미있는 이수삼산. 교통중심이자 울산경제를 상징하는 현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삼산벌 그 한 복판에 자리잡은 삼산초등학교. 이곳에서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출퇴근 차량 우회, 대로변 교통지도 등에 하루도 빠짐없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훠이훠이 헛헛하게 학교 주변을 뛰어다니던 박향미 교장 선생님이 옮겨간 동부초등학교에서 정년 퇴임한다고 한다.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교장 선생님의 퇴임이 예전 힘을 잃어가는 울산경제, 삼산벌의 낡은 점포 모습과 겹쳐 못내 아쉽다. 하지만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듯 남겨진 선생님들의 새로운 도전이 이어질 것이다. 삼산벌의 부활과 울산경제의 활력, 울산교육의 비상을 소망하며 더불어 박향미 교장 선생님의 정년퇴임에 인사를 전한다, 40년 교직,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남 전 울주군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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