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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자비와 광명을 전하기 위해 오신 부처님의 가피를 입기 위한 재가불자들의 발길이 오늘은 산과 계곡마다 넘쳐날 것이다. 저마다의 소망을 담은 연등 역시 오색찬란한 물결을 이루는 광명의 날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과연 얼마가 부처님의 참 뜻을 알고 행하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기복이나 바라고 남이야 어떻게 되었던 나만 좋으면 된다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부처님을 찾을 자격이 없다. 부처님은 구도와 이타심(利他心)을 행하기 위해 최고의 신분마저 포기했다. 그러고 평생을 가난하고 헐벗는 중생들을 위해 살다 갔다. 그 깊은 뜻을 새기고 스스로 실천하려는 다짐을 하는 날이 오늘이다. 동시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이웃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반추해보는 날이다. 특히 지금처럼 세대간, 계층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높고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더 더욱 요구되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소득 20%대 계층이 전체 GNP의 60% 이상을 가져간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상위 20%와 하위 20%간의 소득 격차는 다섯 배 이상으로 벌어지는 소득 양극화가 극에 달해 있다.
 모두가 이타심 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되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구도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우리나라 선사(禪師)들의 삶을 소개한 '은둔'과 '잣나무는 언제 부처가 되나'와 같은 책 한 권쯤은 읽어보고 부처님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 책에서 소개되는 선사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수행을 통해 그대로 전설이나 신화가 된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깨달음에만 그치지 않았다. 실천궁행이 없고서는 세인의 귀감이 될 수 없고, 인구에 회자될 수도 없었다. 세속에 파고들어 중생과 한 몸이 되는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천함으로써 삶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받은 선사의 몸가짐이자 행동윤리였다. 이 책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선사들의 일화는 끝이 없다. 우리나라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선사의 경우 말년에 승복을 벗고 머리를 기른 채 함경도에서 서당 훈장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절에서 불목을 하며 나뭇꾼 노릇을 했던 수월스님 이야기 등에 빠져들다 보면 스스로가 초라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화두는 오직 자비와 나눔에 있었다. 절에서 밥을 주는 것을 일러 '대중공양'이라고 한다. 오늘, 절밥을 한 그릇 하면서 대중공양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대중이 배부르고 불편함이 없는 것이 곧 부처님의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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