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세련 동화작가
장세련 동화작가

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일까? 역사를 되짚어 보자면 그렇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고려 때 이미 혼혈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외침과 함께였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은 인근 나라들의 길목일 수밖에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오갔던 그들은 곱게 지나다닌 것이 아니었다. 약소국에서도 약자들인 여성들은 그 길목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성적 유린으로 숨어서 낳은 자식이 생겨났음은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드러난 이야기의 주인공도 많다. 환향녀나 기황후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혼혈과 절대로 무관할 수가 없다. 기황후처럼 고려 여성이 거란 임금의 비빈(妃嬪)이 되기도 했으니 혼혈의 역사는 공식화된 것이다. 

 혼혈이 약소국의 비애로 생겼기 때문일까? 이런 사실을 묻어둔 채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때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혼혈을 마치 오염된 핏줄처럼 경멸하던 이들도 많았다. 흑인과의 혼혈에는 낯섦이 더했다. 

 한민족과 비슷하게 생긴 거란이나 몽골, 일본인과의 혼혈과 달리 흑인은 피부색부터 확연하게 다르다. 검은색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주는 이질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조금도 없었다. 

 '내 이름은 루시'(임서경/단비청소년)는 이런 가운데 성장기를 겪는 흑인 혼혈 소녀의 이야기다. 저자가 직접 본 인물을 1인칭으로 풀어낸 청소년 소설이나, 실상은 1970년대에 청소년기였던 세대가 더 공감할 내용이다. 루시는 양공주라는 비하된 호칭으로 불리는 엄마의 딸이다. 미군이었던 흑인 아빠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겪는 루시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난숙이네의 따뜻한 대우 역시 루시에게 큰 힘이 된다. 아빠가 루시 모녀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니란 사실도 위안이 된다. 그 역시 인종차별로 추측되는 조부모의 반대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설정은 안타깝지만. 루시가 영영 버림받은 슬픈 주인공이길 바라지 않는 건 저자나 독자나 같은 마음인 듯하다.

 루시는 많은 흑인 혼혈아에 비하면 실상은 그다지 심한 차별도 받지 않는다. 건달 같은 남학생들의 집적거림이 있었지만 언제든 도움을 주는 내 편도 있었다. 저자의 어머니가 직접 돌보아 준 적이 있던 인물이어서일까, 주변 인물들이 비교적 따듯했다. 

 덕분에 루시의 정체성 혼란에도 마음이 크게 아프지는 않다. 눈에 띄는 피부색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지만 당당한 루시를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 절대 기죽지 않는 루시의 기개와 든든한 지킴이가 되는 난숙이네가 고맙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이방인 같았다는 루시. 감수성 예민한 소녀의 정체성 혼란은 안쓰럽긴 하나 가까운 사람들이 따듯해서 이겨낼 거라는 안도감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긴 한다. 엄마가 아빠를 찾아 무작정 미국으로 가서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좀 더 구체적이지 못한 점도 아쉽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반대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아빠의 사정이 마지막에 밝혀지지만, 미국에서 조부모로부터 받던 냉대 부분이 없어서일까, 루시의 고생담이 약간은 희석된 느낌이다. 

 그렇지만 난숙이네의 따듯함이 참 좋다. 인정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 꽃드리마을에 어울리는 꽃을 피우는 느낌이다. 혼혈이 문화로 자리 잡아 다문화가 된 세상이다. 이름이 바뀌는 동안 혼혈의 양상도 많이 달라졌다. 결혼 이주여성이 늘면서 생겨난 다문화도 한동안의 차별을 견뎌낸 끝에 생겨난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이 달라졌다고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다문화가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 풍조가 바뀌어야 한다. 늘 보던 것만 보고 늘 하던 것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 보지 않았던 걸 보면서 행하려는 노력이 발전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발전은 다문화에서 온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생각 때문일까. 혼혈을 터부시하던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내느라 속울음을 울었던 루시의 눈물이 진주처럼 여겨진다. 더불어 아빠가 돌아오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끝낸 루시를 응원한다. 함께 온 미국인 할아버지의 물음에 루시가 명쾌한 대답을 하는 대목에 오늘의 책갈피를 꽂는 이유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What's your name?"
 할아버지를 똑 닮은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내 이름은 루시!"  장세련 동화작가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