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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설날은 본래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시간이다. 그러나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된 현대에서의 설날은 이런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게 사실이다. 어쩌면 현대의 설날은 전례의 의미보다는 심기일전(心機一轉)의 뜻에 더 가치를 두는지도 모른다. 도시의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고향의 정을 맛보며 재충전하는데 의미를 두는 분위기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천년의 세월 속에 민족과 함께 해온 설날의 의미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 법.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민족 전체적으로도 설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새 옷을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 같은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갖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설날은 단순한 명절 이상의 의미와 기능을 가지는 셈이다. 호랑이 해인 경인년(庚寅年) 첫 시작인 민족 고유 명절을 맞으면서 설날의 유래와 세시풍속, 설음식을 국립민속박물관의 자료 등을 통해 알아본다.

 

   역법의 제정과 관련…삼국사기에 기록

 

 설날의 유래: 설날이 정확히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명절로 자리 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지(三國志)에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뤄 우리 민족은 중국역법을 그대로 들여와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설날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수서(隨書)' 등 중국의 사서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갖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는 오묘(五廟)를 제정해 정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고,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했다.

 

 설날의 음식:  설날의 음식을 통틀어 '설음식' 또는 '세찬(歲饌)'이라 하고 설날의 술을 '설술(歲酒)'이라고 한다. 설음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떡국이다. 떡국은 흰쌀을 빻아서 가는 체로 치고 그 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찐 후 안반에 쏟아 놓고 떡메로 수없이 쳐서 찰지게 한 다음, 길게 가래떡을 만들었다. 요즘은 기계화된 떡방앗간에서 쉽게 만들었지만 옛날엔 모두 손으로 했다. 떡국은 정월 초하루 제사때 에 제물(祭物)로도 차리고 또 손님에게도 낸다.
 설날의 떡국은 지금은 쇠고기나 닭고기로도 끓이지만 옛날에는 꿩고기를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설날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고 찬 술을 마시는데, '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술을 데우지 않는 것은 봄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복조리 1년의 복 담아내…신발 방안에 들여놓고 잠들어야

 

 설날의 풍속: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차례 및 차례상 진설법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을 두루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대체로 차례상 앞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데, 이때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둘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 를 놓는데,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포(脯)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는다. 세째 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다섯 가지 맛을 갖춘 탕으로 단탕(單湯)·삼탕(三湯)·오탕(五湯)· 칠탕(七湯) 등이라 하여 어탕(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네째 줄에는 적(炙: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 놓는데,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하여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 때 '두동미서(頭東西尾)'라고 해서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시접, 잔반을 놓고 메를 올리는데, 설날에는 떡국을 올리고, 떡은 오른쪽에 놓는다.

 

 #세배
 설날 아침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 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한다. 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원일(元日)조'에 따르면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 즉, '설빔'이라 한다고 기록돼 있다.

 

 #덕담
 덕담(德談)이란, 설날에 일가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강건하십시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長幼)의 차이에 따라 소원하는 일로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원일(元日)조'에도 설날부터 사흘동안 시내의 모든 남녀들이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새해에 안녕하시오?"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예컨대 아들을 낳으시라든지, 승진하시라든지, 병환이 꼭 나으시라든 지,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한다고 했다. 요즘엔 "대박 나십시오.", "부자 되십시오" 등 재물과 관련된 덕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안비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으로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전갈(傳喝)하는데, 이때 새해 인사를 다니는 계집종을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문안을 받는 집에서는 반드시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한 상 차려 주며, 또 약간의 세뱃돈도 준다.

 

 #설그림(歲畵)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이란 장 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해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야광귀 쫓기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는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니,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청참
 새해 첫 새벽에 거리로 나가 방향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그 소리로써 그해 1년 중 자기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 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정리=최성환기자 csh@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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