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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련 동화작가
장세련 동화작가

요즘 청소년들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잘 차려입은 옷에 구김살 없는 표정들,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동은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거침이 없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그들의 욕구가 드러난다. 겉으로는 부유해 보이나 어딘지 위축된 모습도 있다. 무기력한 발걸음은 질식할 듯 억눌린 자존감이 할딱거리고, 거친 말투에는 향기가 없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눈여겨보아야 한다. 

 '비스킷'(김선미/위즈덤하우스)은 이런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다룬 판타지 소설이다. 부모의 학대로 주눅 든 아이, 주변의 관심에서 소외된 사람,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재감이 없는 이들을 저자는 잘 부스러져 사라져버리는 비스킷으로 지칭한다. 맛있는 간식으로만 여겼던 비스킷의 이면을 볼 수도 있구나, 작가의 눈은 다르다는 생각으로 읽은 책이다.

 주인공 성제성은 소리에 아주 민감하다. 지나치게 예민한 청력으로 신경외과 입원을 밥 먹듯 한다. 제성의 현상에 격하게 공감을 했다. 나와 비슷한 증세 때문이다. 나도 귀가 아주 예민하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화들짝 놀라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인위적인 소리에 지나칠 만큼 예민하다. 피곤한 날이나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특히 심하다.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이 소음으로 들리는가 하면, 아름다운 선율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던 악기 소리조차 고통스럽다. 날카로운 기계음이나 스티로폼으로 창문을 긁는 소리에만 거부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 사실에 낙담한 적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고통인 것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다. 무심코 가게 된 노래방이나 공연장 같은 데서 이런 상황이 닥치면 고통에 몸이 오그라들 것 같다. 여럿이 모일 일이 예측된 날은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고,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줄이지만, 갑자기 닥칠 경우는 남들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날카로운 무엇으로 뇌파를 긁는 듯한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라 제성의 상황에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 책을 알기 전까지는 이런 증세가 병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았기에 위안이 된 책이기도 하다. 병으로 여겨 입원을 시키는 부모와 달리 제성은 그것을 자신만이 가진 능력으로 여기긴 하지만.

 나는 이러한 병적 현상을 남들을 위해 써본 적이 없다. 혼자 고통스러워했을 뿐이다. 제성처럼 존재감 없는 이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없는 것이 새삼 아쉽고 유감스럽다. 어쩌면 그래서 병으로도 능력으로도 판단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제성은 자신의 병을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예민한 청력으로 비스킷들을 구출해 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비스킷을 구하는 장면은 아찔하기도 하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위험을 무릅쓴 제성의 행동으로 묘사한 것 같다. 어릴 때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스스로의 세계에 갇혔던 효진이, 학교 폭력으로 스스로 존재감을 지웠던 도주, 부모의 무관심으로 존재감이 없이 살았던 지안이도 비스킷이었다.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 인물들이다. 씁쓸하게도 세상에는 이런 비스킷이 많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만큼 영혼의 허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들. 홀로 아파하다가 끝내 무뎌진 아픔에 스스로를 내팽개친 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이 책은 판타지라기보다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재해석한 심리소설이란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서로에게 비스킷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남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시대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누구나 비스킷이 되는 건 아니다. 가장 존중받고 싶은 대상에게서 작은 관심은커녕 핍박까지 받는 나약한 존재. 주로 아이들이 그 대상인 것이 안타깝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어른들이 비스킷을 만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주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그들은 쉽게 부서지는 성향을 지녔다. 비스킷은 잘 쪼개지고 만만하게 조각나며,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진다… 나는 비스킷을 소리로 인지한다. 미약한 숨소리, 힘없는 발소리, 가볍게 스치는 옷감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안다.'

 비스킷을 먹을 일이 있으면 생각날 것 같은 프롤로그에 책갈피를 꽂는다. 혹시라도 이런 대상이 없는지 주변을 종종 살피자는 생각에서. 장세련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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