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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 프로그래머
조환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링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하는 일이다. 필자와 같은 엔지니어들은 종종 문제를 해결할 때 조금만 더 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완벽한 기술적 해답을 제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집요함은 결과물의 품질을 올리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집요함이 지나쳐, 투입하는 자원 대비 결과의 효용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를 종종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필자가 십수 년 전 모바일 메신저 개발을 위해 일본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일본의 대도시들은 전철역 간의 거리가 서울과 달리 훨씬 더 먼 편이다. 또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국토도 넓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무선 통신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도 않은 때라 중계기 설치 비용이 매우 비쌌다. 때문에 넓은 국토가 오히려 무선 통신에는 불리한 환경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전철역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통화권 이탈 현상이 종종 발생하고는 했다. 여담이지만 기술이 크게 발전한 덕에 2024년 현재 일본에서는 그런 현상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필자를 비롯한 당시의 기술진들은 메시지를 무사히 전송했을 때 내 말풍선이 화면에 뜨도록 앱을 디자인했었다. 상대방에게 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의미로 그렇게 구현한 것이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중계기를 촘촘하게 설치할 수 있어 이 구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지하철만 타면, 버스만 타면 메신저가 먹통이 된다는 고객 불만이 폭주한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맞는 구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결정이었다. 고객들은 입력한 메시지가 화면에 뜨지 않거나, 또는 말풍선 옆에 빨간색 재시도 버튼이 뜨는 우리 구현을 매우 싫어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진들은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통화권 이탈 상태는 물리적인 연결 끊김 상태이므로 메시지 전송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때 기획 부서의 담당자가 한 아이디어를 제안해 왔다. 일단 말풍선을 띄우고 보고,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고객에게 최대한 알리지 않는 형태로 구현을 변경하자는 것이었다. 오류가 발생하면 조용히 재시도하고,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되었을 때 말풍선 옆에 시간을 띄우는 형태를 고객들에게 제시하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였다. 고객이 정말 원하는 것은 내 통신상태가 어떻든지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메신저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기술적으로는 '화면에 표시된 말풍선들은 모두 상대방에게 전달되었다'는 대전제를 깨뜨려야 하는 결정이라, 매우 번거로운 수정이 필요했다. 치열한 토론 끝에 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졌고, 속칭 '조삼모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툭하면 에러가 난다" "메시지를 잘 못 보낸다" 같은 고객 불만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 사례는 기술을 이용해 정직하게 상태를 알리는 것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 이런 문제들은 교과서에서 다루기도 어렵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오류 상황을 명확하게 통지하지 않는 것은 성실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의 제기에 제대로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만족했다. 그렇다면 이 결정은 비록 정답은 아닐지라도 좋은 결정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다.

 필자를 비롯한 기술진들이 기술에만 매몰되었다면 이런 긍정적인 결과를 내긴 어려웠을 터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고객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감하는 것부터가 먼저다. 이런 판단 능력은 학교 공부만으로는 결코 얻기 힘들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처지를 경험하고 이해해야만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독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는 종이책을 읽는 행위만이 독서라 말하기도 어렵다. 좋은 정보와 경험을 담은 음성, 영상 매체들도 언제든지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란 매체보다는 그 내용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짧은 수필집을 읽던, 유튜브 동영상을 보던, 이를 접하고 그 내용과 느낌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양질의 독서와 이를 정리하는 습관이 쌓이면 쌓일수록, 좋은 문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조환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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