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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춘해보건대 작업치료과 교수
이혜진 춘해보건대 작업치료과 교수

짝배(配) 생각할려(慮), 짝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쓰는 행위를 '배려'라고 한다. 이렇게 마음을 쓰기 위해서는 관계에서부터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타인을 배려해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성장했다.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이다. 배려가 배려답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늘은 소통 없는 배려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 생길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실제 필자가 겪은 일이며, 소통하지 못한 그날을 반성하며 칼럼을 준비했다.

 김옥자(가명) 씨는 최근 건강 문제와 함께 여러 고민 끝에 딸내외와 합가를 결정했다. 딸과 합가를 한다면, 결혼 한지 10년 된 딸내외와 초등학생 손자와 손녀 이렇게 함께 살아야 한다. 초등학생 손주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고 가다 보니 낮에 잠시 볼 수 있고, 사위와 딸 모두 일찍 출근하여 늦게 퇴근하기에 낮에는 빈집이라 생각할 정도로 조용하다. 국민평수 아파트 구조를 보았을 때, 화장실과 현관 입구가 가까운 방으로 김옥자 씨의 방을 정했다.

 딸과 합가를 한다고 하니 옥자 씨의 주변 지인들이 먼저 걱정 어린 충고를 하기도 했지만, 딸의 한마디로 마음을 결정하게 되었다. 딸은 엄마와 언제 또 이렇게 함께 살아보겠냐며, 합가 후 얼마든지 혼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가도 된다는 말과 몸 아픈 엄마가 혼자 있는 걱정을 덜어달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합가 후, 몇 달이 지난 후 옥자 씨는 다시 혼자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딸내외와 함께 지내다 보니, 저녁 시간 가족들 모두 잠깐 모이는 시간 자꾸 소외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딸내외는 매우 사이가 좋고 결혼 10년 동안 아직 큰 소리로 싸운 적 한 번도 없는 부부이다. 손주들도 얼마나 영특하고 착한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집 환경도 신축 아파트에 지금껏 살아온 집들을 비교하면 제일 좋은 환경이다. 옥자 씨의 방에는 따로 티브이도 있고, 유일하게 즐기는 고스톱 놀이 앱도 맘껏 할 수 있는 인터넷 상태도 최신이다.

 그런데 자꾸 소외되는 마음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어느 날, 마트를 다녀온 날이었다. 딸은 딸기를 씻어 예쁜 그릇에 딸기를 보기 좋게 손질하여 담았다. 손녀가 그 딸기를 들고 방으로 왔다. "할머니! 엄마가 딸기 드시래요." 이것이 소외구나. 딸과 드라이브 중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옥자 씨는 그 딸기를 자기 방에서 티브이를 보면서 편하게 먹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다. 거실에서 모든 가족이 딸기를 같이 먹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원했다. 분명 딸의 입장도 있었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에, 척추협착증까지 있다 보니 앓는 소리만 하는 엄마에게 딸은 편히 딸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딸이 엄마에게 주는 소통 없는 배려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반적으로 웃어른을 공경하고 배려하는 마음에 딸기를 덜어 방으로 가져다 드린 것은 잘못된 행동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은 배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딸기를 먹기 위한 방법에 대해 먼저 대화를 나눴다면 편하게 해결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어릴 적 배워온 웃어른에 대한 공경이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넓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은 욜드(yold) 세대에게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온 공경과 배려가 껍데기처럼 쓸데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2020년 세계 경제 대전망'에서 비중 있게 다루면서 화제가 되었던 욜드(yold)의 노인사회 진입이 본격화되었다. 욜드는 'young old'의 줄임말로 65세에서 75세 사이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생~1963년생)를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인세대 진입, 즉 젊은 노인층의 등장은 양적인 확대뿐만 아니라 질적으로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그들의 나이는 65세에 근접한 노인이지만 소득, 건강, 재산, 학력, 생활환경 등 여러 측면에서 이전 노인세대와는 다른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현대 노인의 생애는 짧지 않고 길고 긴 여정이다. 건강과 재력만 갖춰진다면, 그 길고 긴 여정은 설레기까지 한다. 젊은이들만 누린다고 하기에는 이제 너무나 식상해진 인스타그램에서도 노인들의 생활을 담은 화려한 게시물과 릴스가 넘쳐 난다. 게시물들을 한참 보고 있자면 또 다른 삶처럼 다 갖춰진 풍요로운 노년기가 부럽게도 느껴질 때도 있다. 이렇듯, 현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마냥 고령이라서 노인이라서 우대해 주는 공경이 아니다. 참여와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우선으로 원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기에 삶의 지혜가 부족하고 경험이 없다.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또한 획일적인 접근과 일반적이다. 노인을 위한 정책에서도 웃어른을 위한 공경과 배려를 하기 전 노인세대와의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가 늘 말하는 금쪽같은 부모님을 위해 자식세대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욜드세대가 원하는 현대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주변을 둘러보라. 젊은 노인들이 살아가는 지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혜진 춘해보건대 작업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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