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곡천검단로 112-20 (웅촌면, 연지사)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3호지정일 : 2014년 7월 3일시대 : 조선연지사 소장 칠성도는 폭이 넓은 중대형급 불화이다. 작품 중앙에는 치성광여래를 그 양쪽으로는 7위의 칠원성군을 배치하였는데 칠원성군을 전면으로 부각시킨 구도가 특징적이다. 구름을 경계로 치성광여래 좌우 뒤쪽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그 뒤편 양쪽으로 7위의 칠성여래를 배치하였다. 화면 상단의 구름사이로 보이는 천공에는 각종 별자리가 표현되어 있다. 뉴비전 아트포럼참여작가 : 김기태·김혜경·박철·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선필로 122 (두서면)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호지정일 : 2013년 1월 3일시대 : 조선보살상의 정수리 부분에는 간략한 형태의 보계가 있으며 높고 커다란 보관은 겉면을 두 단으로 나누어 당초문을 빽빽하게 새겨 넣었다. 신체에 비해 큰 얼굴은 타원형으로 반쯤 뜬 눈의 눈꼬리는 약간 위로 올라갔고 코는 삼각형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양손은 결가부좌한 다리위에 연봉우리를 받친 선정인을 취하고 있다.바깥에 걸친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서 완만하게 반원형으로 걸친 후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소재지 : 울산 중구 기상대길 13 (북정동)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지정일 : 2011년 12월 29일시대 : 구한말해남사 소장 신중도는 1904년에 환월 상휴를 비롯한 3인의 화승에 의해 제작되어 양산 통도사 비로암 약사전에 봉안된 불화로 2폭의 면본을 잇대어 그려진 듯하고 상하 2단 구도로 정연하게 열을 지어 각각 6위씩 등장인물을 배치하였다. 갑옷과 무기를 갖춘 금강과 신장이 조합된 구성으로 각 도상에 대한 정확한 조명을 알 수 없으나 복식이 정교하게 시문된 다양한 문양을 통해 20세기 초 불화의 문양과 색채의 유행 양식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웅촌면 대복동천로 160-12 (석천리)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조선이 건물은 울산지역에서 보기 드문 조선시대에 건축된 서원이다. 서원내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강당에 해당하는 경수당과 출입문에 해당하는 필동문이 있고 서원에 딸린 정자로서 재천정이 있다. 경수당 뒤쪽에 사당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체적인 배치 형태는 강당 뒤쪽에 사당이 위치하는 전학후묘형이었을 것이다. 건축적 특징을 보면 경수당은 툇마루에 덧붙인 쪽마루 형태의 진입부가 특이하고 장초석 등의 세부 수법이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 산 294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신라이 성은 온양읍 동상리 상서마을의 북쪽 비옥산 산정에 위치하여 동상리 성지라고도 부른다. 체성은북쪽~남동 방향이며 남쪽으로 회야강과 남창지역을 관망하기에 좋다.비옥산성은 자연석을 가공하여 성벽의 안팎을 모두 수직에 가까운 석벽으로 쌓는 수법으로 쌓은 성인데 주변에 는 하산 봉수대, 서생포 만호진성, 운화리 성지 등이 옛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동남해안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뉴비전 아트포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산159번지 일원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4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신라시대 이후이곳의 성은 대운산 동쪽 지맥의 한 봉우리와 그 아래의 능선과 계곡을 성내로 포용하며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체성은 북쪽은 훼손이 심하지만 남동쪽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성벽은 자연석을 손질해서 급경사 지역은 바깥쪽은 석벽으로, 안쪽은 잡석과 흙으로 채워 쌓는 방법으로, 경사가 완만한 지역은 성벽의 안팎을 모두 수직에가까운 석벽으로 쌓는방법으로하여 쌓았다.성내에는 일부 손질된듯한 자연석을 이용하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01 외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백악기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 전의 전기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공룡들은 아열대 기후 아래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고 열대 무역풍이 영향을 미치는, 사바나 지역의 하천평야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곡천에는 여러 장소에서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지만,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이다.이곳의 공룡발자국은 약 100㎥ 넓이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용각류
소재지 : 울산 중구 유곡동 54-1번지 일원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2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백악기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 전의 전기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공룡들은 아열대 기후 아래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고 열대 무역풍이 영향을 미치는 사바나 지역의 하천평야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의 공룡발자국은 약 91㎡ 넓이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초식공룡인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발자국과 육식공룡에 속하는 발자국 등 80여 개가 된다.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듯한 모양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삼동면 대밭길 37 (둔기리)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호지정일 : 1998년 10월 19일시대 : 조선원강서원 내에 서 있는 비로, 조선 단종·세조 때의 선비인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엄흥도는 어린 단종이 세조에 의해 영월에 유배되었을 때에 그 지역의 호장을 지내었던 자로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그 시신을 수습하여 지금의 장릉자리에 몰래 장사를 지낸 후 세조의 보복이 두려워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이 후 숙종은 그 충의를 거룩히 여겨 공조참의를 증직하였고 영조는 그를 위한 정려문을 내려주었으며 훗날 공조
