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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제역이 확산되는 가운데 4일 울주군 언양읍 평리마을 한 축사에서 방역작업을 마친 이상근(63)씨가 기르는 소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김정훈기자 idacoya@ulsanpress.net

언손 녹이며 밤샘 방제작업 불구
날만 밝으면 하나같이 초소로 모여
지원 모자라 농민들 스스로 운영비 충당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전쟁같은 상황
제발 비켜가기를 비는 애절함 눈물겨워


"전시 상황아인교. 맘이 불안해서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우리한테는 소가 식구나 다름없는데 구제역에 뺏길 순 없는 일 아임니꺼" 4일 오전 11시께 울산 울주군 언양읍 다개마을 입구 방역초소. 이곳은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마을 축산농가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방역초소다. 지난해 12월3일부터 운영에 들어갔으니 이날로 만 한달째다.

#70여농가서 한우 2,500마리 돼지 2만마리 사육

언양읍 다개마을과 평리마을 일대는 70농가에서 2,500여마리의 한우와 돼지 2만 마리를 사육하는 울산의 대표적인 축산단지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이곳 마을 입구는 물론 인근 두서면 차리와 상북면 지내리로 이어지는 길목 3곳에 이동통제 초소를 세워 50두 이상 한우를 키우는 농민 30여명이 하루 4명씩 조를 짜서 꼬박 하루동안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 소독약품과 마스크, 콘테이너 등 물품은 울주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시설과 운영경비는 축산농가들이 한우 1두당 5,000원씩 자발적으로 보태 충당하고 있다.

 소독약이 연신 뿜어져 나오고 있는 방역초소에는 배정된 4명의 주민 근무자 외에도 10여명의 축산농가들이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방문했다.
 축산업으로 부농을 이뤄 보겠다며 고향에 뿌리를 내린 축산농 임진우(45)씨는 연신 뿜어져 나오는 입김만큼 다급한 모습이었다.
 "일단 구제역이 발생한다면 모두 망하는거 아임니꺼. 우찌됐던 차량 소독을 철저히 하고 늘 보던 사료 차가 아니면 못 들어오게 하는 수 뿐인데, 바로 앞에 경주나 영천도 구제역이 발생했으니 시간문제다 싶어 불안한건 어쩔수 없심니더"

 이들에게 소는 생계의 수단 이상이라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었다. 마치 집안 식구에게 불어닥칠 흉조를 막기 위해 금줄을 치듯 눈을 부릅뜬 모습이 그들의 불안을 대변했다.
 이날은 쉬는 날인데도 현장에 나온 이병학(50)씨는 "밤새도록 이빨이 아파 잠을 설쳤는데 아침에 일나자마자 이빨부터 빼고 곧바로 초소로 달려왔다"며 "한순간 방심하면 언제 낭패를 당할지 모를 일이라 손이 열개라도 모자랍니더"라고 말했다.

 20년전 축산을 시작해 현재 다개마을에서 100여두의 한우를 키우고 있는 이 씨는 지난해 4월에도 구제역으로 마음을 졸였다. 이 씨는 "소 키우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고향에 터잡고 사는 우리한테 구제역은 염라대왕이나 야차(夜叉)와 같은김니더"라며 "자식같은 소를 쥑이고 묻어삐는 일은 당하지 않아도 소 키우는 사람이라면 피눈물을 쏟을일 아입니꺼"라고 안타까워했다.

#차리·모단고개 공식적으로 도로폐쇄 요청

이날 화제는 도로 폐쇄. 마을주민들은 지난달 31일 인근 경주까지 구제역이 확산되자 이동통제초소가 있던 차리고개와 모단고개 도로(군도 20호선) 2곳을 바윗돌 등으로 임의로 폐쇄해 버렸다. 이후 울주군과 울주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해 이날 오전 울주경찰서에서 공식적으로 도로를 폐쇄했다.
 홍성집(56) 다개이장은 "밤새 추위와 싸우면서 컵라면으로 버티며 방역봉사활동을 한 후 다음날 잠 한 숨 자지 않고 다시 나오는 농민들을 보면 정말 눈물겹다"며 "너무 힘든 전쟁같은 상황으로 제발 울산만큼은 구제역이 피해가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토로했다.

#주민 먼저 확산 걱정에 외부와 접촉 끊어

초소를 지키다 사료를 주기 위해 축사에 들린 이상근(63)씨는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첫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도 차량은 물론,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지내고 있다. 언제까지 구제역에 시달려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며 애끓는 심정을 말로 토해냈다.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지난달 29일부터 울주군청 4층 상황실에 마련된 울주군 구제역 비상방역 대책본부도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11명의 공무원들이 24시간 비상근무(주간 9명, 야간 2명)하며 읍·면, 생산자단체 등과 유기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24시간 비상근무  차단에 주력

울주군이 운영하는 10곳의 이동통제초소에는 하루 30명의 군청 직원들이 3교대 8시간씩 근무하는 한편 전화예찰 등을 통해 차단방역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군 당국과 축협 등 방역기관은 물론 축산농가 자체도 철저히 방역을 하고는 있지만, 제때 출하하지 못해 밀식사육중인 송아지나, 밤낮으로 구제역과 싸워야 하는 농주 모두 지쳐가고 있다.
 소를 자식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이들은 먼산에 쌓인 눈더미를 보며 백색의 눈이 몹쓸 역병을 말끔히 정화해 주기를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정재환기자 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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