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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17년간 저출산 정책에 쏟아부은 예산이 약 36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처구니가 없다. 작년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합계출산율 역시 사상 최저 수준을 보였다. 한마디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저출산과 무관한 부처별 각종 사업이 저출산 정책으로 포장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정작 필요한 제도에는 찔끔 지원이 이뤄지기 일쑤여서 그 효과를 반감시킨 탓이 크다. 이런 것들이 쌓여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적인 저출산 양상이 지속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보다 1만9,200명(7.7%) 감소했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2015년(1.24명) 이후 8년째 하락세다. 더구나 작년 4분기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0.70명선마저 무너졌다. 이런 추세에 근거하면 연간 기준으로도 올해 합계출산율은 0.7명선까지 무너질 가능성이 더욱 커 보인다. 

 

인구영향평가 도입·특임장관·전담 부처 신설 등 다양한 논의를

 

 202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0명에 못 미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국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 빈말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구 쇼크'가 이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한국이 지금과 같은 심각한 저출산 추세가 지속된다면 '1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을까 싶다. 

 실제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50년가량 지난 2072년에는 작년말 기준 5,144만명이던 인구가 3,622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이때가 되면 중위 연령(전체 인구 중 중간 연령)은 63.4세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환갑을 넘는 '노인 국가'가 된다. 가히 충격적인 예측이다. 저출산 문제를 그냥 넘긴다면 그 치명적인 위험성은 재앙 수준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노동 시장이나 국가 재정은 물론이고 교육·국방·의료 등 사회 전반에 악순환으로 점철될 수 있다. 

 그럼에도 돌파구가 될만한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주소다.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정부 내 관련 논의는 재원이나 부처간 입장차로 평행선만 긋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일가정양립지원정책을 올해 초에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총선을 앞둔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재정비 중이라는 답변만 늘어놓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 정책 차원 넘어 파격적인 정치적 결단으로 초당적 협력 절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저출산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원론적인 얘기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마땅하다. 우선 끝없는 출산율 추락에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든' 사회적 환경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처럼 이미 있는 제도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직장문화 등도 마찬가지다. 결혼·출산 문제 등을 바라보는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는 어떤 정책도 힘을 얻지 못할 게 뻔하다. 일자리와 양육, 주거, 사교육 문제 등을 둘러싼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 보다 실효적이고 획기적인 해법이 절실하다.

 이는 또 인구 정책 거버넌스의 틀을 바꾸여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규제영향평가처럼 법령과 정책 수립시 인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도록 '인구영향평가'를 도입하거나 범정부 차원에서 인구정책 예산을 별도로 계상하는 '인구특별회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인구 특임장관 도입, 인구 전담 부처 신설, 복지부 장관의 인구 부총리 격상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도 기대해 봄직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 큰 차원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차원이 아니라 정치 영역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초당적인 협력으로 함께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이유다. 특단의 조치나 특단의 사업 차원을 넘어 파격적인 '정치적 결단'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총력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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