소재지 : 울산 북구 대안4길 299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지정일 : 1998년 10월 19일시대 : 신라통도사에 딸린 절인 대안동 신흥사의 옛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신흥사를 세운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신라 때 세운 절이라고 전하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활동의 거점이 되었던 절 중 하나이다.신흥사에서 1998년 새로이 대웅전을 신축함에 따라 이 건물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번지 일원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지정일 : 1997년 10월 30일시대 : 조선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
소재지 : 울산 중구 학성공원3길 54 일원 (학성동)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지정일 : 1997년 10월 30일시대 : 조선울산광역시 학성동에 있는 이 성은 신라의 계변성이라 불리던 성을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새로 쌓은 왜성으로 우리측에서는 섬처럼 생긴 형상이라 하여 도산성이라 불렀다.1597년 12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왜군은 우리군과 명나라 연합군에 밀려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식량이 없어 소변을 마시고 말을 잡아먹으면서도 성을 지킨 왜군은 구원병이 오자 성벽을
소재지 :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2번지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쥐라기 백악기공룡은 중생대의 쥐라기로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은 하천 옆의 평평한 바위 위에 있으며 약 1억 년 전 백악기시대에 살았던 중·대형 공룡의 흔적으로 보인다. 바위 위에는 대형 초식공룡인 한외룡을 비롯하여 중형 초식공룡인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고성룡 등의 공룡발자국화석 2백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발자국 화석으로 보아서는 공룡들이 일정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557 (덕현리)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석남사 내에 남아 있는 수조로 스님들이 사용하는 물을 담아두는 곳이다. 석남사는 통일신라 현덕왕 16년도의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지금은 비구니의 수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조는 일반적인 사각형의 형태와는 다르게 사각의 각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모습이며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각 면을 잘 다듬은 세련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말·조선초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는 보호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는데 지금도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웅촌면 석천길 32-3 (석천리)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학성 이씨 파종가집으로 시조인 이예의 11손 이의창이 지었다. 고종 때 이의창의 증손인 이장찬이 고쳐 지었고 1934년경 다시 전체적으로 고쳐 지었는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천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이 집은 문간채, 사랑채, 곳간채, 별당채, 안채 등과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갖추고 있다.문간채는 대문에 딸린 건물이고 사랑채는 작은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상북면 명촌1길 39 (명촌리)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만정헌은 약 500여년전 현감 벼슬을 지냈던 김자간이 경주에서 울산 명촌리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세운 경주 김씨의 정각이다.현재 건물은 약 200여년 전에 고쳐 지은 것으로 1칸이던 온돌방을 2칸으로 늘려 지었다. 규모는 앞면이 3칸인데 비해 옆면은 왼쪽이 3칸, 오른쪽이 2칸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에는 ‘명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둥근기둥에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 351-10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원래는 울산 도호부 객사였던 학성관의 남쪽 문루인데 지금은 정자 형식을 갖추고 있다.객사란 지방에 출장간 관리나 외국 사신이 얼마간 머물던 곳을 말한다. 태화루라 불리기도 했던 이 건물은 일제시대 말에 도서관을 겸해 사용해 오다가 1940년에 지금의 울산초등학교인 울산공립보통학교 교정을 넓히면서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짓게 되었다.옮겨 지을 당시 학성 이씨 월진파의 정각이었던 이휴정의 이름을 빌려 왔고 건물도 정자 형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 351-10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5호지정일 : 2007년 11월 22일시대 : 청동기 이후울산 매곡동 생활유적은 현재 매곡지방산업단지 부지에 위치하는 유적이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집터, 삼국시대 무덤과 숯가마, 구덩이, 조선시대 무덤, 숯가마 등 여러 시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매곡동 생활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으로 이 지역의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뉴비전 아트포럼참여작가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동 산 177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4호지정일 : 2006년 1월 26일시대 : 삼한쇠부리터는 철을 생산하던 곳이다. 이 곳 대안동 쇠부리터는 ‘깊은골’로 불리는 동대산의 작은 개울을 앞을 둔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노의 일부가 잘 남아 있고 그 양쪽으로 약 3m 길이의 축대가 남아 있는 등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대안동 쇠부리터도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최대 철산지였던 인근 달천철장의 토철을 이용하여 쇠를 생산하였던 곳으로 짐작된다.쇠부리터의 주변에는 숯을 구웠던 흔적과 쇠부리작업 당시 생긴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웅촌면 고연리 산175번지 외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3호지정일 : 2004년 12월 16일시대 : 조선운흥사는 신라 진평왕(시기,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 말 지공대사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1614년에 대희선사가 재건하였다. 조선시대 운흥사는 불교 경판의 간행으로 유명하였는데 1672년부터 1709년까지 많은 불경 간행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사찰 불경목판은 발문이 있고 권말에 간행연월일과 간행장소, 시주질의 기록이 있어 간행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