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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옥 시인
오양옥 시인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봄이라는 계절을 떠올려보면 봄꽃, 봄바람, 아지랑이, 새순이 쉽게 연상됩니다. 오래도록 들어온 이야기라서 그런지 정말 그렇게 보고 느껴서 그런지 헛갈리지만 봄이 주는 메시지는 단연코 들뜬 희망입니다. 그렇지만 희망이라는 봄도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습니다. 

 '아 봄이구나 난 또 일 년을 버텨야 하는구나'

 '앞으로 내가 맞이할 수 있는 봄날은 얼마나 될까'

 며칠 전 들른 책방, 각양각색의 제목으로 다양한 책이 있어 보였지만 결국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에 관한 것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다는 것, 나이 들어 몇 없는 좋은 점 같습니다. 이것저것 책을 뒤적거리다 세상이 정말 급하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람쥐가 돌리는 쳇바퀴는 다람쥐의 체력과 능력에 맞게 돌리니 탈 없이 계속 돌아가는 것일 겁니다. 만약 밖에서 누군가가 그 바퀴를 마구 돌려버린다면 다람쥐는 어떻게 될까요. 우린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싫어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삶을 원하고 그러면서 리듬과 박자가 맞지 않는 엇박자의 일탈도 꿈꿉니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세상과 갈등하고 타협하는 내가 잘 보입니다.

 부인하려 해도 살면서 중요한 것이 '나'여서 결국 판단의 기준이 '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상하다 하면 실제로 이상해 보입니다. 개인의 인성과 각자의 다름을 고려해야 할 때도, 결정론과 자유의지로 나를 변명하는 순간에도 결국 '나'입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운운하고 사주팔자가 이러하니 잘 매만져 운명을 바꾸도록 하라는 것도 오직 '나'로 인해 돌아가는 삶이 우선이라는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래서 소속감과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고 있는 그 욕구는 소속을 통하여 '우리' 보다 '거대한 나'를 만들고 그 거대한 나는 개인인 나와 다른 박자로 세상을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지치기도 합니다.

 최근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관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관계의 의미나 느껴지는 무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 같습니다. 강요 없이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에서조차 만나고 헤어짐에 예의가 없어짐을 느껴 서운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떨 땐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며 실수를 한 건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것도 아닌 경우에는 서로에게 그러지 말자며 다짐으로 마무리를 짓곤 한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현실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요에 따라 요구되는 관계 참 씁쓸합니다.

 영국의 진화인류학자이며 디지털 전문가인 로빈 던바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평균 150명이라고 했습니다. 던바의 수로 알려진 150은 유명한 셀럽이든 저장된 전화번호의 수가 200이 채 되지 않는 사람이든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150명이라는 것입니다. 던바의 우정의 원을 보면 나를 중심으로 3~5명은 절친한 친구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15명은 친한 친구로 공감을 나눌 수 있으며, 50명 정도는 좋은 친구인 집단이며 150명은 어떤 장소에서 만나더라도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정한 친구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신뢰와 인정, 과묵하고 질투가 없는 등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나' 위주로 돌아가는 본성에다 거품 잔뜩 묻은 '거대한 나'의 등장으로 쉽지 않습니다. 버리면서 사는 삶 어렵습니다.

 내 벗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송죽(松竹)과 수석(水石)이라 동산에 달(月)이 떠오르니 더 반갑다며 이 다섯이면 내 벗으로 충분하다던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생각납니다. 오우(五友)의 성질을 6수로 제대로 풀어낸 시조입니다. 변하지 않고, 그칠 줄 모르며, 불굴의 의지와 과묵하고, 욕심이 없는 친구들이 있다면 정말 너무 좋지 않을까요. 한 사람 바보 만들기만큼 쉬운 게 없는 세상, 팥으로 메주를 쑤었다고 말해도 맞다 이야기해줄 수 있는 친구 몇이나 될지 꼽아봅니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나부터 그런 친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던바의 수에서도 오우가에서도 다섯, 5가 참 좋은 숫자였네요. 오양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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